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염의 기원
죽염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히 생각하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학 대사전, 본초강목, 동의보감, 의학입문, 향약집성방을 비롯
우리나라 최고의 문헌이라 할 수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조차
죽염이라는 용어 또는 소금을 대나무 속에 구워 약용으로 쓴 예를 찾아 볼 수 없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향약집성방 처방 중 ‘송엽(松葉) 5되 가량에 소금을 두되 넣어 증열(蒸熱)한 뒤에
그것을 전대 속에 담아 수족불수한 동통의 부위에 찜질 한다’는 것을 볼 수 있고,
구급간이방언해(성종 20년에 완성된 민간요법적 한방의서) 식염은
약간 볶아서 미세하게 갈아 쓴다는 내용이 보인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헌을 참조하여 살펴본 결과 죽염처럼 왕대나무 속에 소금을 다져넣고
황토로 입구를 봉한 다음 이를 불에 구워 쓴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죽염이 승가의 비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곳에서 조차
인산 김일훈 선생의 저서 신약, 신약본초를 참고하고 있을뿐
그 원리의 설명에는 미약하다 할 수 있습니다.
죽염이 문헌 기록상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80년 7월 인산 선생의 저서<우주와 신약>이 출간되면서 부터이다.
비로소 죽염에 대한 제조방법과 활용법을 논한 것이다.
죽염의 문헌적 근거에 대하여 인산선생께서는
“죽염이란 내가 창조한 말인데 문헌에 나올리가 있겠느냐?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소금을 불에 구워 양치소금으로 쓰고
눈병에는 눈에 넣고 중이염에는 귀에 넣고
혓바닥에 백태가 끼면 그것으로 바르기도 하였다.”고 되어있다.
죽염의 원리와 활용법 등은 인산선생의 저서 신약, 신약본초(전후편)을 참고하여
죽염편에 모두 올려지고 있다.
이 이외에 죽염에 대한 자료가 있다면 죽염의 기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인산선생께서 정식적인 죽염을 생산하기 이전에 전국의 사찰에서 죽염을 구웠다는 일화가 있다.
그 때 사찰로도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것 같다.
선생의 저서 신약본초에서는
죽염을 섭씨 5천도 이상 고열로 처리하면 염성이 약화되어 짠맛이 적고
짠맛이 적으면 자극성도 약하고 지혈(止血)하는 효능(效能)도 약하여 협심증도 생기지 않고
심장마비를 일으킬 염려도 없고 청혈(淸血)에 신비한데
이 5천도 이상의 죽염은 혈관에 바로 주사하는 혈관 주사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100% 순수한 성질의 죽염이요 최고의 항암제가 되며 청혈제가 되며
일체의 부작용이 없는 죽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죽염은 거의 대부분이 1천도의 온도에 머물러 염분이 비교적 강하며,
지혈력(止血力)이 강하여 혈관주사약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혈관주사는 반드시 5천도 이상의 고열에서 처리한 것을 사용해야하며
1천도 이상의 죽염은 그냥 먹거나 피부에 바르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우수한 항암식품이다.
1천도 이상의 용융하는 기술도 모두 인산 선생에 의해 제시되고 가르쳐 졌다.
이로써 볼 때 왕대나무 속에 서해안 천일염을 다져넣고 황토로 입구를 봉한 후
송진의 고열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죽염은 선생의 독특한 지혜 속에서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명이 중요한 까닭은 발명한 선생의 원리대로 죽염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죽염이 만들어지는 원리조차 발전시키고 설명하고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죽염의 원리를 선생의 저서이외에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문헌이나 저자는 없다.
황토가마에 넣어서 굽고, 땔감을 잡목으로 쓰고, 황토마개를 하지 않고 구워지고,
9홉번째 용융처리를 온전히 거치지 않은 것은
인산선생이 이야기한 죽염은 아닌 것이다.
죽염의 작업상 편리한 방법을 강구 할 수는 있다.
원리를 충실히 따르는 가운데 효율성 높이는 기술 개발이 있을지언정
굽는 과정과 원료, 쇠통에 넣어 굽는 방법 등이 변경 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죽염의 발명을 확실히 해 두고져 하는 일은 발명가의 업적만을 기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곧 발명가의 원리와 방법대로 죽염이 구워져 이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가치의 죽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