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불교경전 이야기

공사상3

敎當 2008. 6. 10. 06:19
 

공(空)이란 일체의 현상계가 존재하는 영원 불변한 법칙입니다.

이러한 존재 법칙으로서의 공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

그 자체가 곧 반야(般若)입니다.

반야는 범어로 프라야나라고 하는데 혜(慧) 지혜(智慧) 명(明)등의

뜻이 있습니다.

즉 반야는 모든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반야의 지혜를 통해야만 성불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며 어머니인 것입니다.

또한 반야는 제법(諸法)의 여실한 이치를 밝힐 뿐만 아니라

중생을 교화하는 실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야의 지혜는 단순한 세속적인 지혜가 아닙니다.

인생과 우주의 참 모습을 텅 빈 것으로 보는 일

그 자체가 바로 반야의 지혜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성(空性)의 도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최상의 완전한 지혜가 바로 반야 입니다.

그래서 공과 반야는 하나로 연결되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의 이해가 곧 반야이며

반야는 곧 공의 실상을 깨닫는 일인 것입니다.

반야는 일체의 사물이나 도리를 궁극점까지 추적해서

그것의 영원한 진실을 파악하는 일 자체를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부터 반야의 지혜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탐.진.치 삼독과 번뇌로 뒤덮여 반야가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번뇌를 제거하는 일이 곧 반야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결국 번뇌와 반야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뇌와 반야의 실상은 공한 것이기 때문 입니다.

반야심경의 중심사상은 공이며 반야 입니다.

이것은 곧 불교의 긍극 목표이기도 합니다.

반야의 완성, 곧 지혜의 완성을 향한 부단한 노력 없이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흔히 인간 행위의 진정한 귀결점은

이고득락(離苦得樂)에 있다고 말합니다.

좁은 의미로 볼때 당면한 어떤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낙(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 그 자체는 고(苦)에 해당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에 대한 것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현대적 의미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문제로 대처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한 낙의 상태가 되면

편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편안함은 완전 무결한 상태의 평화를 말합니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지극히 편안한 극락(極樂)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곧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지혜의 실천 지혜의 완성을 통해서

가능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반야의 지혜는 밝은 태양과 같습니다.

우리가 캄캄한 밤에 길을 가다가 무엇에 부딪히면

그저 막연하게 돌이거나 나무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한낱 지식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런 막연하게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반야의 지혜는 밝은 태양과 같은 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돌인지 나무인지 짐승인지 사람인지를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용담스님과 덕산 스님이 있었습니다.

용담스님은 선(禪) 수행자로 이름을 날렸고

덕산 스님은 금강경을 평생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덕산스님은 용담스님의 명성을 꺽으려고 그를 찿아 갔습니다.

서로 밤이 이슥해 지도록 자신의 견해를 주장 하였으나

결론을 얻지 못했습니다.

덕산스님은 그만 잠자리에 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밝은 칠흑같이 어두워 신발조차 신을수 없었습니다.

신발을 신으려고 용담스님께 촛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용담스님은 촛불을 건네주고는

덕산스님이 신발을 신으려 할 때

그만 촛불을 확 꺼버렸습니다.

갑자기 천지가 암흑처럼 어두워 졌습니다.

그 순간 덕산스님은 깨달음의 밝은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은 자신이 평생 연구한 책을

모두 불살라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동안 쌓았던 지식의 안목은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음알이로서의 지식과 반야의 지혜가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한 지식과 지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막연하게 돌이거니 생각하는 것과

밝은 태양 아래서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것과의 차이 입니다.

결국 반야심경의 주된 안목은 공의 이치를 관조함으로써

지혜를 얻고 그 지혜로써 문제를 해결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상계를 공의 원리에 입각해서 관찰할 때

반야의 지혜는 저절로 생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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