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식과 성명학 &氣

무서운 이야기

敎當 2014. 11. 25. 23:42

어느새 직장을 쉬고 수행에 전념한지 5개월이 되어간다.

이렇게 장기전으로 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렇게 장기적인 휴식도 지금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때 내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오겠지만...^^

 

이미 앞서 밝힌 대로 집과 산을 오가는 수행을 하고 있다.

남한산성 산행은 집에서 걸어서 출발하여 유원지 입구에 도착을 하면

30분이 걸리기 때문에 남문까지만 다녀온다고 해도 2시간은 걸린다.

그러니 마천동으로 하산했다가 올라오거나 성을 한바퀴 돌면

기본 4~5시간의 산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시간 산행을 하면 유원지 입구의 찜질방에 들러

뭉친 근육도 풀어주고 막힌 기운도 돌리고 샤워도 한다.

 

이 찜질방은 기수련 초보 때 수행을 하다 빙의가 되었을 때

스님이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고 빙의기운을 스스로 빼 보라는 소리에

빙의 기운이 찬 기운이니 뜨거운 기운으로 빼 보겠다며

나름 빙의 기운을 떨치기 위해 선택했던 곳이며

불가마에 들어가 앉아 들고 나는 손님들의 기운을 살피고

내가 느낀 기운이 맞는지 틀리는지 공부하는 학습장이기도 했던 곳이다.

 

작년 초 1월쯤에 친동생이 사회에서 만난 동생과 날 찾아온 적이 있다.

친동생보다 3~4살쯤 어리다고 했으니 작년에는 4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명문대인 S대를 나와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고

이것저것 하다가 재기를 위해 사회적 기업 신청을 하고

자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는데 같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나도 건설업을 하다 IMF를 맞아 부도는 안 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로

결국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돈보다도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 내려놓고 수행에만 정진을 하고 있지만

40대의 엘리트로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스트레스로 심장에 이상이 와서 죽을뻔 했기에

심장에 이상이 왔을 때 발생하는 그 기운을 알고 있다.

언젠가 평창 절에 다닐 때 미국인이 온 적이 있는데

이 외국인이 술을 엄청 좋아하였고 그 결과 심장에 이상이 왔다.

내가 그 기운을 감지하여 그 미국인을 절에 데려온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마침 그날은 스님이 자신보다 기(氣)로는 월등하다는 윤거사가 와 있었다.

나는 한국 친구에게 윤거사를 알려주고 기치료를 받고 오라고 보냈는데

같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윤거사에게 왜 치료를 안 해주냐고 물어보니

치료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 후 이 외국인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사망을 하였다.

 

난 처음 보는 친동생 후배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며

사업도 좋지만 심장이 안 좋으니 술은 끊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러자 이친구가 하는 말이 사업하는 사람이 어떻게 술을 끊느냐고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내가 더 이상 해줄 얘기가 없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같이 술 한 잔 마시고 헤어졌는데

작년 8월경에 이 친구가 나에게 볼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심장이 더 나빠져 있었다.

일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하기로 하고 조심스레 술 얘기를 하자

역시 전과 같이 사업하는데......이런 얘기를 한다.

이 친구는 작년 10월에 술 마시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택시 안에서 호흡 곤란이 와서 병원 응급실로 갔으나 죽었다.

 

사람이 죽으면 사업이고 돈이고 아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친동생의 삶에도 변화가 왔다.

40대의 청춘(?)이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후배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조금 받았는지 절주를 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절주가 아니라 금주뿐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몸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면 읽는 분들은 친동생인데 어떻게 남 얘기 하듯이 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남들은 내 말을 잘 듣고 잘 따르는데 형제간 가족간에는

내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고 듣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스님이 여보게 도를 깨치거든

절대 고향에 가서 스님노릇 하지 말라고 했을까.....ㅎㅎㅎ

 

지금은 찜질방에 가서 불가마에 앉아 들고 나는 사람들 기운을 알아도

입도 벙긋 하지 않고 그냥 내 할 일만 하다 오곤 한다.

그러다 인연이 되어 말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한 두 마디 하고 올 뿐 전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지 않는데

그래도 수시로 가다보니 얼굴을 알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중에서 자주 오시는 한 여성이 붙임성이 좋아

말도 몇 마디 시키니 대답도 하게 되어 아는 채는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그분의 몸이 좋지 않아서 안 좋은 곳 애기를 해 주니

그 것으로 인해서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자꾸 물어보기에

기공부를 조금 해서 안다고 했더니 졸지에 <기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어떤 분은 그 뜨거운 불가마 안에서

자기는 어디가 안 좋은것 같으냐고 물어 온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뜨거워 말에 집중도 안되고

나는 상관이 없지만 그 분은 내 말을 들을 수 있게 장시간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또 진짜 자기 병을 알아서 치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불가마에서 나와 있었을 때 개별적으로 찾아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기운을 느껴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을 보지 않고서도

몸의 상태가 어떠한지 기운이 읽히기도 한다.

예전에 절에 다닐 때 스님이 하산해 있는 신도들

뭐 하는지 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고 내가 그것을 하고 있다.

오늘도 산에 올라 수어장대에서 마천동으로 내려갔다가

연주봉 옹성으로 해서 남문으로 하산을 하였다.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 아줌마의 기운이 들어온다.

기운으로 보아 오늘은 몸 상태가 영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불가마로 들어갔다.

이 아줌마는 정기권을 끊어서 거의 매일 출근하는 분인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아까 느꼈던 기운은 뭔가..........?

한 시간쯤 지났는데 누가 아는 채를 해서 돌아보니 그 아줌마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서 경락을 1시간 동안 받고 왔다는 것이다.

 

기 수련을 하는 죽기 살기로 하는 이유는

이런 기운들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힘들기 때문이다.

기브스를 하고 있으면 뼈가 어떻게 금이 갔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내 기운이 약해 방어를 하지 못하고

남의 병의 기운이 내 기운보다 세다보니 내 기운을 뚫고 들어와

내 기운에 영향을 미치니 그 통증 고스란히 느낀다.

남의 병으로 인해 힘이 들으니 자연 뿌리치기 위해 내 기운을 강하게 기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정진 해야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번도 이걸 왜 시작을 했는지

후회 하지는 않았고 재미있어 했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다 풍이라도 맞은 사람이 내려오면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남의 기운을 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안 봐도 내 기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힘들어도 죽기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기운이 세져 지금은 그런 사람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몸의 막힌 기운을 다 뚫지 못했기 때문에

기운을 허비하기 싫어서 어지간하면 기 치료는 하지 않고

몸에 무리가 가거나 좋지 않다고 하면 삼가하는 생활을 하고

하루 종일 수련을 하고 자는 순간까지도 기 수련을 하다가 잠이 든다.

 

마침 오늘은 찜질방에 손님이 별로 없고 항상 같이 오는 일행도 없어

이 아줌마한테 잔소리(?)를 좀 해줬다.

밤 낮으로 수련을 하다보니 기운이 세져서

이제는 약한 병 기운은 자체 방어가 되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몸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진짜로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이 아줌마는 허구헌날 찜질방에서 땀을 빼는 것이

본인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을 하는지

땀을 얼마나 많이 빼느냐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하고 간다.

등산을 해 보라고 해도 소귀에 경 읽기다.

요즘 들어 이 아줌마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

그래도 만나면 가끔 음료수도 사 주기에 그 보답으로

기운이 많이 막혀 있어서 자칫 몸이 감당하지 못하면

쓰러질지 모른다고 했더니 왜 선생님은 <무서운 소리>만 하냐고 한다.

 

아마 작년에 죽은 후배나 미국인이 이 말을 들었다면

무서운 얘기가 아닌 생명의 소리로 들었을 것이고

왜 조금 더 그때 강하게 말해주지 않았냐고 원망 할지도 모른다.

강하게 말한다는 것은 더 무섭게 하라는 소리인데.....ㅠㅠ

같은 말인데도 누구는 무섭다고 느끼고

누구는 덜 무서우니 더 무서운 소리를 해 달라고 할지 모른다.

이래서 사람은 그 당시에 알면 좋으련만 시간이 흘러 그 경지를 맛 보아야 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는다는 것이다.

 

난 오늘 무서운 얘기도 우스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받는사람 입장이나 그릇에 따라

때론 우습게 때론 무섭게 때로는 진지한 얘기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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