직장에 다닐때는 산행을 하는데있어서 방해되는 요소가 시간이었다면
직장을 쉬고 있는 지금은 시간보다는 대기질이 문제가 된다.
날씨가 궂은, 눈이나 비가오는 날도 피하고 싶지만 황사나 미세먼지는 정말 피하고 싶은 날이다.
그래도 지금은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잘 맞으니 산행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있다.
등산을 시작한 이후로 일기예보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는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제 날씨는 5㎜의 비가 오는데 밤 늦게 올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밤사이 비가 왔는지 도로가 촉촉히 젖어있었고 날씨도 흐렸다.
아침에 매일 하던 습관대로 약 3시간쯤 참선을 하고 경전을 독송하다보니 이미 시간은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나니 반갑게도 해가 환하게 떠 올랐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본능적으로 주섬주섬 베낭을 챙기고 있었다.
남한산성 약수물을 떠다먹는 나는 일주일에 한번 산행을 할때는 2리터 패트병을 5개를 가지고 산행을 했다.
하산하는 도중에 남문 아래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짊어지고 오는데 집에까지 도보로 50분쯤 걸린다.
일주일에 2리터 물 5개를 다 마시지 못하고 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두번 산행을 하니
배낭에 2리터짜리 물병 3개를 가지고 가서 물을 담아오는데 일주일이면 6병이지만 지금은 조금 모자란다.
몸의 상태가 변하면서 물을 많이 먹게되었는데 과거에 비하면 정말 많은 양의 물을 마시고 있다.
배낭에 이것저것 챙겨 넣으면서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의(雨衣)를 챙겨야지 했는데
집을 나서면서 이 우의를 빠트리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ㅠㅠㅠ
이렇게 해도 떳는데....일기예보도 정확하던데 빨리 하산하면 되지.....하는 생각에 그냥 길을 나섰다.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에 도착을 할때까지만 하더라도 해는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비가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할 정도로 화사하게 꽃도 피어있고 푸르른 나뭇잎도 좋았다.
난 소풍나온 사람처럼 토마토도 몇개 넣고 1리터짜리 병에 물도 담고 캔커피도 하나 넣어서 왔다.
수어장대에서 마천동으로 내려갔다가 서문쪽으로 올라오면 솔밭이 있는데 거기에서 먹을 요량으로...ㅎㅎㅎ
올라가다 보니 어떤 분은 단촐하게 아무것도 없이 그냥 긴 우산만 가지고 등산을 하고 있었다.
남한산성이 높지는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도 배낭은 메고 오는데 거기에 비하면 너무 단촐하다.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에서 내 걸음으로 남문까지 25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그 짧은 거리지만 중간쯤 올라가다 보니 바람이 심상치 않게 바뀌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산 정상에 해는 온데간데 없고 먹구름이 사납게 패거리를 이루고 있다.
남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천둥도 간간히 치고 차가운 바람에 눈치 빠른 사람은 중도에 하산을 하기도 한다.
우의도 없는 나는 무슨 배짱(사실 비가오면 맞으면 그만이다...ㅎ)이었는지 그냥 올라가고 있었다.
남문을 지나자 비가 오기 시작을 했는데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수어장대쪽으로 가면서 비바람은 점점 세차게 몰아쳤는데 금방 그칠 비가 아닌듯 했다.
그래서 하산을 한 것이 아니라 마천동으로 내려가려던 계획만 포기를 하고 서문까지만 가기로 변경을 했다.
세차게 내리던 비(그래도 모자를 썼더니 비가 많이 오는지 체감하지 못했다)는 수어장대를 지나자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을 했다.
우의도 없는 내게는 비가 오는것 보다는 우박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정도라야지 우박이 비로 변했다가 우박이 쏟아졌다가를 반복한다.
등산을 계속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침 공중화장실이 근방에 있었다.
얼른 처마 밑애서 우박을 피하려 들어가니 주변 사람들도 속속 모여든다.
공중화장실이 사랑방이 되어버렸다....이래서 고정되어있는 실체는 없다고 부처님이 하셨나보다....^^
세곡동에서 오신 분과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평생 그치지 않고 내릴것 같던 비가 잦아들었다.
인연을 만들어준 비는 빗방을이 약해지자 이번에는 헤어지는 인연을 만들어 하나둘 자리를 뜨고
나도 이내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하다 보니 남한산성은 아직도 비가 오는데 잠실쪽은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것을 보니 마천동으로 내려갈까 슬며시 욕심이 들었지만 나를 다독이며 다 접고 그냥 하산하기로 했다.
수어장대 토끼굴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빗발이 약해졌는지 확인하더니 무더기로 나온다.
조용하던 하산길이 갑자기 제잘재잘 거리는 소리로 천둥이 물러간 자리를 대신 한다.
하산하는 길에 약수물을 받으니 비에 젖은 옷까지 무게감이 가세를 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등산을 하면서 어제처럼 낭패를 경험한 적이 없다.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행하는 도중에도 멀쩡하던 하늘이 또 갑자기 폭우로 변해 쏟아지기 시작을 한다.
건물 입구에서 비를 피하고 걷기를 3번이나 반복 하고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캔커피나 토마토 어느것 하나 먹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가지고 왔다.
생각하면 달랑 우산 하나만 가지고 등산을 하던 분이 도인이다.
진짜 어제같은 날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등산을 하신 분이다...ㅎㅎㅎ
등산중 만난 세곡동에서 오신 분은 남한산성에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박이 쏟아지자 우박에 여린 잎이 다 찢어진다며 농작물 걱정에 어쩔 줄 몰라 하신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농작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옷이 젖는 비 보다는 우박이 훨씬 좋았다.
입장차이(혹은 관점)라는 것이 같은 우박을 보고도 이처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똥이 더러워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농부에게는 꼭 필요한 거름이며 구더기에게는 천국이다.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얘기가 있다....비가 와도 걱정이고 안 와도 걱장이다.
다 좋아 할 수도 없고 다 나빠 할 수도 없는 것인데 내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