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만공 스님과의 만남

敎當 2020. 4. 3. 11:42


성철 스님이

한국 근대불교의 큰 봉우리인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을 만난 곳은 충남 수덕사 정혜사(定慧寺) 였다.

젊은 성철 스님은 대선사 만공 스님에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다.

 

"큰스님은 견성성불(見性成佛.본성을 바로 보고 깨달음을 얻음) 하셨습니까?"

 

"내가 견성했지. 대구 팔공산에서 첫번째로 견성하고 또 세번째로 여기 정혜사에서 확철히 견성했지. "

 

만공 스님의 스승인 경허(鏡虛.1875~1939) 스님은 근대 선불교의 전통을 확립한 큰스님.

성철 스님은 경허 스님에 대해서도 많이 물었다고 한다.

 

"만공 스님께서는 경허 스님을 얼마나 존경하셨습니까?"

 

"이 사람아, 먼길을 가다가 아무 먹을 것도 없으면 내가 우리 스님한테 잡아 먹혀야 하지 않겠나?"

 

성철 스님은 당시 문답을 기억하면서 "만공 스님은 그런 스님이셨어" 라고 말하곤 했다.

성철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들었다면서 자주 인용하던 법어가 있다.

 

"만공 스님이 처음 정혜사에 와서 살 때는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지.

움막도 얄궂게 해놓고 형편 없었다 카더구만.

 

신심있는 대중들이 모여서 탁발해서 살았어.

봄이 되면 보리동냥을 한단 말이야.

그 보리를 절구에 넣고 쿵쿵 찧어서 밥을 해 먹거든.

그것도 모자라 시꺼먼 보리누룽지를 서로 먹을려고 장난을 하지.

 

그래도 그렇게 배고프게 살 때는 한철 지나고 나면 '나도 깨달았다.

내 말 한마디 들어 보라' 며 깨달음을 토로하는 사람이 나온다 말이야.   

그런데 그 뒤에 신도가 생기도 집도 좋은 집을 짓고

양식도 꽁보리밥 신세를 면하고 좀 넉넉해지고 나니까 공부 제대로 했다는 사람이 하나도 안나와. "

 

물질이 풍요하니 참 수행하는 스님들이 사라져간다는데 대한 아쉬움이다.

성철 스님이 그같은 말을 자주 인용하신 것은

만공 스님의 시대를 지나 성철 스님의 시대에도 그같은 경향이 적지않았음을 우려하는 뜻일 것이다.

 

성철 스님이 정혜사에서 만난 또 다른 인연은 청담(靑潭.1902~71) 스님과의 만남이다.

청담 스님은 성철 스님보다 10살이 많았지만 고향이 진주라 살아 생전 평생의 도반으로 가깝게 지냈다.

 

성철스님 생전에

"정화(淨化.불교계의 자정운동) 하러 떠나기 전까지

청담 스님처럼 열심히 정진하는 수좌(首座.수도승) 는 내 못봤데이" 라고 자주 기억하던 스님이다.

성철 스님은 1943년 청담 스님이 머물던 법주사 복천암에서 하안거를 났다.

성철 스님이 들려준 당시의 일화.

 

한철 열심히 살려고 소임을 짜고 있었제.

옆에서 그런 모양을 한참 지켜보던 조실(祖室.절집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노스님) 스님이 한 마디 하겠다는 것이라.   

그래 한 말씀 하시라 했더니

'이번 철에 모인 대중 면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공양주는 이 노장이 맡아야겠소이다.

그러니 공양주 소임은 빼고 다른 소임들을 의논해 주시지요' 라고 말하는 거라. "

 

공양주란 스님들의 밥을 마련하는 소임으로 흔히 정식출가를 않은 행자들이 맡는 힘든 일이다.

 

행자가 없으면 가장 신참인 스님이 맡는 것이 보통인데

절의 가장 큰 어른인 조실이 공양주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에 하안거를 위해 모인 스님들이 너무도 고매한 분들이라 공양주 맡을 사람이 없다는 판단이다.

 

당연히 그 자리에 모인 스님들끼리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남의 절에 살러 와 어른에게 공양주를 맡기느냐" 는 주장이 만만찮았다.

성철 스님이 나섰다.

 

"조실스님이 모처럼 신심이 나셔서 공양주 소임을 맡으시겠다니, 그렇게 원을 들어드립시다.   

그래야 조실스님 밥을 얻어 먹는 우리도 더 열심히 정진할 것 아인교.

그래도 미안하니 내가 먼저 공양주를 얼마간 하고,

다음에 조실스님이 공양주 해주이소. "

 

성철 스님이 그렇게 나서니 다른 스님들의 의견도 같이 모아졌다.

성철 스님은 늘 "복천암 한철을 조실스님이 해준 공양을 얻어먹고 잘 살았제" 라고 기억하곤 했다.

 

그 조실스님은 그렇게 유명한 분도 아니었고

성철 스님도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참선하는 후배 스님들에게

선뜻 밥해주겠다고 나서는 노승이 곳곳에 숨어있던 시절이었다.

 


'경전 > 성철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선생' 역할  (0) 2020.04.24
청담스님의 딸  (0) 2020.04.10
일타스님이 본 첫인상   (0) 2019.12.03
큰스님의 '깨달음'   (0) 2019.04.16
정진, 오직 정진   (0) 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