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은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여신도들이 가끔 꼬마들을 데리고 오면 꼭 아이들을 불러 과일이나 과자를 주곤 했다.
아이들의 천진함을 마냥 좋아했다.
"숨김없이 지 생각나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 어린애 아니냐. 그게 얼마나 좋냐. "
그런데 큰스님은 아이들을 보면 꼭 장난을 건다.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볼을 꼬집거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곤 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아앙' 하고 울어버린다.
그러면 큰스님은 다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안간힘을 쓴다.
당시만 해도 귀하던 사탕이나 과자를 쥐어주기도 하고,
조금 큰 아이에겐 동전을 주면서 구슬린다.
그렇게 어렵게 달래놓고서는 아이가 다시 잘 놀면 한참 보다가 다시 꼬집어 울린다.
아이가 조금 크거나 장난기가 많은 경우 제법 큰스님과 장난을 주고받기도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꼬마들은 큰스님에게 덤비기도 했다.
큰스님이 머리를 쥐어박으면 저도 큰스님 머리를 쥐어박으려 팔짝팔짝 뛰었다.
큰스님이 엉덩이를 차면 저도 엉덩이를 차려고 씩씩거리고 달려든다.
이런 꼬마 친구를 만나면 큰스님은 신바람이 나는듯 했다.
"야, 그놈 대단하다! 야, 임마. 빨리 와 차야지. 이리 와 이리. "
그러다가 어떤 때는 큰 스님이 꼬마의 발길질에 당황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큰스님은 무슨 '스파링 파트너' 나 만난듯 장난을 치곤 했다.
그렇게 한바탕 장난이 끝나면 큰스님은 꼬마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큰스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여신도들이 적지않았다.
그러다보니 여신도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백련암에 올라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삼천배(三千拜) 다.
어린이들도 예외없이 삼천배를 해야한다.
대개 꼬마 친구들은 큰스님과의 장난으로 상견례를 한 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법당에 올라가 삼천배를 하게 된다.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절을 잘 했다.
나이가 들수록 3천배를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다.
성철스님의 꼬마 친구 중 한 명이 삼천배를 한 적이 있다.
큰스님이 격려도 했고, 어머니가 워낙 신심이 깊은 터라
꼬마 친구는 이를 악물며 어머니를 따라 삼천배를 마쳤다.
그렇지만 삼천배를 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따라온 아이다.
큰스님과 한 판 전쟁을 치르고 삼천배를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절을 마치고 큰스님께 하직인사를 하러온 꼬마 친구가 당돌하게 한마디 했다.
"큰스님, 이제 나는 다시는 백련암에 안 올 겁니더. "
"와 그라노?"
"내가 앞으로 백련암에 다시 오면 개새끼라예. "
"와 그라는데?"
"삼천배 절 하는 기 너무 힘들었어예. 백련암에는 인제 다시 안 올 겁니더. "
"그래, 그래. 개새끼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자. "
딴에는 독한 소리를 마친 꼬마 친구가 일어서 방을 나가자 큰스님이 웃는다.
"그래도 그놈 대단하제. 지 할 소리는 다 하고 갔제. "
절에 같이 사는 스님들이야 큰스님이 어려워 마음 편히 다가갈 수 없었지만
꼬마 친구들은 그렇게 큰스님의 친구가 돼 몸을 부딪치며 놀았고,
그바람에 큰스님은 간혹 당돌한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어머니를 따라 왔다가 삼천배를 하고는 기겁하고 도망친 어린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뒤 다시는 안 온다던 그 꼬마 친구가 다시 백련암을 찾아왔다.
물론 어머니의 손에 끌려왔지만
나름의 독한 다짐을 했던 꼬마인지라 시무룩하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큰스님이야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니, 그때 안 온다던 그 개새끼 아이가. "
그 친구도 이제는 중년의 신사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