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병중일여(病中一如)

敎當 2019. 2. 18. 14:20


성철 스님은 매우 건강한 체질이었지만 팔순을 전후해서는 기력이 쇠퇴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특히 겨울 백련암의 추위는 노() 스님에게 힘들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겨울 한 철 동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임시거처를 부산에 마련했다.

 

말년 어느해 겨울,

부산에 내려가 머물던 성철 스님이 감기에 걸렸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감기는 금방 급성 폐렴으로 번졌다.   

급히 동아대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됐는데,

큰스님의 건강이 급히 악화됐다.

당시 나는 해인사의 대소사를 챙기는 총무국장직을 맡고 있어 주말에만 부산으로 내려가 큰스님을 뵈었다.

 

하루는 주말도 아닌데 "큰스님께서 급히 찾으신다" 는 전갈이 왔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부산 동아대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핼쓱한 얼굴의 성철 스님이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아무 말이 없다.

잠시후 건성으로 해인사 형편을 몇마디 묻다가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

 

"똑 같다. "

 

느닷없이 무슨 말씀인가. 나는 못알아들은 눈치로 말없이 눈망울만 굴리고 있었다.

 

"이놈아! 똑 같다 말이다. "

 

무엇이 똑같다는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용기를 내 물었다.

 

"무엇이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성철 스님이 한참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 젊었을 때나, 10년 장좌불와(長坐不臥:밤에도 눕지 않고 앉아 참선하는 것) 때나,

지금이나, 다 똑 같다는 말이다.

니 벽창호는 언제 면할라카노.

그 말도 얼른 못 알아듣나? 쌍놈 아이가!"

 

목소리에 짐짓 노기가 묻어난다.

그제서야 대강의 의미를 알아 들었다.

'똑 같다' 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일여(一如) ' 라는 말이다.

 

'일여' 의 단계엔 여러가지가 있다.

하루 중 바쁘고 바쁠 때에도 화두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경지를

동정일여(動靜一如.움직이나 안움직이나 같다) 라고 한다.

 

깨어 있을 때는 물론,

꿈 속에서도 화두가 밝고 밝아 항시 한결같은 경지는 몽중일여(夢中一如) .

잠이 아주 깊이 들어서 막연(漠然) 하면 숙면일여(熟眠一如) 가 된다.

 

성철 스님은 평소 선방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에게 그런 '일여' 의 경지를 역설해왔다.

 

'그런 숙면일여,

즉 오매일여(寤寐一如) 의 경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안과 밖이 투철(內外明徹) 해지고,

무심(無心) 을 얻어 큰 깨달음(大覺) 을 이룬다. '

 

성철 스님이 해인사 스님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던 법문(法文) 이 생각났다.

성철 스님이 와병중에 '똑 같다' 고 한 말은

'병이 위중해 때때로 죽음의 경계를 드나드는 지경에 이른 때에도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는 얘기다.

 

바로 병중일여(病中一如) .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도 생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깨달은 마음이 한결같다는 의미다.

 

성철 스님은 나에게 '처음 경험하는 병중(病中) 에서도 한결같음' 을 체험하고,

그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죽음 앞에서도 한결같음을 느낀다는 큰스님 앞에 나는 부끄럽고 숙연할 따름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나는 챙겨야할 일이 있었다.

큰스님의 사후(死後) 를 대비해야한다는 의무감이다.

죄송스럽지만 더 미룰 수 없는 일이라 용기를 냈다.

 

"큰스님! 오늘 이렇게 저를 불러서 '똑같다' 말씀하시니 제가 무어라 말씀드릴 수 없어 부끄럽습니다.

큰스님께서 언제 가실지 저희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니 오늘 몇 말씀 올릴까 합니다.

 

큰스님의 법() 은 누구에게서 받았다 하며 또 누구에게 전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후일에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 말씀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 언제 어디서 깨치셨으며 오도송은 무엇인지 일러주셨으면 합니다. "

 

정말 평소에는 큰스님 앞에서 감히 꺼낼 수 없는 말이다.

성철 스님이 다시 한참 나를 쳐다보았다.

 "종이와 만년필을 가져오라" 는 얘기에 서둘러 준비해 올렸다.

 

"앞에 한 질문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

 

'법의 승계' , 즉 큰스님의 적통(嫡統) 문제는 뒤로 미루자는 얘기.

그러면서 종이에 출가시(出家詩) 와 오도송(悟道頌) 을 적어주었다.

오도송은 출가 후 3년쯤 지나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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