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나의 수행일지

전철 안에서

敎當 2015. 12. 15. 11:47

아침에 분당선을 타고 출근을 한다.

복정역에서 수서역과 대모산역 구간은 거리가 길어서 시내 권에서는

나름 약간 고속(?)으로 달리는데 고속으로 달리는 만큼 유동이 심한편이다.

난 전철을 타면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서 기를 운용한다.

분당선은 출근시간이면 만원(滿員)을 이뤄서 어떤 경우에는 꽉 끼어서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내가 전철 부품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망상도 해 본다...ㅎㅎㅎ

 

수련을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가령 상대가 머리가 아프면 나도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면 나도 다리가 아프고...

뭐 이런 상황이라 기운으로 느끼는 것은 상대방이 그런 자신의 상황을

알던지 모르던지 관계없이 내가 느끼는 것이 정확한 편이다.

그것은 마치 상대방은 몸이 아프다고 느끼는 것은 이미 더러워진 몸이

조금 더 더러워진 상황이라 더러워질 당시에는 자신이 조금 더 더러워졌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곧 그것을 잃어버리고 동화되어 더러워진 것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난 백지상태에서 확 더러워지니 느끼는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럽다는 표현이 거슬리더라도 이해를 돕기 위한 단어 선택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전철이라는 공간속에는 콩나물시루처럼 많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 중에는 분명 몸이 안 좋은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운들을 다 느낀다면 아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하더니

진짜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기운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살면서 고통이 와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라 생각하고 사시기 바란다.

 

오늘 아침 출근시간의 전철 안도 어제와 다르지 않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복정에서 환승을 해서 분당선으로 갈아타고 자리를 잡았다.

이 구간부터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에 난 다리를 최대한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벌리고 서서 나름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데 오늘은 유독 하체에 힘이 없고 흔들려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얼굴의 광대뼈가 있는 부분이 계란 크기만큼 마비가 왔다.

자세히 보니 앞에 서 있는 분이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이 분이 몸이 안 좋았다.

아마 전체적으로 기운이 돌지 않아서 하체에 힘도 없는 듯이 느껴졌다.

 

시루처럼 꽉 끼인 전철 안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저 시간이 빨리 가서 저 분이 먼저 내리던지 내가 먼저 내리던지 하는 것이 최선이다..ㅎㅎㅎ

막혀오는 기운을 강제로 뚫으려고 힘을 주면 기운이 더 막힌다.

인생살이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이라는 것이 불교에서는 진리를 뜻하는데 말 그대로 물리 흘러 가는대로 가는 것이다.

즉 순리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안 가려고 버티거나 거스르려고 하면 저항이 생긴다.

기 수련도 이와 같아서 억지로 막힌 기운을 뚫으려 하지 말고 몸의 힘을 풀고

그냥 들어오는 기운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이 분은 개포역에서 내렸는데

문 앞에 자리 잡고 있던 이 분은 개포역에 도착하자 안 내리고 문을 막고 있으니

뒤에 서 있던 분들이 앞으로 밀고 나왔는데 내리지 않고 옆으로 자리를 비켜섰다가

뒷사람이 다 내리자 그제 서야 허겁지겁 전철에서 내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몸이 안 좋으면 정신도 안 좋은데 아마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난 이처럼 몸이 안 좋은 사람과 맞닥트려도 거의 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공부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견디다가 정 힘들면 그때 피해도 되는데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고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기도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 하루 시작하는 아침 전철 안에서 또 한분의 좋은 스승을 만난 셈이다.

이렇게 세상을 보니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고 도움이 되지 없는 것이 없다.

중학교 시절에 읽은 좋은 글귀 중에서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에 필요 없는 가시가 달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시나무에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는 글이 갑자기 떠오른다.

세상의 어떤 일을 당해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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