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식과 성명학 &氣

참선과 기수련

敎當 2015. 1. 30. 11:37

불교에 입문해서 불교 공부를 하고 참선을 하다 기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 기간이 어느덧 10년 정도가 되었다.

요즘 큰스님들의 일대기나 전기를 읽으면 먼저 눈여겨보는 것이

언제 출가를 해서 얼마 만에 깨우쳤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보통 젊을 때 출가를 하신 대부분의 스님이 6년에서 10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럴 때면 어리석게도 나도 일찍 출가할 인연이 있었다면 하면서

아쉬워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쓴 웃음을 짓는다.

별다른 욕심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해탈에는 욕심이 있었나 보다...ㅎㅎㅎ

 

난 이미 얘기한대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절을 찾게 되었다.

2~3일만 늦게 왔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큰스님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소리로 듣고 귓등으로 흘렸는데

이제는 내가 남에게 건강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삶을 고집하던 사람이 죽었다.

그런 사람과 과거의 나를 유추해서 비교해 보면 난 천운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난 내 삶의 방식을 바꾸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과거의 나와 비교해 보면 다시 태어난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2~3일 늦었으면 죽었을 것이라던 스님의 말에 지금은 전적으로 동감을 한다.

 

아침마다 꾸준히 하는 것이 참선과 기수련이다.

참선과 기수련은 우선 그 출발점이 다르다.

기수련은 건강을 위해서 한 것이라 굳이 구분하자면 기술적인 면이 강하다.

말이 기술적이라 표현을 한 것이지 기를 내가 마음먹은 대로 보내는 수련이라

이것도 마음공부가 된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보낸다는 것이 숙달이 되면 사무실에서 전화를 하면서

혹은 이처럼 글을 쓰면서 아니면 TV시청을 하면서 기를 보내는 훈련이 가능하다.

하지만 참선은 고요한 가운데에서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상을 하면서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아직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참선 삼매라는 것이 시장 통 안에서도 할 수 있다는 글을 보면

아직 그 경지에 못 올라서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고요함을 찾는 것이지

경지에 올라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수행이 가능함을 깨닫는다면

지금의 이 글을 접고 새롭게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 인연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바램이다...ㅎㅎㅎ

그래서 아직은 기수련은 기술적인 면이 강하고 참선은.....이렇다

요렇게 구분을 지어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 하는 수련은 아무래도 사회생활도 하다 보니 뉴스도 봐야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시청도 좀 해야 남들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TV를 켜고 수련을 하는데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침 수련 시간을 늘리기로 하고 시간 조정에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서 8시까지 2시간 수련을 했다.

그러려면 보통 12시에는 잠을 자는 것이 보편화된 내 생활이었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11시에 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저녁 11시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는데 아쉽기는 하다...^^

 

3시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2시간이 너무 짧다.

참선과 기수련을 하기에도 또 독경을 하기에도 서로 부족한 시간이다.

기수련을 하다 막힌 기운이 잘 뚫리고 있는데 독경을 해야 한다.

독경을 하다 뭔가 막 열기가 올라오려고 하는데 또 끊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을 좀 더 늘려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1시간 더 할애를 했다.

시간의 이동이 있을 뿐이지 자는 시간과 공부하는 시간 등은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습관을 바꾸려니 힘들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어릴적부터 몸에 익혀야 하나보다...ㅎㅎㅎ

 

아침에 하는 수행이 1시간 늘은 것 외에도 촛불을 켜고 하는 것과

눈을 뜨고 하는 것 등 작지만 변화가 조금 많이 있었다.

변화가 있었던 만큼 성과도 있어 내 생각에는 기량도 쑥쑥 커나가고 있다.

호흡 방법을 보면 복식호흡 단식호흡 단전호흡 뇌호흡 등 종류도 많다.

난 이런 많은 것들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하면서 자연스레 터득을 하게 되었다.

간혹 이런 종류의 수행을 하는 사람은 책을 볼 것을 권한다.

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난 이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보다 많은 수행기간과 노력을 하는 사람이 권하면 모르겠는데

수행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아 공부는 별 진전도 없어 보이는데 입으로는

마치 자기가 이런 것을 다 경험을 한 것처럼 이래라 저래라 한다.

 

사람들이 입으로 하는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천도제에 관한 것이다.

불교 카페에 들어가 보면 천도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스님이 어떻고 천도제가 어떻고 귀신이 어떻고.....

결론은 천도제도 할 필요 없고 귀신도 믿지 말고 오로지 기도를 하라고 한다.

과연 이들이 빙의가 되어봤고 그 귀신을 기도로써 퇴치를 해 봤는지 묻고 싶다.

빙의되어 고통의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도 많은 카페를 기웃 거리다 보면

귀동냥으로 들은 풍월은 있어 이처럼 남의 일이라고 대책없는 말을 한다.

물론 기도를 하지 말고 미혹한 일에 매달려 요행을 바라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피나 영험록에 쓰인 얘기는 그 사람의 실상에 잘 맞아서 받은 것이지

똑같이 한다고 해서 다 가피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내가 하는 공부의 특징은 책을 잘 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보다는 직접적인 내 것을 체험하고 싶어서고

또 혼자 하는 공부지만 잘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답답함도 없고

저자의 경험은 그에게 맞는 것이지 나와는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며

글은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도 다 겪고 이룬 것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도를 깨치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쓴 수행방법은 그 사람에게 최적화 되어있는 수행방법이다.

어찌되었건 아직 내 근기가 낮아서인지 공부가 막혀 답답함은 없다.

 

책에서 도를 구하는 것은 책으로 연애를 배우고

남녀관계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난 남이 간 길을 따라 가지 않고 내 독창적인 길을 가려고

참선의 방법이나 기 수련과 관계된 일체의 책은 보지 않는다.

물론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를 한다.

하지만 수행하다 막히거나 모르겠으면 하는데까지 일단 내가 해 봐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선 답답하니 책을 찾게 될 것이고 책의 방법대로 내 길이 열리지 않으면

더욱 답답함과 초조한 마음에 난관에 봉착을 할 것이다.

 

예전에 신기한 일을 경함을 했을 때 욕심이 생겨

또 다른 신기한 것을 경험해야겠다는 상()이 생겨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책을 본다는 것은 이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이 이 대목에서 이렇게 되었더라는 상을 갖고 있으면 결과는...ㅠㅠ

공부가 잘 되면서 요즈음 몸이 기운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통증이라는 것이 새로운 고통으로 느끼다가도

자세히 생각해보면 과거에 이미 이런 통증이 있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기운이 막혔지만 몸이 적응되어진 기운이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막힌 기운이 뚫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희열이 되기도 한다.

 

이미 이런 고통은 이런 수행을 시작을 했을 때부터 잉태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지금에 와서야 느낄 뿐이다.

지옥도 적응하면 극락이라는 말을 큰스님이 자주 썼었다.

고통이 아니라 매일 새로 태어나는 아픔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편하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이 불을 밝히고 정진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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