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불교경전 이야기

돈과공사상

敎當 2008. 7. 2. 10:14
 


돈은 모든 재물의 척도가 됩니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돈만 그 가치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짜리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천원이든 만원이든 그 표시된 금액이 있습니다.

따라서 천원은 천원이고 만원은 만원입니다.

이것은 색(色)에 해당됩니다.

색으로 돈을 본다면 결코

만원은 만원짜리 만큼의 가치를 지녀야 하고

천원은 천원짜리 만큼의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하지만 천원이 만원 이상의 가치를 발휘 할때가 있고

만원이 천원이하의 가치를 보일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돈도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해외토픽에 억만 장자가 등산하면서 조난을 당하여

살기위해 일억이 넘는 수표를 불소시게로 사용한 일이

기사화 된일이 있었습니다.

일억이 넘는 돈이면 빈민국의 굶어 죽기 직전의 아이들

몇십만명을 살릴수도 있는 돈입니다.

그 돈이 불쏘시게 역할을 하여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공하기 때문에 한사람이 몇십만명과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없는 이에게는 돈 만원도 매우 소중합니다.

그 돈이 하룻밤 술값으로 몇십 몇백만원이 없어 지기도 합니다.

가치는 액면에 적혀 있지만 결국 쓰임새의 가치가 다릅니다.

따라서 돈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를 달리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돈을 잘 셉니다.

혹시 하나라도 더 건네질까봐 손에 침 묻혀 가면서

세고 또 셉니다.

눈에 보이는 돈에는 셈이 밝습니다.

사람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공부에 투자를 합니다.

많은 돈이 들어 가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 합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돈은 유형의 돈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앞으로 돌아올 장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돌아올 돈은 무형의 돈입니다.

우리가 종이를 태우면

종이는 재가 되어서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종이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종이가 불이라는 인연을 만나서

허공에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있으면 돈을 쓰며 공부를 합니다.

그것이 학교 공부던지 사회 공부던지 돈을 벌기 위해서 무형의 돈을 씁니다.

앞으로 돌아올 무형의 돈을 유형화 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인연을 만나면

종이가 불을 만나듯 있는 것도 허공으로 날아가

다른 형태로 존재 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은, 부자인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무슨 이유일까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정하에서는

종이가 불을 만난 인연이겠지요.

술의 인연,도박의 인연,게으름의 인연, 주변사람의 인연등

수많은 인연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무형에서 유형을 창조할 인연이 없는 것이겠죠.

있어도 아주 적어서 간신히 먹고 살만큼의 인연뿐이거나

그것도 없으면 죽는 것이겠죠.

부자가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단지 돈버는 관점에서 본다면

돈버는 하나의 인연이 남보다 조금 나을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 나려면 우선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성격이 너무 모나,난 너무 게을러,난 너무 내성적이야.............등등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좋은 인연으로 바꾸면 분명 바뀝니다.

‘난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안돼!’라고 말씀 하실지 모릅니다.

일만 죽어라 열심히 하는 것이 노력하는 것일까요?

흔히 놀때는 놀고 일할땐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니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때와 장소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회사에 직원이 네명이 있는데

하루 8시간씩 열심히 근무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니 회사가 잘 돌아가고

회사가 잘 돌아가니 일의 양도 늘어서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간외 수당도 받았지요.

이 네명의 행동은 선일까요? 악 일까요?

물론 회사와 이 네명의 입장에서 보면은 선이겠지요.

하지만 이 네명이 시간외 일을 함으로 해서

한명의 고용의 기회를 박탈시켰습니다.

그 한명의 입장에서 보면은 악이겠지요.

이렇듯이 선과 악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항상 합니다.

즉 이슬도 뱀이 먹으면 독이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것처럼

지식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돈이 없어 고통을 받으면 인생의 깊은 맛을 보게 되지만

돈이 많으면 그것을 지키는 방법과 불리는 방법에 시간을 뺐깁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무형의 재산이 많다는 것이고

단지 살아가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기술중에

돈버는 한가지 기술이 부족할 뿐입니다. 

틀에서 벗어나 깨고 나와야 합니다.

나라는 틀에서 세상을 보지 말고

세상의 틀에서 나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란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식과 경험도 아직 유형화 시키지 않은

무형의 재산임을 인식할 때

마음이 넉넉해지고 여유로와 지며 여여 해지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이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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