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함형(咸亨) 연간에 성은 노(蘆)씨이고 이름은 혜능(慧能)인 사람이 있었다.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가난하여 나무를 해 팔아
홀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려가느라 글 한 줄 모르고 살았다.
하루는 나무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사람이 경을 읽는데
그 소리를 듣고 그 뜻이 문득 깨쳐졌다.
기이하게 생각하여 급히 그 사람에게 그 경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그 사람은“이 경은 금강경이며, 동산의 홍인대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혜능은 이에 발심하여 노모를 잘 안돈하고 동산사로 향했다.
5조를 참배하자 홍인이 물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 왔느냐?”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
“영남 사람은 불성이 없거늘, 어찌 법을 얻으려 하는고?(嶺南人無佛性 若爲得法)”
“사람은 남북의 구분이 있으나, 불성이 어찌 다르겠습니까?(人有南北 佛性豈異)”
홍인은 혜능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방앗간에서 일을 하도록 명했다.
혜능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방앗간에서 밤낮없이 방아를 찧고 나무도 하며 열심히 일했다.
이로부터 8개월이 지나자 홍인은 법을 전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각 문도들에게 각기 마음을 표현하는 글을 짓도록 했다.
그런데 당시 홍인문하에는 상좌 신수(神秀)가 있었다.
그는 모든 승려들에게 수행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수가 아니면 누가 의발을 전해 받을 수 있겠는가?’하며 감히 엄두도 내지 않았다.
과연 신수는 대중의 칭송을 듣고 복도의 벽에 게송을 써 붙였다.
몸은 보리수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이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莫使有塵挨).
5조가 지나가다가 이를 보고 신수가 지은 것을 알고 칭송하면서,
후인들이 것을 비추어 수행한다면 큰 이익을 얻으리라고 말하고 대중들에게 염송하도록 했다.
야밤삼경에 5조는 신수를 불렀다.
만약 범부들이 이 게송에 비추어 수행한다면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상의 지혜를 찾으려면 스스로의 본성을 보아야 한다.
며칠 더 생각해서 다시 게송을 짓도록 하라.
신수의 글은 한편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나, 불법의 대의를 확연히 들어내지는 못하였고,
다만 일반대중이 불법을 믿고 부지런히 닦는다면, 더 이상 죄는 짓지 않고 살아갈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본성에는 중생과 부처의 구별이 없고,
본래 스스로 지혜광명이 밝은 것이어서 닦을 것도 털어낼 먼지도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홍인은 인가를 내리지 않았다.
만약 닦고 쓸고 털어내고 비우는 것이 수행이라면 평생을 쉬지 않고 해도 모자랄 것이다.
왜냐하면 비우고 나면 또 도로 차고, 쓸고 닦으면 또 어지러 지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치 집안일처럼 하루 종일 치우고 닦고 쓸고 하여도 금방 또 어지러 지는 것과 같다.
봄에 화단에 잡초를 뽑았다고 해서 그 다음에 잡초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끊임없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비우고 닦고 쓸어내는 수행은 근본을 요달한 큰 수행이라기보다,
다만 죄는 짓지 않을 정도인 수준이다.
본래 공해서 버릴 것도 얻을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혜능은 여느 때와 같이 방앗간에서 일을 하다가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염송하는 것을 듣고 옆 사람에게 물었더니,
조사께서 의발을 전하시기 위해 게를 지으라고 하셨는데,
신수가 남쪽 회랑 벽에 글을 써서 붙이니 큰스님께서 칭송하시고 사람들에게 외우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사람에게 게를 한번 들려달라고 해서 들어보니,
그럴 듯은 하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글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일자무식인 혜능은 마침 강주 별가 장일용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부르는 대로 써 달라고 해서 신수의 글 옆에 붙여놓았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菩提本非樹),
명경 또한 대가 아니라(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本來無一物),
어찌 수고로이 털 먼지가 낄 것이랴(何假拂塵挨).
5조가 이 게송을 보고 혜능이 이미 불법의 대의를 여실히 깨달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혜능이 워낙 절에서 권세가 없고 비천한 신분에 있던 사람이므로,
사람들이 이를 시기하여 해를 입힐 것을 염려하여 짐짓 큰 소리로
누가 이따위 말도 되지 않은 글을 썼느냐? 견성한 글이 아니다! 라고하며
신발을 벗어 글씨를 쓱쓱 문질러 지워버렸다.
이날 저녁에 홍인이 은밀히 방앗간으로 내려가니 혜능은 구슬땀을 흘리며 방아를 찧고 있었다.
혜능은 성품의 본래자리를 이미 확연히 통찰하고 있으면서 보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를 구하는 사람은 법을 위해 몸을 바침이 모두 이와 같아야 하리라.”
말을 마치고 홍인은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두드리고 돌아갔다.
혜능은 대사의 뜻을 짐작하고 야밤삼경에 조사의 방에 몰래 찾아갔다.
조사는 혜능에게 의발을 전하면서 말했다.
“이곳에 머물렀다가는 사람들이 해하려 할 것이니, 속히 이곳을 떠나라.
의발을 전함으로써 이미 다툼의 발단이 생겼나니, 너는 더 이상 의발을 전하지 말라.”
이로써 혜능은 불(佛)의 33조 마지막 조사이자 중국 선종의 6조가 됨과 동시에
단전(單傳)의 시대를 마감하고 공전(公傳)의 시대로 들어가는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더 이상 의발로써 단 한사람에게만 법을 전하던 선가의 전통이 사라지고,
누구든지 법을 깨달으면 부처의 법을 잇는 공적인 전통이 수립되었다.
혜능은 5조를 하직하고 그날 밤으로 남쪽을 향해 떠났다.
다음날 홍인은 더 이상 법당에 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의아해서 조사에게 물었다.
“내 일은 이미 끝났다.”
“의법은 누가 얻었습니까?”
“능한 사람이 얻었노라.”
사람들은 비로소 방앗간에 있던 노씨 성을 가진 거사의 이름이 능(能)인 것을 생각해 내고
혜능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대중은 모두 신수가 법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밤새 의발을 전했다고 하니 믿기가 어렵고
혜능이 이를 훔쳐간 것으로 생각했다.
혜능이 남하하여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을 때,
혜능을 뒤쫓던 무리 가운데 장군 출신인 혜명(慧命)이 가장 먼저 혜능을 발견했다.
혜능은 의발을 바위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가사는 법을 상징하는 것인데, 힘으로써 뺏으려 하느냐?”라고 말하고 풀 속에 몸을 숨겼다.
“내가 온 것은 법을 위해서이지, 가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말을 듣고 혜능은 숲에서 나와 혜명에게 다가갔다.
혜명은 예를 갖추어 설법을 청했다.
혜능은 혜명에게 설법했다.
“일체의 인연을 모두 끊어 일체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니,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때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혜명은 언하에 크게 깨달았다.
혜명의 기지로 추적하는 무리를 따돌리고, 15년이 지나 남해 법성사(法性寺)에 당도했다.
이 때 마침 인종(印宗)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면서 기(旗)가 움직이자,
두 승려가 ‘기가 움직였다’, ‘바람이 움직였다’하고 논쟁을 벌였다.
이에 6조가 끼어들었다.
“바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요 기가 움직인 것도 아니라, 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본질을 꿰뚫는 명쾌한 판정을 들은 것이다.
인종이 물었다.
“오래전 불법이 남으로 내려 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그 분 아니시오?”
육조는 시인하고 가사를 보여주자, 인종이 예를 올리고,
그 지방의 명승들을 불러 보리수 아래에서 혜능의 머리를 깎아주었고,
지광 율사는 구족계(具足戒)를 주었다.
이로써 혜능은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다.
이때가 당 고종 의봉3년(676)으로 혜능의 나이 39세였다.
법성사는 지금의 광주 광효사(光孝寺)로서,
이곳에는 육조와 관련한 육조발탑(六祖髮塔), 보리수, 풍번당(風幡堂), 육조전(六祖殿) 등의 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오래지 않아 육조는 처음에 거주했던 소주(韶州)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로 돌아왔다.
소주 자사(韶州刺史) 위거(衛据)는 육조를 대범사(大梵寺)로 초빙하여 법설을 청하였다.
육조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보리 지혜는 사람들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단지 마음이 미혹되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오늘 대중을 위해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겠다.
마하는 크다는 뜻으로, 마음이 국한 없이 광대하다는 것을 말한다.
바로 허공과 같이 그 끝이 없으며, 네모지고 둥근 것도 없으며, 청황적백의 빛깔도 없다.
상하와 장단도 없고, 노여움도 기쁨도 없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함도 없고 악함도 없다.
허공은 만물을 삼킬 수 있어서 해, 달, 별, 산하대지와 초목수풀, 악인과 선인, 천당과 지옥을 다 포함한다.
무엇을 반야라 하는가?
반야는 바로 지혜이다.
바라밀은 피안에 이른다는 뜻이다.
세간의 일체 문자와 대소승, 12부 경전,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만일 사람의 지혜가 없었다면, 일체 만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만법이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스스로 마음속에서 본성을 보고 깨우치지 못한단 말인가?
일체의 선한 법은 사람의 성품 중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으니,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
세간의 모든 것에 대하여 마음이 물들지 않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면 곧 견성하여 부처가 될 수 있느니라.”
혜능은 능가경과 함께 금강경을 종지로 삼아 남쪽에서 돈오(頓悟)의 불법을 크게 전했고,
북쪽에서는 신수가 점수(漸修)의 수행을 강조하여
이를 두고 훗날 사람들이 이를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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