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식과 성명학 &氣

측은지심(惻隱之心)

敎當 2012. 12. 5. 20:00

 

어느덧 기 수련을 시작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 입문을 한 게기는 내가 기의 세계를 알고

호기심이 일어서 스승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병을 있어서 절에 갔다가 우연히 입문을 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내가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서

그냥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수행을 하였을 뿐이다.

물론 기수련만 하는 것은 아니고

독경과 염불 참선 등 일상에서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수행을 하였다고 생각을 한다.

 

예전에 은사가 있을 때에는 모든 공부를 물어보고 익혔지만

홀로 수행한지 이미 4년이 넘은 지금은

모든 것을 일상에서 보고 배우고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내 느낌이 맞는지 아는 소리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될 수 있으면 말을 아끼는 편이다.

하지만 천성이 남의 어려운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까닭에

아무런 금전적인 소득이 없고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도

몸이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내버려 두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몸은 자기 것이지만

본인이 얼마나 내 병이 위중한지 모르는 까닭이고

시기를 놓지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지경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알려 주어도

본인의 인연 따라서 받고 못 받고 하는 것을 아는 까닭에

물론 예전처럼 집중적인 권유는 하지 않지만......

 

 

오늘은 모처럼 외출을 하였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나온 김에 OO동 스님을 뵈러 발길을 잡았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아마도 거의 3달 만에 들리는 것 같다.

내가 가면 스님의 첫마디가

“뭐 물어보러 왔는데?”이다.

그러면 내 대답은 항상 똑 같다.

“궁금해서 물어보러 온 것 아닌데요”

사실 전에도 그랬지만 불교를 알고부터는 더욱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관심도 없다.

나름대로는 다 내려 놨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측은지심>이다.

다른 것은 나름 마음먹은 대로 되는데 이것은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블러그를 보고 상담을 하면 내 이익을 떠나고

유·불리를 떠나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소개도 한다.

 

 

처음에는 선학원이라는 간판에 끌려서 친견을 하였는데

스님 말로도 예전에는 80~100명씩 앉혀놓고도 기치료를 하였는데

교통사고가 난 후로는 기치료를 안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보낸 사람들이 몸이 아픈 사람이 많다보니

스님 얘기로는 나를 봐서 기치료를 한다고 하였는데

결론은 좀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나처럼 손을 대고 치료를 하던지 스님처럼 환부를 탁탁 쳐서 하던지

그 방법은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병의 치료가 안된다는 것이다.

주로 뭘 봐주는 것을 잘 하시는지

신도들 태반이 답답해서 물어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부적을 주면서 어디에 붙이라거나

속옷 쌀 동전 등을 가져와서 액을 소멸하는 의식을 한다.

 

 

오늘은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절을 하고

스님께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자말자 내 기수련에 관해 얘기를 한다.

남의 기운을 읽는다는 것은 무당이 하는 것이라며

직장에 다닐거면 수련을 그만두고 직장을 열심히 다니고

수련을 할려면 직장을 그만두고 은사스님 상좌로 가서 열심히 시봉을 하면서 배워야지

직장인도 아니고 수행인도 아닌 상태에 있으니

기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고 무속도 아니라며

그런 상태에서 아는척 떠들고 다니지 말고

돈이던지 수행이던지 욕심부려 두 가지 다 잡지말고

하나는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다 맞는 말이고

나를 위한 아낌없는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불현듯 3달 전 절에 왔을 때 생각이 났다.

스님과 친견 전에 한 보살님이 무릎이 아프다고 하길래

무릎은 위가 안 좋아서 오는 병이며 음식은 무얼 먹어야 하는지

아무 생각없이 병증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무릎이 아픈데 왜 위가 안좋다고 하느냐는 질문에

공부해서도 알지만 기운으로 느껴서도 안다고 한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 일이 스님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예전 평창 절에 다닐 때도 느꼈지만

우리나라 절의 신도들은 얼마나 스님에게 잘 보일려고 하는지

미주알고주알 신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일러바친다.

절에 가면은 절마다 스님의 방식이 있는데 자꾸 다른 소리를 섞으면.....

이 소리에 불현듯 과거 3개월 전 생각이 났다.

그러니 오늘 일은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고

남의 절에 와서는 입조심 하라는 경고일 뿐이다.

 

 

얘기가 여기서 끝이 났으면 아마 이글은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 업이라 생각을 하고 절에 가지 말던지

가더라도 아무소리 안하고 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스님은 평창스님에게도 악연이 있다.

예전에 어느 보살님이 이 절에 다니던 돈 많은 신도를

평창 절로 인연을 맺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평창스님이 실력이 없기에

마치 나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가 된 듯이 싸잡이 비난을 한다.

병증을 기운으로 안다는 것도 기가 아니라 신기이며

손을 대기만 해서 병을 치료 한다는 것도

기로 암을 치료 한다는 것도 있을수 없는 일이며.....헐

그래서 불뚝 하는 성질이 고개를 쳐 들었다.

 

 

병증을 느껴서 얘기를 했는데 맞다면 망상이 아니다.

더구나 병을 치료한다면 아는체가 아니라 실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평창스님과 OO동스님의 기(氣)차이는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천지차이다.

그래서 OO동스님에게 가서는 공부 얘기는 입 밖에 꺼낸 적도 없다.

스님으로서 찾아뵙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뭘 봐주고 부적을 주고 속옷으로 업장소멸을 한다는 것이

불법이라고 보기보다는 무속에 가깝다고 생각을 한다.

상좌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평창스님이 출가를 권유했을때 출가를 했을 것이다.

그때에도 단호히 출가할 마음이 없음을 얘기를 했고

지금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스님들의 그릇에 실망감마저 든다.

 

 

어느 보살님이 집으로 가는데 담배를 피는 청소년이 있어서

훈계를 했더니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서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남들이 이해 못하는 말을 해서 욕먹지 말고

측은지심이고 뭐고 일체 얘기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

담배 피는 청소년을 훈계한 것이 잘못된 일일까?

불교는 반야바라밀

즉 반야의 지헤를 얻는 종교이다.

자식 같아서 훈계를 한 것이 잘 못 된것이 아니고

말로 안되면 물리적인 힘으로라도 제압해서 훈계를 할 힘이 있어야하는데 없으면서

내 처지를 모르고 생각만 앞선 것이 잘 못된 것이다.

욕을 먹어야 욕을 안 먹는 방법을 알게되는 것인데

그 욕이 두려워 벙어리로 살고자 한다면

죽음이 해탈이라고 믿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절에 가다보니 불교를 알게되었고

불교를 알게되니 더욱 절에 열심히 가게 되었다.

기를 수련하다가 보니 소질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질이 있다보니 열심히 했을 뿐이다.

병증을 알고 있기에 가르쳐준 것이고

가르쳐 주다보니 내 실력도 늘어나게 되었다.

소질있다고 가족 다 버리고 출가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직장생활 하면서 시간내서 하는 공부 거두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생에 도 다 못 닦으면 다음 생에 닦으면 되는 것이고

훌륭한 선생 못되면 학생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내 입장을 얘기하면

욕심이 많다하고 고집이 세다고 한다.

“예, 스님 제 생각이 짧았네요!”

이 한마디에 스님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누군가 원하는 답을 말해 줄 수 있는

예전과 달라진 내 마음에도 화색이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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