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나의 수행일지

무당과 도사

敎當 2020. 12. 21. 17:54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무더운 날씨에 남한산성 산행을 했는데 남문에서 서문을 지나 북문을 거쳐 동장대를 행하고 있었다.

동장대에서 벌봉으로 꺽어들어가는데 누군가 날 따라 온다는 느낌이 강하게들었다.

그래서 순간 걸음을 더 빨리하고 벌봉을 향해 걸었는데 숨을 헐떡이면서 급하게 쫒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뒤를 돌아보는 대신에 더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다 벌봉에서 한봉으로 다시 발걸음을 쉬지않고 옮겼다.

그랬더니 그 거친 숨소리도 벌봉에 머무르지 않고 한봉으로 가는 내 뒤를 바짝 쫒아오고 있었다.

드디어 한봉을 바로 앞에두고 난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길 옆에서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는데

뒤따라오던 그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결국 한봉에서 만났는데 자연스레 말을 주고 받으며 휴식을 취하게되었다.

 

당시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염색을 안해서 모자 밖으로 나온 머리카락은 흰머리소년이었다.

이분이 보기에 머리카락은 흰 사람이라 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걸음이 엄청 빨라서

내가 저 노인네보다 느려서야......하면서 기를쓰고 쫒아왔다는 것이다.....ㅎㅎㅎ

말을 하다보니 이분은 위가 상당히 안 좋아서 위에 좋은 생식을 권하다가 평창 은사스님 이야기가 나왔고

난 이분에게 평창 절위치를 상세하게 알려주면서 한번 가 볼 것을 권했는데 이분은 이내 평창 절에 들렸다.

그리고는 덜컥 그 절의 사무장이되어(컴퓨터 전문가라 카페를 하는 스님 입장에서는 유용했을 것이다)

한 3년 넘게 절 밥을 먹게 되었고 거기에서 스님으로부터 위 치료도 하면서 기수련을 지도 받게되었다.

3년 넘게 기수련을 했는데도 소질이 없어서인지 갈때마다 봐도 진전이 없었는데

그런스님 만나기도 힘드니 열심히 수련 해보라는 내 말이 무색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이 하산하고 말았다.

지금은 고향으로 낙향을 해서 농사를 짓고 암에 걸린 아내의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취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으니 부지런함은 알아주어야 한다. 

이런 인연으로 만나서 지방으로 내려가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이분을 만나러 덜 바쁜 내가 일부러 만나러가기도 했다.

심심하면 적적해서인지 자주 보고싶으니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지만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하기에

잠자리도 불편한 그곳에 가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작년에 수련 막바지에 집중 수련할 곳을 찾던 나는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서

지방 산행겸 이분을 만나기 위해 이분의 고향 인근의 산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잡은 곳이 소백산과 월악산 치악산 산행을 하고 사무장님이 쉬는 토요일에 만나고 올 심산으로 코스를 정했다.

출발 3주 전쯤에 미리 통보를 하고 치악산 등산을 마치고 전화를 했는데.....헉!

고교 동창회로 인해 만나러 올 시간이 안난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은 만나지 못하고 그냥 올라와야 했는데 이분이 올해도 또 내려오라는 시그널을 보낸다...ㅎ

 

올해는 작년과 비교해서 더 몸의 변화가 심해서 추석 전후로 해서는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제1챠크라와 좌골신경통으로 막힌 골반의 냉기가 풀리면서 터져나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만나면 술이라도 한잔 해야할 정도의 인연에게는 몸이 좋아지면 만나기로 하고 아예 연락도 끊어버렸다.

그런데도 이 사무장님은 내가 괜히 연락을 안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보고 싶다는 문자를 심심찮게 보낸다.

얼마 전에도 보고싶다는 문자가 와서 몸이 안좋다고 완곡하게 답장을 했는데 자기 몸 고쳐달라고 하려했는데

어디가 아프냐는 연락이 와서 있는그대로 써 보냈다.

사실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도를 닦는데 왜 아프다는 것이야!....라는 반응이다.

도를 다 닦아야 병에서 벗어나 안 아픈 것이지 수련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박사가 되면 전공분야에 엄청 해박한 전문지식이 많이 있지만 박사가 되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남들 놀때 공부하고 연구해야 박사가 되는것처럼 수련을 하는것도 과정이 있어야 도사가 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런 과정은 무시하고...도사가 왜그래?...하는 인식이라 될수 있으면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한다.

또 말을 섞는다고 해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못하니 괜한 불신과 오해만 더해 갈 뿐이다.

 

난 누누히 얘기했지만 풍으로 인해 쓰러지지만 않았을뿐이지 죽기 일보 직전에 평창 스님을 만나 병을 치료받았다.

그 인연을 만나지 않았다면 풍으로 쓰러져 죽었거나 한쪽을 못쓰는 반신불구의 몸으로

지난날을 한탄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또 지금처럼 생업은 거의 포기를 하고 기수련과 참선에 전념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게 좋은 인연을 만나고 특히 불교를 알게되면서 부처님이 가피로 생각지옥에서 벗어나 여여한 삶을 살고 있다.

수련을 하다보니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으로 알게되고 경험으로 알게되는 것들이 많다.

무당은 신내림을 받기 이전에 무병(巫病)이라는 것에 시달린다.

무병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내 경험상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단 피력 해 보겠다.

일단 뭔가를 잘 알면 쪽집게무당이니 도사니 하는 말들을 한다.

그럼 무당과 도사는 어떻게 다를까?

참선과 기수련을 해 보니 생각이 열리고 기운이 열리는 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

사실 기라는 것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인만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근이 수련을 통해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강한 기운이 소통되면

남들이 못 듣는것을 듣고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남들이 못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게된다. 

하지만 이런 기운을 수련을 통한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선천적으로 강하게 타고나면 무속의 기운이 되는 것이고

수련의 과정을 통해서 신장되면 도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선천적으로 아무 수련의 과정없이 기감이 발달해서 남들이 못 느끼는 기운을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아무런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수련을 통해서 기감이 엄청 발달하게되었다.

그러다보니 몸이 아픈 사람을 만나면 그 기운을 고스란히 느껴 내 건강에도 지장을 받아 힘들었다.

예를들어 풍환자를 만나면 내 몸의 힘도 풀려서 갑자기 다리가 끌리거나 하는 증상이 온다.

무속의 기운을 타고난 경우에도 표현만 다를뿐이지 나처럼 기운을 느낀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즉 도를 닦는다는 나나 무속의 기운을 타고났다는 사람과 기운으로 느끼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의 병증으로 인해 기운을 느껴 내 몸이 아프면 무속에서는 신병이라고 한다.

이 신병, 즉 남의 기운으로 인해 몸이 아프면 무속인은 이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

배워서 혹은 수련해서 기감이 예민 해 진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병기운을 스스로 빼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증이 아주 심한 사람을 만나서 무병이 왔다면 자연 치유되는 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수련을 통해 기감이 예민해졌기 때문에 이런 병증의 환자를 만나면 고통을 느끼지만

집에가서 기수련을 하면 내 몸으로 밀고 들어온 병 기운을 빼 낼 수 있는 것이다.

 

무속의 기운으로 인해 무병을 느끼는 사람은 수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무병으로 인한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경우에도 이런 일련의 과정과 수련을 통해 지금은 어지간한 병은 바로 밖으로 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왜 그리 아픈것인가?

불교와 인연이 되었을 당시에는 금방 죽어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닐정도로 심각하게 풍기로 막혀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수련을 통해 그 풍기를 조금씩 조금씩 뚫어가면서 건강을 되살리고 있다.

처음 수련할때부터 내 목숨을 위협했던 기운과 싸워 냉기를 몰아내고 있었을까?

아주 약한 냉기부터 조금씩 조금씩 싸워가면서 기운을 소통시켰을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목숨을 위협했던 더 강한 냉기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더 아프고 힘든 수련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 수련을 시작하면서 도를 닦는 것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물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렸하다.

나중에는 뼈가 깍이고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겸험 할 수 있다는 은사스님의 말!

그런 것이라면 아직도 더 깊은 곳으로 진전이 되어야 할 것고 지금보다 더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각설하고,

저 사무장님이 신기가 있어서 무속인이 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감이 없어 아무리 수련을 했어도 아직도 기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 고통이 마치 무속인의 무병처럼 말을 하고 있으니 살짝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십수년을 생업도 팽개치고 있는돈 까먹으면서 궁극적으로 무당이 되려고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닐것이다.

(이세상에 무당이 되고자 생업도 팽개치고 수련에만 매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오히려 무당이 되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바로 수련을 중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가 오고 있는것 같으니 무당한테 물어보란다....헉!....다른사람이면 몰라도 이분이 할소리는 아니다.

 

어느 무당이 과거나 앞일을 쪽집게 처럼 맞춰 유명세를 탔는데 막상 가보면 너무 실망을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는 잘 맞췄는데 지금은 왜 못 맞출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어떤 경우에는 기감이 잘 소통이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소통이 안 이뤄지는 경우일것이다.

무속인의 가장 큰 고민은 신을 불렀는데 신이 안 오는 경우라고 한다.

수련을 통해 신과 소통이 된 것이 아니고 우연히 이뤄진 것이기때문에 우연히 이뤄져야 앞날의 예언(?)이 가능한 것이다.

처음 기수련을 했을때는 모든 것이 마음 먹은대로 되었다.

배운것은 물론이고 안 배운것도 해보면 다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기(氣)최면이었는데 강아지를 상대로한 이 최면은 우연히 강아지가 일주일만에 죽음으로써

더이상 시연하지 않게되었는데 그후 가끔은 개미 등을 상대로 한두번 한적은 있다....ㅎㅎㅎ

 

무당이건 도사건 기를 바탕으로 하고 그 기감을 넓혀가는 수련을 누가 꾸준하게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무당으로 끝나기도 하고 도사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신기라는 것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도사가 되는데 있어서 플러스가 되는 요소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휘둘리는 삶을 산다면 어린아이에게 장검을 하사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 입문해서 가장 충격적이었고 의심이 들었던 것이 원래 좋은 것도 없고 나쁜것도 없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원래 선과 악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않다.

그 전에는 선과 악을 엄청 고지식하게 따졌고 그 잣대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것과 인연지어지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으로 갈릴뿐 원래 진면목은 그것이 아니다.

남이 보기에 무속이면 어떻고 도사면 어떤가!

아직 가보지 못한 그 끝에 정진만이 있을뿐이다....()()() 

'경전 > 나의 수행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현현상(瞑眩現象)  (0) 2021.02.03
반야심경과 천지팔양신주경 기도  (0) 2021.01.14
기(氣)는 있는가?  (0) 2020.11.23
중풍(中風)의 전조증상  (0) 2020.11.15
코로나와 목통증  (0) 202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