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백련암 원주(院主) 스님

敎當 2019. 1. 30. 10:46

성철스님이 살던 백련암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원주(院主) 의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출가하고 대여섯 해가 지나서 였다.

참으로 실패의 연속이었던 행자시절을 마치고,

성철스님의 무염식(無鹽食.소금기 없는 식사) 을 책임지던

시찬(侍饌) 소임까지 마무리 짓는데 서너 해가 지났다.

 

행자.시찬의 의무를 마치고서는 몇 년간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데 정진했었다.

그러다가 상기병(上氣病) 이 걸려 고생하면서 무진 애를 먹던 무렵. 성철스님이 불렀다.

 

", 절에 들어 온지도 한 대여섯 해는 됐제.

그런께 아무리 곰새끼 같은 니도 인제는 절 살림살이가 어떤 줄 대강은 눈치챘겠제.

상기병도 치료할 겸 해서 인제부터는 좌복(참선용 방석) 에 앉아 있지만 말고

원주 소임 맡아가지고 다니면서 화두해라.

그라믄 한결 머리도 밝아지고 참선 공부도 쉬워질 끼라. "

 

성철스님이 상기병으로 고생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여러모로 고려한 끝에 내린 명인 듯하다.

미리 준비해둔듯 세심한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육조(六祖) 스님께서도 좌복 뒤에 앉아 조는 수좌(首座.수도승) 가 있으면

행선(行禪) 하라고 일부러 다 방에서 쫓아내버렸다 아이가.

또 육조스님도 동선(動禪) 을 강조하셨고 하니, 니도 앞으로는 움직이면서 화두 공부해봐라. "

 

'육조' 란 여섯번째 조상이란 말.

중국 선불교의 문을 연 달마대사를 첫번째 조상으로 따졌을 때

그 법통을 이은 여섯번째 스님 혜능(慧能) 을 말한다.

중국 당나라 시절 활동했던 혜능스님은

달마대사가 연 선불교 전통을 중흥시킨 인물로 성철스님이 자주 인용하는 고승.

 

그 혜능스님도 걸어다니면서 하는 참선인 '행선' 과 돌아다니면서 하는 참선인 '동선' 을 강조했듯, 성철스님도 나에게 좌선(坐禪.앉아서 하는 참선) 대신 걷고 돌아다니는 수행을 권한 것이다.

 

걷고 돌아다니는 일이 가장 많은 소임이 바로 '원주' .

큰 절의 주지와 같은 역할인데,

보통 작은 절이나 암자는 대개 주지 대신 원주라고 부른다.

보통은 주지스님이 있고 원주의 소임을 맡은 스님이 따로 있어 실질적인 살림살이를 맡기도 한다.

그러니 생각보다는 원주의 역할과 책임이 적지않다.

 

절집에선 철저히 계절의 흐름에 맞춰 한 해를 설계하고 살아간다.

 

엄동설한이 지나고 응달의 잔설이 녹을 무렵,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밭을 갈고 봄채소를 심을 준비를 해야한다.

다음으로 감자눈을 따 감자 씨 뿌릴 준비를 해야하고,

그 감자를 7월말이면 캐고 김장갈이를 한 다음 배추..갓씨를 뿌린다 

그러다 가을이 깊어지면 김장을 담가야하고,

정월이 되면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고 고추장을 만든다.

 

이 모든 살림살이의 책임자가 원주스님,

바로 나의 소임이 됐다.

행자시절부터 실수연발했던 나에게는 벅찰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성철스님은 나에게 암자살림을 맡겼다.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맡겨진 책임이니

또 실패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겨울이 지나고 원주로서 첫 봄을 맞았다.

다른 스님들과 암자에서 일을 도와주는 일꾼(평신도) 을 데리고 밭을 갈러 나갔다.

시금치.쑥갓.당근.시금치 등을 심었다.

여전히 서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예전처럼 엉뚱한 실수는 않았기에

신참 스님들에게 제법 일을 가르치며 밭일을 했다.

 

원주스님에게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암자 바깥으로 장을 보러다니는 것이다.

암자 텃밭에서 농사짓는 것이라고 해야 겨우 김치 담그는 정도에 불과하니

나머지 채소는 모두 백련암에서 20리 정도 떨어져 있는 가야장에서 구해와야 한다.

 

나같은 스님 입장에서 장보러 다니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주부들처럼 이것 저것 집어보고, 맛도 보면서 장을 보는 것도 아닌데다 길게 흥정을 하는 것도 어색했다 

장에 나가는 길도 간단치 않았다.

닷새나 열흘에 한번씩 열리는 장날에 맞춰

산속 오솔길과 돌길을 따라 30분 가량 걸어가야 시외버스 정류장이다 

버스로 장터에 도착해 물건을 사고는 다시 그것들을 전부 지고 메고 산을 올라야하니 예사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수행을 돕는다는 일념에서 열심히 들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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