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노승의 장난끼

敎當 2018. 6. 4. 12:33

성철스님의 목욕을 돕는 것도 시찬인 내가 해야할 일인데,

시찬을 막 시작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안경이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온도를 맞춘 목욕탕에 들어가니

안경에 김이 잔뜩 서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큰스님이 벌써 몸을 불렸는지 목욕탕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 등을 밀라고 한다.

앞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더듬더듬 등을 찾는데 등이 아니라 머리였던 모양이다.

 

"이 자슥이, 등도 모리나!"

 

아버지 등 한 번 밀어본 경험이 없는 솜씨니

잔뜩 힘을 줘 밀면 "아이구, 이놈아. 따갑다. 좀 살살 밀어라" 는 호통을 듣고,

그래서 살살 닦으면 "이놈아. 그래 가지고는 때가 웃겠다. 좀 세게 해봐라" 는 호통을 들었다.

큰스님은 비누질을 거의 않는다.

세수할 때도 비누질은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니 목욕 시간이 길 것도 없는데, 시찬 입장에선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투른 시찬의 수발을 받는 것도 힘든지 세번째 목욕하던 날 큰스님이 손사레를 쳤다.

 

"이놈아, 니 하고는 더 못하겠다. "

 

세번만에 큰스님 등 밀어드리는 소임은 끝났다.

그래도 목욕하고 난 큰스님의 빨래감을 챙기는 것은 여전히 내 일이었다.

큰스님은 목욕하고 기분이 좋은 날엔 배를 내놓고 자신의 건강을 자랑하는 천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이 많은 어떤 스님은 뱃가죽이 쪼글쪼글한데 내 배 좀 봐라.

주름 하나 없이 탱글탱글하제 이놈아,

니도 배 한번 내놔봐라. 니가 탱글한지, 내가 탱글한지 한번 보자. "

 

정말 배를 내놓아야 하는지 마는지 몰라 멀뚱거리고 있었다.

 

"뭐 하고 서 있노. 빨리 배 내봐. "

 

마지못해 배를 드러내야 했다.

큰스님이 두 배를 번갈아보시면서 "니 생각 어떻노. 누가 더 탱글탱글한데. 얘기 해 봐라" 고 독촉했다.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망설이다가 "큰스님 배가 더 탱글탱글한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자슥, 거짓말도 잘 한다. 아무리 그래도 젊은 놈 배만 하겠나. "

 

정작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큰스님은 자신의 배에 주름이 없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실제로 큰스님은 환갑의 나이에 무척 건강했다.

 

언젠가 큰스님을 따라 큰절에 갔다 백련암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르막인데도 불구하고 큰스님의 발걸음이 빨라 헉헉 대며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큰스님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 아닌가.

허둥지둥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는데, 앞서 가던 큰스님이 걸음을 늦추었다.

겨우 따라붙자 큰스님이 불쑥 뒤돌아보며 웃는다.

 

", 내 못따라 오겠제"

 

큰스님이 일부러 걸음을 빨리해 평소에 걸음이 둔한 나를 골려주려고 한 것이었다.

큰스님은 은근히 자신의 빠른 걸음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장난스런 모습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큰스님의 본모습은 무서운 호령소리에 있다.

하루는 밥상을 물리는데 조그만 가위가 상위에 놓여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으니 용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 때 마침 떠오른 생각이 "콧수염이 콧구멍 밖으로 볼썽 사납게 나왔는데, 이 가위로 자르면 되겠네" 였다. 무심코 마루에서 거울을 보고 콧수염을 자르고 있는데, 큰스님이 방을 나서다가 그 모습을 봤다.

 

"니 지금 뭐 하노, 이 놈!"

 

큰스님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뺨을 한 대 갈겼다.

뭐라 변명할 사이도 없이 뺨을 한 대 맞고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큰스님의 호령이 이어졌다.

 

"이 놈 봐라. 내가 가위 삶아서 소독하라고 내놓았는데,

아무 소식이 없더니 이 놈이 지 콧수염이나 깎고 있어!

이 나쁜 놈! 원주야, 이 놈 당장 쫓아버려라!"

 

야단 맞는 모습을 둘러서 보고 있는 다른 스님들이 야속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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