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문수사에 들러서 원덕스님과 차담을 하고 대기시켰던 택시를 타고
동행한 한거사님의 추천으로 함양의 창원마을에 있는 민박집으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서 내려 걸어서 가다보니 요즘에는 보기 힘든 석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이 집이 오늘 민박을 할 집이라고 한다.
상사화로 아치를 그린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써있었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주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현판이었다.
마당에는 각종 꽃과 소품을 이용한 장식들이 놓여 있었다.
수생식물인 이 꽃은 여러 가지 꽃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신비하면서도 청초한 느낌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수채화를 보듯이 담백한 색은 꽃이 화려하면서도 화려함을 뽐내지 않는다.
사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녀석은 정감이 갔다.
이 집에는 고양이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십 여 마리가 넘게 있었는데
장작위에도 지붕위에도 마루위에도 고양이 천지였다.
집 뒤 켠으로 돌아가니 거위로 보이는 부부(?)가 있었는데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낯선 사람이 다가가니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지 누가 보면 내가 납치범인줄...ㅎㅎㅎ
마당 한켠에는 가마솥이 올려져있었는데 밤에는 춥다며 불을 지펴주었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산이 천왕봉이라고 한다.
내일 산행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벅차오른다...^^
아침 일찍 산행을 하기로 하고 5시30분에 택시를 불렀다.
뷔폐식으로 차린 맛깔스런 저녁밥상을 받고 커피와 과일을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9시쯤 잠자리를 폈지만 맑은 공기 덕분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은 말똥말똥 하였다.
불을 끈 지리산 자락의 밤은 암흑세계였다.
눈을 감고 있으나 뜨고 있으나 매 한가지였다.
이런 밤이면 수행을 하기 딱 좋은 곳이라서 졸릴 때까지 앉아서 참선을 했다.
한참을 수행 하다 보니 약간 졸립기도 했는데 시간을 보니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내일 산행을 위해 자리에 들었고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 5시 30분에 정확하게 택시가 도착을 하였다.
오늘 일정은 백무동계곡에서 시작해서 참샘을 지나 장터목산장에서 잠시 쉬고
고목이 예술이라는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에 오를 예정이었다.
천왕봉은 그 높이가 1915m이고 난생처음 이런 높은 산을 오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준비물을 나름 챙겨왔는데 그러다 보니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자주 이런 산행을 했고 지리산 종주까지한 한거사의 배낭은 동네 마실가는 부피였다...ㅎ
난 물을 2리터짜리로 준비했는데 월출산을 산행했을 때 심한 갈증으로 고통을 겪은 경험이
이 2리터짜리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게 했고 배낭의 무게를 가중시켰다.
아직 주변은 어둠속에 잠겨서 사진을 찍으니 후레쉬가 작동을 한다.
출발점인 백무동에서 장터목까지는 5.8Km를 가야한다는데 아마 2시간 반에서 3시간은 걸릴 것 같다.
백무동에서 1.8Km를 올라가니 하동바위라는 곳이 나왔다.
지리산 천왕봉이 높기는 하지만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발 900m다.
백무동 출발점 자체가 해발로 따지면 상당히 높은 곳이라
지리산 천왕봉이 2000m 가까이 된다고 해도 실제 올라가는 높이는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이 근처에 다리가 있는데 현재는 흔들다리지만 그 옆으로 새로 계단식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참샘>이라는 곳인데 수량이 많았다....샘이 있는줄 알았으면 물병을 작은 것으로 가져 오는건데...ㅠ
주변을 보니 곰을 만나면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지만 행동요령은 없는 것으로 보아
곰이 사람을 만나도 습격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이유는 사진을 보니 곰의 치아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
걸음이 다른 나는 여기에서 한거사님을 한참 기다렸다.
올라오면서 계속 기다렸다 출발 했다를 반복했는데 한거사님이 미안했는지 먼저 가라고 한다.
자기는 천왕봉까지 몇 번 가 봤으니 장터목산장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올 것이라며
나 혼자 천왕봉까지 갔다가 장터목에서 만나자고 제의를 했다.
같이 올라갔으면 좋겠지만 속도가 달라 미안해 하는 것 같아 그 뒤로 한 두변 더 기다리다 결국 혼자 올라갔다.
미안해하면 무리를 하게되고 무리하면 사고 날 위험이 있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안전산행의 원칙이다.
비바람에 쓰러진 고목이 지리산의 풍광을 더 해 준다.
푸르른 나무도 멋이 있지만 이처럼 고목도 그 수명이 다 했지만 또 다른 멋을 선사한다.
비가 올 것 같던 날씨는 해가 뜨면서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영롱하다.
도시에 있을 때는 해를 볼 일도 없고 그저 환함만 있었는데 산에 들어오니
비로소 햇살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어둠을 물리치는 그 신령스러움이란...^^
생을 마감하고도 자기자리를 지켜 지리산의 자연이 되는 이런 나무와 풀 한포기도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산행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이 날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상존하는 하나의 자연임을 깨닫게 된다.
장터목산장 주변은 짙은 운무에 휩싸여 있었다.
시간을 보니 8시 55분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곧 바로 천왕봉으로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는 1.7Km였는데 지리산 비경, 그 중에서도 특히 겨울철
고목과 눈과 어우러진 지리산 대표 풍경이 이 곳이라고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한거사님 표현으로는 천상을 거니는 느낌이라고 했으니...ㅎㅎㅎ
잔뜩 기대감을 안고 지리산 겨울산행의 백미라는 제석봉으로 출발을 했다.
이 날 날씨가 엄청 변덕스러웠는데 아마 운무가 끼어서 그렇게 느낀 듯 하다.
같은 공간인데도 운무로 인해 어디는 흐리고 어디는 이처럼 맑은 날씨를 보였다.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 하다.
제석봉 고사목에 이처럼 아픈 사연이 있었다.
같은 산에 올라도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이처럼 결과가 극명하게 깔린다.
제석봉이 천왕봉 아래라 꽤 높은 곳일 텐데 여기에도 신비스런 자태를 품고
막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하는 아름다운 꽃이 있었다.
보통 꽃이라고 하면 화려함으로 마음을 들뜨게 하는데 이 꽃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돌 틈 바위아래 자리 잡은 작은 국화(?)들이 혼자 하는 산행을 외롭지 않게 한다.
앙상한 고사목과 푸른 침엽수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운무로 인해 지리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한 조화를 부린다.
지금의 경치도 멋있지만 겨울의 설경이 기대되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의 남한산성의 소나무 설경도 일품이지만
소나무와 바위와 고사목과 어우러진 지리산의 설경은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영암의 월출산 산행에도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통천문(通天門)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돌음계단식으로 된 통천문이 있었다.
올 해는 하늘로 올라가는 문을 두 번이나 통과했으니 하늘과 마음이 통하려나...ㅎㅎㅎ
우측은 운무가 자욱한 전경이 보이고 좌측은 파란 가을하늘이다.
지리산에도 정원사가 있는지 잘 다듬어 놓은 듯한 나무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나무 좌측이 남향인지 혹은 바람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일방으로 분 영향인지
나무 가지가 한 방향으로만 마치 머리빗처럼 자라있다.
키가 큰 나무, 키가 작은나무, 새파란 나무, 죽은 나무, 돌 그리고 바람과 하늘
어느 것 하나 넘치고 모자람 없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소용없는 것이 없도록 자연은 그렇게 자기자리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ㅎ
시작을 해야 끝을 볼 수 있듯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 가까워졌다.
천왕봉 정상에서 보니 발아래 바위산과 운무가 깔려있다.
천왕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10시쯤 되었는데 정상에는 약 10 명쯤 등산객이 있었다.
인증샷을 찍은 천왕봉표지석 뒷면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에서 발원되었다는 문구를 보니 한국인의 자부심이 되살아났다.
4시간 동안 힘들게 올라왔지만 보람도 느낀다.
마침 정상에는 까마귀가 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축하공연을 하는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산을 하려고 하는데 땅만 보고 걸어서 오다보니
어디로 올라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지도를 보았다.
지도에 장터목산장이라고 된 곳을 어림짐작으로 알아차리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마침 같이 온 한거사님 말이 생각이 났는데 아시는 분이 산은 잘 타는데 하산하면서
꼭 엉뚱한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함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산청으로 내려왔다는...ㅠ
불현 듯 이 말이 생각이 나면서 주변의 낯설은 풍경에 다시 정상으로 올라갔다.
여기에는 땅에 박힌 작은 말뚝에 <노고단>쪽 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초행길인 나는 천왕봉에 올라오면서 노고단이라는 표지판 글을 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고단 쪽에서 올라오면 장터목산장을 지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장터목에서 천왕봉에 가는 길은 노고단이 표시될 일이 없지만
반대로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에는 노고단이 표시되는 것이 당연하다....ㅎㅎㅎ
지리산 무식자라는 이런 이유로 여기에서 한 30분을 잡아먹었다.
한 번 올라가 보고 단정적으로 얘기 할 수는 없지만
월출산이 지리산 천왕봉에 비해서 기운이 월등히 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출산은 높이가 809m이고 천왕봉은 1915m라 약 2.5배 차이가 나지만
월출산은 엄청 힘들게 올라갔고 산행시간이 4시간 40분 정도뿐이 안 되었다.
하지만 막판에는 거의 탈진상태였는데 반해 지리산 산행은 시간은 6시간 30분으로
월출산 산행보다 더 걸렸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하산을 했고 기운도 남아돌았다...ㅎㅎㅎ
지리산이나 월출산이나 더위에 애를 먹은 것은 똑 같으니 꼭 날씨 탓이라고 생각 할 수 없고
월출산이 지리산에 비해 조금 험하지만 지리산이 월등히 높고 긴 만큼
월출산이 바위산이라 힘들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지리산(보통 산행이 다 그렇지만)이 상체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 것이 비하면
월출산은 허벅지에서부터 땀이 나기 시작을 했다는 것과 허리와 어깨가 아파서 힘이 들었다.
지금까지 허리가 아프거나 어깨가 아픈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월출산 이후 산행인
지리산 산행에서도 허리나 어깨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월출산처럼 몸의 탁기를 빼주는 기운을 만나면 막혔던 기운이 소통되면서
아픈 곳의 감각이 되 살아나 적응되어 못 느꼈던 통증도 살아나는 것이다.
몸의 탁기(濁氣)를 빼 주는 곳이 아니라 생기(生氣)를 받는 곳을 만나면
아픈 곳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을 하거나 잠을 많이 안 자도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다.
월출산과 지리산 산행을 하고 몸의 막힌기운이 돌면서 기수련이 엄청 늘었다...^^
추석에 과식한 기분도 있고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남한산성 산행을 했다.
여름에는 5시간 산행코스인데 지금은 그때보다 기온이 떨어져 4시간 30분쯤 걸렸다.
한동안 산행도 안 하고 배도 많이(?) 나와서 걱정을 했는데 시간도 단축되고
발은 마치 없는(?)듯 해서 힘들이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다음 주쯤에 영암 월출산으로 다시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영암에서 먹고 자면서 2~3번쯤 월출산만 산행을 하고 올 예정이다.
태풍이 온다는데 일기예보 잘 챙겨보고 확실하게 일정을 조절 할 것이다.
월출산 산행이 태풍처럼 내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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