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이 옛날에는 별로 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하는데,
환갑이 지나면서는 마당의 꽃과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흰 모란을 좋아했고 말년에는 장미도 좋아하셨다.
지금도 큰스님을 모시던 시절을 생각하면 '
우리들이 꽃을 잘 가꿀 줄 몰라 좋은 꽃 선물을 제대로 못했다' 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지금과 달리 아담한 암자였던 30년전 백련암.
큰스님의 책을 보관하던 장경각 앞에는 붉은색 모란이 심어져 있었고,
원통전 앞쪽 화단에는 겹작약이 소담스럽게 자랐다.
큰스님이 어느날 어디서 보셨는지 흰 모란을 보고는 몇 그루 얻어 심었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던 어느날,
작약이 막 새순을 틔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작약순이 올라올 때가 됐으니까 화단에 들어가 순이 잘 올라오도록 호미로 굳어진 흙 좀 잘 갈아라. "
큰스님이 명에 따라 화단에 들어갔다.
화단을 메고 나와 보면 오히려 흙 속에서 막 움트기 시작한 싹을 짓밟아 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새순을 못알아보고 그냥 흙만 뒤적이고 나오다 보니 밟힌 싹이 한둘이 아니다.
큰스님의 노기가 온 산을 흔든다.
"이놈들이, 귀한 생명을 그래 밟아 죽일라카나. "
스무살도 안된 어린 행자가 한 명 들어왔다.
어린 만큼 귀여움을 받았지만, 그만큼 일도 서툴러 공동기합의 빌미를 많이 제공한 행자였다.
하루는 큰스님이 나오셔서 "꽃나무를 옮기자" 며 그 행자를 앞세웠다.
'또 무슨 일이 터지려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그 뒤를 삽을 들고 따라갔다.
행자가 괭이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큰스님이 1차로 경고했다.
"이놈아, 땅 파면서 그 밑에 뭐 있는지 살펴보며 조심해서 파거래이. "
앳된 행자는 듣는둥 마는둥 땅만 열히 팠다.
이윽고 괭이 끝에 무엇이 걸렸다.
삽으로 흙들을 들어내니 까만색의 무엇이 나왔다.
만약 큰스님께서
'저 밑 화장실로 가는 전깃줄을 묻은 것이니 피해서 파라' 고 말해주면 아무 일도 아닌텐데,
큰스님은 행자에게 엉뚱한 말을 했다.
"그 시커먼 것이 뭐꼬. 삽으로 한번 꽉 찍어봐라. "
행자가 큰스님의 미끼에 걸렸다.
'이게 무엇인지 사형들께 물어보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될 일을,
그냥 큰스님 말씀대로 전깃줄을 삽으로 꽉 찍었다.
큰스님은 '그렇게 하라면 안할 줄 알고' 그렇게 한번 미끼를 던졌는데,
눈치 없는 행자가 함정에 빠져버린 셈이다.
"이놈아, 그것도 모리나. 니 눈에는 전깃줄로 안 보이고 뭐로 보이드나. "
큰스님이 호통을 치니 앳된 행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봄이 오면 화단 앞에선 이렇게 꽃을 보기 위한 한바탕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큰스님은 흰꽃 등나무도 무척 좋아했다.
해인사 큰절 퇴설당에 흰꽃 등나무를 심어 여름이 오기 전에 흰꽃을 보고,
여름엔 그 그늘아래에서 쉬기를 좋아했다.
고향이 대나무 산지라서 그런지 대나무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오죽(烏竹.검은색 대나무) 을 좋아해
한번은 오죽을 얻어다 심었는데 끝내 살리지 못한 일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큰스님의 명에 따라 심은 은행나무 몇 그루는 지금도 남아
큰스님 떠난 백련암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