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도인과 선사

일여(一如)스님-찬 화로에서 연기를 피우리라

敎當 2015. 11. 5. 11:15

일여(一如:1807~1832) 스님은 전라도 완도군 청해의 망리 사람이다.

속성은 이씨, 법명은 신순. 법호는 일여이다.

16세에 두륜산 대둔사로 들어가

당대의 선지식 경월선사의 문하에서 머리를 깍은 뒤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일여스님은 금강산 제일의 명소인 관음봉 아래 자리잡은 만회암에 이르자

불현 듯 오랜 과거부터 살아온 자신의 거처인 양

아늑한 느낌이 들어 그곳을 떠나기가 싫었다.

'여기서 목숨을 걸고 성도(成道)해 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웠다.

 

'이곳 관음봉에서 백일 기도를 올리되

불꺼진 찬 화로에서 백일안에 연기가 오르면 기도를 마치려니와

백일이 다 되어도 연기가 오르지 않는다면 내 육신을 불태워 부처님께 공양하리라. '

일여 스님은 이때부터 기도하는 틈틈이 나무를 베다가 볕에 말려 차곡차곡 쌓았다.

만약 기도의 효험이 없을 경우에는 나뭇단 위에 올라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참으로 처절할 정도의 구도집념을 불태우며 기도를 했건

백일이 다 되어가도 식은 화로에서는 불씨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정하게 시간은 흘러 백일이 되었으나 식은 화로에서는 불씨가 살아나지 않았다.

 

하루는 일여 스님이 백인 스님을 찾아가 말했다.

"기도를 시작한 날로부터 백일이 지났는데도 향로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으니 나의 정성이 부족한가 보네.

이제 나는 곧 육신을 불살라 부처님께 공양드릴까 하네."

백인 스님은 깜짝 놀랐다.

"자네에게는 부모님과 스승이 계시지 않는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되네."

"나는 이제 끝났네"

 

이 말을 남기고 옷소매를 떨치며 밖으로 나갔다.

백인 스님은 일여스님을 따라가며 말렸지만 끝내 만류할 수 없었다.

법당 건너편에서 연기가 치솟아 백인 스님이 정신없이 달려가 보

이미 일여 스님은 장작더미에 불을 지르고 그 위에 앉아 염불을 하고 있었다.

"자네, 도대체 왜 이러나! 빨리 내려오게"

 

백인 스님은 엉겁결에 곁에 쌓여 있는 눈을 두 손으로 퍼다가 불길 속에 던졌으나 뜨거워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불길 속에서 일여 스님이 말했다.

"자네는 이 육신이 흩어지면 마치 꿈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게송도 모르는가?

나는 고통이 지배하는 이 사바세계를 떠나 즐거움이 가득찬 극락세계로 가려네."

 

백인 스님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일여 스님에게 말했다.

"자네, 만약 이 산에서 죽는다면 극락왕생은 못할 걸세."

"어째서 극락에 왕생화지 못한단 말인가?"

"옛날 의상 조사께서도 맑고 깨끗한 이 도량을 더럽힐까봐 이 산에서 죽지 못하셨으니 자네도 속히 이리 나오게."

 

이 말에 요지부동일 것 같던 일여 스님도 마침내 마음에 충격을 받고 불길 속에서 나왔다.

백인 스님은 일여 스님을 눈 위에 내려놓은 뒤 급히 부근 암자로 달려가 스님들게 도와 줄 것을 호소하였다.

뭇 스님들이 달려와 보니 마치 흰 눈 위에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새까맣게 탄 일여 스님이

아직 기운이 남아 있었던지 계속 중얼중얼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일여 스님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여러 스님들을 향해 말했다.

"소승이 육신을 불사르려 한 것은 극락에 왕생하고 싶어서 스스로 한 것일 뿐 다른 사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날 밤 일여 스님은 마침내 입적했다.

'경전 > 도인과 선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봉스님의 물처럼 살아라  (0) 2015.11.09
초의선사 의순(草衣禪師 意恂 : 1786∼1866)   (0) 2015.11.06
조주선사와의 대화  (0) 2015.11.02
마조도일(馬祖 道一)  (0) 2015.10.30
六祖-혜능(慧能)   (0)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