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86

모든 걸 다바꿔

경북 문경 봉암사에 모인 성철 스님 일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다. 성철 스님의 기억. "제일 먼저 비단으로 붉게 만든 가사들을 모두 벗어서 불싸질러 버리고 나서 우리가 직접 불교의 가르침에 맞는 괴색(壞色) 옷을 만들었제. 괴색은 청(靑) .황(黃) .적(赤) 의 3종을 섞어 만드는 기라. 바리때(밥그릇)도 나무로 만든 거를 전부 깨부수고 나니까 뭐 대신할 께 없어 처음에는 양재기로 밥을 담아 여럿이 같이 묵었제. 나중에는 옹기점에 가서 옹기를 맞춰서 썼지. " 스님들이 평소에 입는 장삼도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이 송광사 말사인 삼일암에서 본 적이 있는 보조국사의 장삼을 기억해냈다. 도반인 자운 스님에게 그 얘기를 하자 자운 스님이 삼일암에 가서 보고 와서는 그 모양대로 만..

경전/성철스님 2020.11.05

봉암사의 혁신

성철 스님이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위한 결사의 장소를 물색하다 경북 문경 봉암사로 결정했다. 당시 봉암사는 초라한 절이었지만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산 자락 양지 바른 명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봉암사는 지금도 조계종 특별 종립선원(禪院) 으로 참선하는 스님들만 모여사는 곳 일반인은 부처님오신날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엔 들어갈 수 없다. 처음 결사를 시작한 초기 멤버는 성철 스님 외에 우봉.보문.자운 스님까지 모두 네 명에 불과했다. 청담 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야총림(伽倻叢林) 의 틀을 잡는다고 바빠 '결사' 의 약속까지 해놓고 합류하지 못했다. 바로 이어 이 나라의 불교계를 이끌어갈 스님들이 속속 희양산 자락으로 찾아왔다. 향곡.월산.종수 스님에 이어 당시엔 젊은 축이었던 도우.보경.혜암(현 조..

경전/성철스님 2020.08.05

성철-청담의 의기투합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의 의기투합을 잘 말해주는 사례를 묘엄 스님이 기억하고 있다. 두 큰스님이 함께 경북 문경 대승사에서 수행할 당시 직접 보았던 일화다. 당시 대승사 선원(禪院) 앞에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버티고 서 있었다. 선방에 앉아 수행하던 성철.청담 두 스님은 그 나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야를 가로막아 가슴이 답답했던 탓이다. 두 스님이 "은행나무를 베어 버리자" 는데 뜻을 같이 했다. 절 한가운데 크게 자리잡은 나무를 벨려면 당연히 주지에게 허락을 받아야한다. 그런데 두 스님은 아무 의논이나 예고 없이 어디선가 톱 2개를 준비했다. 어느날 점심시간에 다른 스님들이 모두 공양(점심밥) 을 하러 공양간에 모인 사이 두 스님이 슬그머니 은행나무로 다가가 톱질을 시작했다. 대략 30분쯤 지나..

경전/성철스님 2020.07.03

'역사선생' 역할

묘엄(妙嚴) 스님은 56년이 지난 지금도 성철 스님이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한국사 도표와 사미니계첩 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 도표(사진) 를 보면 성철 스님이 묘엄 스님과의 약속에 따라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와 각종 문화상식까지 일일이 교재를 만들어가며 자상하게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도표를 보면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별 국호와 초대 임금과 도읍지, 유명한 장군과 신하의 이름, 이밖에 사학자들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까지 소상하게 적어놓았다. 아무런 참고서도 없는 절간에서 성철 스님은 순전히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묘엄 스님에게 방대한 한국사 도표를 그려준 것이다. 도표는 주요 사건이나 중요한 개념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형식 해방직후인 1945년말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경전/성철스님 202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