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식과 성명학 &氣

참선과 기수련

敎當 2013. 7. 8. 21:21

절에 다니는 불자치고 참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참선이란 말이 대중화되기도 했다는 반증인데

실제로 절에 가보면 참선도량이라고 하지만

참선을 제대로 하는 절은 드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얼마 전 기존 평창 원각사를 떠나서 혼자 참선을 하다 보니

도반이 그립기도 하고 점검을 받을 마땅한 곳도 없어서

인터넷을 뒤지다 참선도량이라는 말에 끌려 절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 절에 당도해서 스님을 만나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뭘 배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참선도량이 필요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냥 들러서 차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또 내가 배운 기공으로 회향도 좀 하겠다는 생각으로

절의 규모나 신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니게 되었다.

처음 참선에 참가를 하고 보니 문제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처음 온 신도가 나 말고도 또 있었는데

참선하는 자세나 방법은 지도해 주지 않고

바로 참선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참선을 처음 접하는 신도는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참선을 잘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절은 조계종 종단 소속의 절이었는데

잘 알다시피 조계종은 선을 위주로 하는 종파이다.

그 중에서도 간화선을 위주로 하는데

간화선은 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법이다.

사실 여러 참선법 중에 간화선이나 위빠사나 혹은 삼매에 드나

한가지로만 참선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숙달된 사람이 아니면 서로 왔다갔다 하는데도

처음 시작 할 때 화두를 들고 참선을 했다고 간화선을 한다고 하고

관(觀)법으로 시작을 했다고 해서 위빠사나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참선을 하던지

호흡을 어떻게 하라고 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기는 호흡을 따라서 움직인다.

하지만 이때에도 자연스런 호흡이 중요한데

단식호흡이니 복식호흡이니 하면서 강제로 호흡을 한다면

이것 역시 몸에 상당한 역효과를 초래하는데

자연스레 호흡을 하다 때가되면 복식호흡이 저절로 된다.

이것을 강제로 하다 보니 탈이 생겨 상기가 되어서

단전에는 기가 하나도 없이 흩어져 작은 기운에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강제호흡은 2년을 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잡는 데는 3년도 더 걸렸다.

 

이 절에서 참선을 좀 했다는 분이 어느 여자 신도 분에게

참선을 하면서 어떤 생각으로 하느냐고 물어보니

이 여신도 분이 하는 말이 그냥하기 뭐해서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면서 참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거사님이 <관세음>에서 호흡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보살>에서 호흡을 밖으로 내 뱉으라고 조언을 한다.

그런데 이 호흡을 해 보면 그 거사님 말대로 할 수가 없다.

끊어서 호흡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되지 않는 호흡을 억지로 하면 역기(逆氣)가 되어서

신체 리듬에 나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래서 지도해주는 스승이 필요한 것인데

고만 고만한 실력으로 아는 채를 한다는 것은

심히 염려가 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니 스님도 법사도 그 거사도 참선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를 하고 있었다.

 

참선과 기수련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지 둘 다 똑 같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듯이 앉아서 마음을 한 곳에 두고 관을 하던지

한 생각 멈추던지 한 곳으로 기를 집중해서 보내던지 한다.

단지 기를 보낼 때만 인위적인 생각이 집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념으로 하는 것은 참선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기수련을 해도 신통이 열리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참선의 방법에 대해 호흡법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얘기 할 수밖에 없어서 적당한 시기에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스님이 참선방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현재의 난 참선이던지 기수련이던지 한번 앉으면

보통 3~4시간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

그런데 여기 참선방에 와 보니 50분 하고 10분을 쉬고

다시 50분을 참선을 한다.

그런데 이 10분 쉬는 시간에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참선방을 빙빙 돌아다니며 다리 저림을 풀고 다닌다.

이 현상은 스님이건 법사건 신도건 예외 없이 똑같이 하고 있는데

그 행동에 개의치 않고 한번 시작하면 3시간씩 하고 일어나곤 하였다.

그런 내 행동이 이들이 보기에는 옥에 티였나 보다.

일부는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내가 참선방에 들면 들어오지 않는다.

절에 들르면 인사 받자마자 밖으로 나가

내가 갈 때까지 들어오지를 않는다......허!

 

난 가르치는 것 보다는 배우는 것이 익숙해져 있다.

배울 때가 행복하고 즐겁다.

그래서 지금도 배울게 있으면 주저 없이 고개를 숙인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은 스님이 잘 하겠지만

잇속을 챙기는 것은 장돌뱅이를 당하지 못한다.

각자의 길이 있고 각자의 그릇이 있는 것이다.

음식 맛을 잘 아는 사람이 음식을 꼭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은 음식 맛을 잘 안다.

음식 얘기는 같이 할 수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은

잘 만드는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이 현명하다.

<하심> <방하착>

절에 다니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인데

지식으로는 알아도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불편해 하는 스님을 위해 또 다른 절을 찾아야 하나보다.

부디 좋은 인연 지어지기를 발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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