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큰스님 語法

敎當 2018. 6. 21. 14:25

산사생활은 간단명료하다.

관공서나 군대처럼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큰스님을 정점으로 상좌 몇명이 시봉하는 체제다.

살림이나 생활도 큰스님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반복된다.

 

큰 스님은 절집 생활처럼 간단명료한 것을 좋아했다.

 

큰스님이 "그거 우찌 됐노?" 라고 물으면 곧바로 "이렇게 됐습니다" 라고 대답해야한다.

 

", 그거 말입니다. 처음......라는 식으로 대답이 길어지려 하면 그만 불호령을 내린다.

 

"니깐 놈들한테 뭐 설명 들으려 하면 내 속이 터지제.

결과가 어째 됐노 이 말이다.

한마디만 하면 될 거 아이가. "

 

비유하자면 백련암에 급한 환자가 생겨 119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싣고 갔다면

 ", 살았습니다" 는 한마디가 먼저 나와야 한다.

 

물론 자세한 경과를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한마디만 해서도 안된다.

전체상황을 요약해서 간단.명료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런 큰스님을 오래 모시다 보니 나 자신의 말투도 간단명료 해 졌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삼가하고, 필요한 말도 단답형으로 간단히 말하게 됐다.

절집을 닮은 큰스님의 성품만 아니라 가식(假飾) 을 싫어하는 소탈함도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행자 시절엔 아무 것도 몰랐는데,

반년 넘게 지나 절생활에 익숙해지고 시찬의 소임을 맡아 큰스님 방을 자주 드나들게 되니

자연스럽게 산중의 상황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런 와중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맏상좌인 천제스님이나

원주스님과 같은 최고참 선배 스님들이 큰스님께 불려와 자주 야단을 맞는 일이었다.

 

"야단 맞을 일이 없는데 왜 불려가 야단을 맞을까" ,

 

한참을 궁금해하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 탓이 적지 않았다.

큰스님은 마당을 산책하다가 슬며시 일하던 나에게 다가와 부엌 생활이나 살림살이

어떤 때는 누가 절에 왔다 갔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행자 시절에야 아는 것이 없으니 별 대답할 것도 없었지만

시찬 시절 조금씩 절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되면서 아는대로 이것저것 대답을 하게 됐다.

아는 것이 화근이었다.

 

큰스님은 금방 절에 들어와 아무 것도 모르는 행자들이 들려주는 말이 제일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행자들이야 아무 영문도 모르니 보이는대로 듣는대로 느끼는대로 말할 뿐이다 

큰스님은 이런 행자들의 말과 스님들의 말이 틀리면

스님들이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꾸며서 말한다' 고 생각하고 야단을 치곤 했다 

그런 사실을 조금씩 눈치채면서 나도 "큰스님이 묻는다고 보고 들은대로 얘기했다가는

'사형들이 곤욕을 치를 수 있다' 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말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루는 큰스님을 모시고 뒷산을 올랐다.

마침 새끼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나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지 숲 속을 뒤지고 있었다.

큰스님께서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저 놈 재롱 한번 보고 가자. "

 

잠시 새끼 다람쥐를 보던 큰스님이 "작은 돌을 찾아 저 놈 머리를 맞춰 보라" 고 말했다.

영문도 모르고 작은 돌을 하나 다람쥐쪽으로 던졌다.

도망가기는커녕 도토리로 알았는지 쫓아와 입으로 물었다가 굴렸다가 야단이다.

그런 모습을 보던 큰스님이 말했다.

 

"지 죽으라고 던진 돌인 줄 모르고

저렇게 지한테 주는 먹이라고 달려드는 저 새끼다람쥐가 얼마나 천진하냐.

좀 있어 봐라.

저 천진한 놈도 나중에 크면 사람 기척만 들어도 나 죽는다고 달아날테니까!"

 

큰스님은 다람쥐 마저도 세상사에 닳지 않는 천진함

꾸밈 없는 어린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셨다 

큰스님을 따라 다니던 무렵엔 다람쥐가 여기 저기 많았는데

요즘엔 백련암 근처에서도 다람쥐를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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