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일타스님이 본 첫인상

敎當 2019. 12. 3. 12:00


1940년대초 어느 봄 성철 스님이

전남 순천 송광사 삼일암으로 하안거(夏安居.여름 한철 외부출임을 않고 수행하는 것) 를 지내러 갔다.

 

당시 그 절엔 출가한지 얼마 안된 일타(1929~99) 스님이 살고 있었다.

성철 스님의 후배격인 일타 스님은 경남 양산 통도사로 출가했다가

은사(고경스님) 가 입적하자 송광사로 옮겨왔다.

일타 스님이 생전에 처음 만난 성철 스님을 회고하며 들려주던 얘기다.

 

"하안거에 들어가기 얼마전인 어느 날 저녁

스님들이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 소리를 치는 것이야.

'철수좌 왔다, 철수좌 왔다' 고 하는데 꽤나 소란스럽더구만.

그래 '철수좌가 도대체 누구냐' 고 물었더니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말도 마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외우는 굉장한 스님이야' 라고 하더군.

그 소리를 들으니 호기심이 생겨 나도 철수좌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따라갔지. "

 

성철 스님은 먼저 나이가 많던 영월 스님 앞쪽으로 가서

절을 하고는 책상다리를 하고 철퍼덕 앉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면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당시 갖 서른을 넘긴 성철 스님이

노승 앞에서 당당히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니 여러 사람을 당황케 했음이 분명하다.

영월 스님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생식 하시는 분은 여기서 대중(스님) 들과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

 

하안거를 나게 해달라는 청을 하러온 사람에게 퇴짜를 놓는 셈인데,

성철 스님은 그저 무심한듯 당당한듯 대답했다.

 

"잘 알겠심더. 그냥 며칠 쉬어 갈랍니다. "

 

일타 스님에겐 그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다고 한다.

한마디 얘기도 나눠보기도 전에 일타 스님은 "저 스님은 뭔가 특이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부리부리한 눈빛이나 훤칠한 키가 다른 스님들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일타 스님은 성철 스님이 생식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상추를 뜯어다 씻어서 자꾸 가져다 주었다.

무뚝뚝한 성철 스님도 그런 호의에 고마웠던지

일타 스님께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그때 성철 스님한테 들은 말씀 가운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중노릇은 사람노릇이 아니다.

중노릇하고 사람노릇하고는 다르다.

사람노릇 하려면은 옳은 중노릇은 못한다' 는 얘기지.

지금 생각하면 그 말씀이 내 평생 중노릇 하는데 중심을 잡아준 말이 아닌가 싶어. "

 

며칠 머무는 사이 친해진 일타 스님이 성철 스님과 함께 삼일암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일타 스님은 삼일암에 있는 달마대사 탱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달마대사의 부리부리한 눈이 어쩐지 성철 스님의 눈빛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스님보고 괴각(乖角.괴짜) 이라고 하데요"   

성철 스님이 물어보는 일타 스님의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되물었다.   

"달마 스님 눈 봤나?"   

"봤습니다. "   

"눈이 커야 많이 보고, 눈이 커야 탁 하니 바로 가지. 눈이 작아 가지고는 옳게 못 본다. "

 

일타 스님에겐 그렇게 남의 마음을 읽어내는 듯한 성철 스님,

그리고 엉뚱한듯한 풍자도 인상 깊었던 듯하다.

며칠 지나 성철 스님이 하안거를 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됐다.

일타 스님이 은근히 따라갔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그 소리는 못하고 "혼자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성철 스님의 대답도 걸작이다.

 

"중이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이다. "

 

불교 경전에도 나와 있듯

구도자의 길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외로운 길이라는 말이다.

역시 일타 스님의 머릿속에 평생 맴돌던 말씀이라고 한다.

 

며칠만에 떠났지만

당시 송광사 방문은 성철 스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성철 스님은 그 때 송광사에 보관돼 있던 보조국사의 장삼을 봤다.

 

나중에 성철스님이 한국 불교의 기틀을 잡은

'봉암사 결사(結社.수행등을 위해 단체로 뜻을 세우는 일)' 를 할 때,

당시까지 제멋대로였던 승복(僧服) 을 정비하는 기준이 된 것이 바로 그 장삼이다.

 

당시 결사를 주도한 성철 스님은 봉암사 스님들에게 장삼을 지어입게 했다.

요즘 조계종 스님들의 복장을 결정지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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