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나의 수행일지

충북 영동 천태산(天台山)산행

敎當 2016. 3. 31. 13:52

일단 한 달 간의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을 했다.
일상이 집과 산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항상 변화하는 삶이요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서 지루하지는 않다.
하지만 모처럼 장기간 시간이 나니 1년 365일 대부분의 산행을 남한산성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지방에 있는 산을 등산하고 왔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을 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곳이 임실의 성수산(聖壽山)이었다.


임실의 주산인 성수산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연관이 있다.
기도터로써 기도가 잘 된다는 말에 어떤 기운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정을 충북 영동에 있는 천태산과 임실의 성수산 그리고 근처에 있는 진안 마이산
이렇게 세 곳을 등산하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을 했다.
이 천태산 인근에 지인이 있어서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아쉽게도 등산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등산을 먼저 하고나서 지인을 방문하기로 했다.


천태산을 버스를 이용해서 가려고 보니 대전에서 옥천의 <시외버스공영정류소>에 도착해서
607번 버스를 타고 옥천버스터미널(종점)으로 3 정거장을 이동해
거기에서 옥천~양산간 버스를 타면 된다고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런데 성수산을 가는 것이 문제였는데 임실에서 가는 길은 지도로 보니 너무 멀게 나와 있었고
오히려 장수에서 등산하는 것이 훨씬 가까워보였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집에서 장수를 가려면 남부터미널로 가야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지만
성수산을 장수에서 갈 수 있다는 확신도 없어서 일단 분당터미널에서 대전으로 가서
성수산 교통편을 살펴보고 천태산과 성수산 둘 중의 하나를 먼저 선택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몇 일 동안 있을 짐을 꾸려 배낭에 넣으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배낭 용량이 35리터짜리인데 꾹꾹 눌러 넣으니 간신히 짐이 꾸려졌다.
토요일 오후에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막상 대전에 도착해서 생각을 해 보니 성수산에 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
장수에서 올라 갈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해서 일단 먼저 진안으로 가서 마이산 등산을 하면서

성수산에 관한 정보를 얻어 장수나 임실로 이동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판단 하에
진안 가는 차편을 알아보니 진안 가는 버스는 없고 장수 가는 버스만 있다.....헉!
그래서 다시 옥천으로 가서 천태산 등산을 하고 진안으로 가기로 다시 일정을 잡았다.


대전에서 옥천까지는 대략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옥천에 도착을 해 보니 시외버스터미널이 예전의 촌스럽던 시설은 온데간데없고
새롭게 신축을 해서 몰라보게 달라져 깜짝 놀랐다...^^
터미널을 나와 607변 버스를 타려니 주변에 버스도 안 다니고 사람도 없어 막막했다.
그래서 일단 저녁을 먹고 옥천버스터미널(종점)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식당을 찾아들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옥천버스터미널로 가는 607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 안에 있었다.
그걸 모르고 밖에 나와서 찾았으니...ㅎㅎㅎ


옥천버스터미널(종점)은 옥천역전 앞에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기차를 타고 한번 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 보니 수원, 영등포, 서울역 등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있었다.


역전 근처의 모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천태산을 가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방을 잡았다.
그런데 이 방이 문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수맥 때문이었다.
침대가 있는 꽤 넓은 방이었는데 씻고 나와 TV를 켜고 침대에 앉으니 수맥이 흘렀다.
이 집의 수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침대 모서리 부분만 수맥이 흐른다는 점과
보통은 수맥이 있으면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데 이곳 수맥은
침대에 앉아야만 느껴진다는 그런 점에서 다른 곳과는 좀 달랐다.
다행(?)히 침대 밑에 방바닥에 앉으니 이곳은 괜찮아 이곳에 침구류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맥기운이 점차 차 오르기 시작을 했는데
방 구조상 창문이 없어서 방안에 꽉 찬 수맥 기운으로 인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 횡성의 절 요사체에 수맥이 엄청 강했어도 30분~1시간 정도는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예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비몽사몽간에 잠을 자는 것인지 안 잔 것인지 모르게 아침을 맞이했다.
예전에는 잠이 안 오더라도 억지로 누워 잠을 청했었는데 지금은 잠이 안 오면
앉아서 기수련을 하던지 참선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다.
이 날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가 일어나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으로 향했다.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청국장으로 대충 요기를 하고 시간이 남아 옥천역을 둘러 본 후
옥천버스터미널로 가서 옥천에서 양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서는 탈 때와 내릴 때 카드를 두 번 찍는데 여기서는 타면 일단 돈을 내야한다.
물론 카드도 된다는 사실...ㅎㅎㅎ.....타면 찍어야 한다.



<누교보건소>라고 표기되어 있는 곳에서 하차를 하고 길을 따라 천태산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십 여 대가 주차하고 있었고
관광차에서는 등산객이 쏟아져 나왔다....외롭지 않은 산행이 될 듯 하다...ㅎㅎㅎ



천태산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안내문이 적힌 비석이다.
서기 668년 문무왕때 세워진 영국사라는 절과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정상까지 2.2Km라니 어제 잠은 잘 못 잤지만 별로 어렵지 않은 산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ㅎㅎㅎ



안내석을 지나 만나는 곳이 여기인데 바위가 많은 것이 심상치 않다.
지인이 있는 곳도 천태산 자락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처음 와 보는 곳이다.



삼신할머니 바위라는 명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식이 없던 사람 들이
자식 낳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들이던 바위 인 듯하다.



삼단폭포인데 갈수기인데다 가뭄이 심해 장엄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보지 못했다.



천태산영국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는데 입장료가 1000원이었다.
단체로 온 등산객이 많아서 그냥 들어가도 될 듯 했는데 당당히(?) 돈을 내고 들어갔다...^^



수령이 10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223호)인 은행나무다.
꿈이 이루어지는 곳인 은행나무에 소원지(所願紙)를 달아보라는 현수막위에 소원지가 빼곡하다.
높이가 31m에 달하는 이 은행나무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으면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는데
식물이라고 해도 오래되거나 영물(靈物)인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행나무를 지나니 만세루(萬歲樓)라는 누각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만세루를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인데 단청이 있어도 화려하지 않고
웅장하고 질서 정연하게 누각을 받치고 있는 기둥하며 날렵한 지붕선 등
사찰건축에 문외한이지만 빼어난 곡선미와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누각 기둥사이로 지나가면 대웅전이 보인다.
스님이 대웅전에서 염불을 하고 있어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멀리서 찍었다.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이름을 국청사라 했고
고려 고종때는 금당(金堂:절의 본 건물인 대웅전을 일컫는 말)건립하였는데
고려 공민왕때 홍건적의 내습을 피해 이곳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였다하여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로 고쳤다고 한다.



대웅전 좌측으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있는데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원불봉인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전에 부처님을 모셔놓은 곳으로 보인다.



원각국사비가 모셔져 있는 곳의 전경이다.


원각국사비 해설비문의 일부다.



원각국사비를 가까이에서 찍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마음만 급해서...ㅎㅎㅎ



좌측이 석종형석탑 우측이 원구형석탑으로 이 승탑은 원각국사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사리를 석탑에 모셔 놓았는데 이 석탑에도 어느 스님을 기리기 위한
석탑이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안내문에도 석탑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나와 있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는 석탑이지만 주변에 잘 가꾸어진 소나무가
과거 스님의 청정한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였다.
 
이제 영국사 영내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별로 멀지않은 정상(2.2km)까지의 거리로 인해 안심하고 영내 구경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막상 등산을 하려고 산을 보니 온통 바위산이었다....헉!...어제 잠도 잘 못 잤는데...@@@



우측상단에 보이는 바위산이 올라가야 하는 등산코스다.
이곳으로 올라가서 좌측으로 능선을 타고 가다 좌측 끝자락으로 하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요 정도는 뭐 애교로 봐줄만한 코스다...ㅎㅎㅎ



이곳이 제일 힘든 코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성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옆으로 돌아가는 코스가 있어도 도전정신으로 올라간다.
어찌보면 여긴 쉴 곳이라도 있지만 곳곳이 사람이 많고 길이 외길에 정체되어
딱 발 하나 디딜 수 있는 곳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코스가 많아 쉽지는 않았다.



발아래 저 멀리 영국사가 보인다.



이곳 바위는 사암(砂巖)인 듯 한데 신발이 짝 달라붙어 등산하기 좋았다.
다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은 바위가 부셔져 모래처럼 쌓인 곳도 있어 미끄러워 위험했다.



올라가는 중간 중간 주변의 전경을 보니 이곳 주변에도 바위가 많은 산이 대부분이었다.



급경사고 바위산임에도 생명력은 끈질겨 이곳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환경 탓만 하고 있었다면 이런 뿌리를 내리지 못 했을 텐데 적응하고 극복하니
숲을 이루고 있어 지옥도 적응하면 극락이라는 스님의 말이 생각이 났다...^^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을 하니 어느새 정상까지 올라왔다...^^
잠도 못자고 무거운 배낭을 매고 줄을 잡고 바위산을 오르려니 조금 힘든 면도 있었지만
항상 고생을 하고 난 이후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녔길래 길이 이처럼 파였을까!
사람 입이 무섭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많은 사람이 모이면 못 할 일이 없을 듯하다.



하산하는 길 따라 산악회에서 저마다 리본을 달아 놓았는데
자연 경관을 해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행위예술처럼 보이기도 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마음속에서 결론이 안 났다.

옥천에서 양산가는 버스를 9시쯤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등산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인에게 연락을 해 보았는데 엄청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으려 다음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옥천을 거쳐 대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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