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금강경

知見不生分 第三十一(지견불생분 제31)

敎當 2011. 8. 20. 12:18

知見不生分 第三十一(지견불생분 제31) -지견을 내지 않음

 

須菩提(수보리) 若人(약인) 言(언)

佛說我見人見衆生見(불설아견인견중생견) 壽者見(수자견)이라하면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是人(시인) 解我所說義不(해아소설의부)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아견. 인견. 중생견.수자견을 부처가 설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참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느냐?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

是人(시인) 不解如來所說義(불해여래소설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이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世尊(세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일새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시명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니이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은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 아닙니다.

  곧 그 이름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수보리)

發阿耨多羅三邈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於一切法(어일체법) 應如是知(응여시지)하며

如是見(여시견)하며 如是信解(여시신해)하며 不生法相(불생법상)이니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 법에 대해서 마땅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믿고 깨닫되 법이라는 상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須菩提(수보리) 所言法相者(소언법상자)

如來說(여래설) 卽非法相(즉비법상)일새 是名法相(시명법상)이니라

-수보리야, 법의 모양이라는 것도 여래는

  법의 모양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니 그 이름이 법의 모양일 뿐이니라.

 

▶知見: 불교에서의 知는 眞如 즉 반야라 한다.

           즉 진여는 無知이나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見은 正見으로 반야의 惠見(혜견)으로 事理眞相을 통달하여

           미혹에 묶이지 않는다.

           즉 진견은 무견이나 보지 못하는 見이 없다

           假知와 妄見을 모두 生하지 않게 되면 즉 모두 없애면

           여래가 바로 앞에 자연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설법은 단지 <세속의 언어>에 따른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르게 이해하고 집착한다.

           여래가 자아에 대한 견해를 설했다는 것도

           세속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자아건 법이건 그들을 부정하였다고 하여

          깨달음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부정의 대상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정되어야 할 것은 그 둘에 대한 견해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