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나의 수행일지

기억력

敎當 2015. 4. 23. 16:13

1982년 입대를 해서 대구 이수교를 거쳐 부산의 야전공병대에 배속을 받았다.

부산 개금시장 근처에 위치한 1116 야전공병대에서 5톤 덤프트럭 운전병으로

교육을 받고 울진의 왕피천계곡 도로공사 현장에 투입이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운전병에서 행정병으로 보직이 바뀌어 울진 도로공사 현장에 파견 근무를 나갔다.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가 출현할 정도로 험한 산을

길도 없는데 폭약으로 폭파를 하여 없던 길을 내는 작업은 위험해서 사고가 속출을 하였고

투입된 신형 5톤 트럭은 잦은 고장으로 인해서 굴러가는 차가

몇 대 안 될 정도로 근무환경은 열악하였다.

특히 고지대라서 낮에는 길을 냈는데 밤에 산사태가 나서

임시로 낸 길이 다시 원상복귀 되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공사 진행은 갈수록 더뎠다.

 

나는 1983년 봄에 행정병으로 울진 도로공사 현장에 투입이 되었다.

운전병과는 달리 행정병은 중대병력이 적어 딱히 할 일이 많이 없었고

왕피천계곡은 그야말로 휴양지와 다름없는 천국이었다.

이 왕피천계곡 지명은 임금님이 이 계곡으로 피서를 와서 붙여진 이름이고하는데

다른 이름은 계곡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보였다고 해서 불영(佛影)계곡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계곡에는 불영사라는 절이 있다.

 

계곡 양쪽은 더덕 밭이었고 도로 공사로 인해 파헤쳐진 산은 칡이 얼마나 많은지

축구선수 허벅지만한 굵기의 칡을 간부들이 가져가고 나눠주고 해도 남아돌아서

트럭에 실려 있어서 톱만 가지고 가면 언제 던지 먹을 수 있었다.

또 작업이 힘든 만큼 군수 도지사 군단의 회식이 2주에 한 번 꼴로 열렸다.

 

왕피천 계곡은 은어가 서식하는 곳으로 여기와서 은어라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는 자기영역이 있어 잡을 때 살아있는 은어를 미끼로 쓰는데

자기 영역에 무단 침입한 은어를 보면 쫒아내려고 왔다가 훌치기낚시 바늘에 걸리는 것이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깊이에도 바닥의 잔모래가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그러니 바위위에 올라서 몰려오는 은어를 보고 훌치기를 하는 것이다.

 

또 이곳 사람들의 논에는 피가 엄청 많이 자라고 있었다.

농사라고는 짓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농사는 심심해서 짓는 것이고 주업이 송이버섯 채취였다.

험한 절벽 길을 손전등 하나만 의지 한 채 거의 서커스 수준으로 산을 탄다...ㅎㅎㅎ

 

1983년 추석 때의 일이다.

가을인데도 비가 많이 와서 식수로 쓰는 왕피천 계곡물이 흙탕물이 되었다.

산이 험하고 골이 깊어서 비가 오면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고

맑던 물은 흙탕물이 되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하류로 쏟아져 내려간다.

이렇게 비가와 식수가 부족하면 폭포의 물을 식수로 사용을 하였다.

수송부인 우리는 취사병과 간부의 협조요청으로 식수를 길러 가야 했다.

추석이고 특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트레일러를 달고 물을 길어 오라고 한다.

 

중대장 짚차를 몰던 동기가 있었는데 그날은 운행이 없어 중대에서 쉬고 있었다.

물을 길으러 가야 한다는 말에 자진하여 간다고 하고서는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물론 운전은 이 친구가 하는 것이라서 나는 조수석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데

웬일인지 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가기가 싫어서 근무자명단 짜야 한다며 거절을 했다.

결국 여수출신의 내 다른 동기가 함께 가기로 하였고

둘이 나서는 것을 보고 난 일을 보기 위해서 행정반으로 향했다.

 

행정반에 도착해서 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후임병이 작키를 빌리러 왔다.

난 운행차량도 없고 비도 오는데 무슨 공구가 필요하냐며 물었고

자기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트레일러로 물을 길으러 갔던 차량이

수십미터 계곡으로 굴러 전복되어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취사병 병장과 후임 이등병 그리고 내 동기인 운전병

그리고 또 다른 동기 등 총 4명이 동승해서 물을 뜨러 갔다고 한다.

그날따라 항상 가던 폭포수 밑으로 안가고 다른 폭포수 물을 길으러 갔는데

커브길에서 도로 한 부분이 붕괴되면서 차가 낭떠러지로 굴렀다는 것이다.

 

운전을 한 친구는 부안이 고향으로 결혼은 안 했지만 아내가 임신을 하고 있었다.

낭떠러지로 구르는 순간 살려고 문을 열고 뛰어 내렸는데 그만 바퀴에 머리가.....

그래서 머리를 빼 내기 위해서 작키로 차를 뜨려고 공구를 빌려 간 것이다.

여수 동기는 왼쪽 갈비뼈와 다리뼈가 다 으스러졌고 이등병은 허리가 끊어지는 부상을

병장은 뇌를 다쳐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을 수 있었다.

즉사한 내 동기의 집에 전보를 쳐야하는데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해 충격을 줄이려고

난 소대장에게 <위독>이라고 전보를 치겠다고 했다.

 

위독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올 것이고

오는 도중 사망했다고 하면 그나마 충격은 좀 줄어서 임신 중인 태아에게 영향을 최소화 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중에 위독이라는 말만 듣고 중환자실만 뒤지다

하마터면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뻔한 일이 생겨 문제가 되었으나

내 취지를 잘 이해를 해 주어서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고 잘 마무리가 되었다.

결국 이 친구는 물을 뜨러 간 것이 업무의 연장이냐가 논쟁이 있었지만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난 특공부대에 착출이 되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기 때문이다.

나중에 제대하고 왕피천계곡을 갔는데 위령탑에 그 친구의 이름이 세겨져 있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슬픔은 컷지만 시신을 보지는 않아서

그다지 큰 충격은 주지 않은 듯 생각했는데 이것이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요근래 어느날 부터인가 자꾸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고 김일병인 것은 알겠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사실 이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갑자기 몸이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확 하고 올라오는 뭔가가 있었다.

벌써 30 여년 전의 일이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모른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머리에 싸~~~한 기운이 들면서

마치 이름이 생각이 안 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몸이 조절이 되지 않았다.

 

몸의 막힌 기운이 뚫리면 막힌 기운 주변으로 뜨거운 기운이 집결을 한다.

왜냐하면 대게는 냉한 기운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 머리에 엄청 차가운 기운이 자리하고 있었다.

차갑고 저리고 하면서 주체를 할 수 없는 기운에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냉수도 마시고 침도 꽂고 청심환도 먹고 밖에 나가서 심호흡도 해 보고.....

이렇게하다 시간이 지나면 안정이 되었는데 난 나에게

그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인데 네가 괜히 쓸데없는 것에 집착을 해서 그렇다.

기억이라는 것은 나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내가 나를 달래고 안정을 시키면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정해 진다.

 

이 기운이 머리에서 놀더니 어느샌가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예전에 비하면 한결 기운을 내리기에 수월하였다.

전처럼 청심환이나 침이나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도 정리가 되었다.

오늘 아침의 일이다.

항상 그렇듯이 참선과 기 수련을 하다가 독경을 시작하였다.

나무아미타블 정근을 하는데 갑자기 이 친구의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이름이 생각이 안 나자(전에도 생각이 안 났으니 안 나는게 당연하다)

갑자기 또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난 더 큰소리로 정근을 하였다.

손이 떨려오고 저려오고 냉한 기운이 손을 타고 빠진다.

20 여분을 그렇게 큰 소리로 정근을 했더니 냉기가 어느 정도 빠졌는지 안정이 왔다.

난 속으로 이 친구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리고 조만간 시간을 내서 왕피천계곡을 찾아 술 한 잔 따라주마 약속을 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왕피천계곡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내 마음에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들어와 있었고

이처럼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것이 아마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때가 된 듯도 싶다.

그러니 요즘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잦아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친한 동기였던 나를 잊고 있어서 서운했다는 듯이.....

사실 부대에 자대배치 받자마자 싸운 친구가 이 친구다.

이런 이유로 그 후에 진짜 친한 동기가 되었고

그래서 전보를 칠 때에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올 해 안에 시간을 내서 꼭 다녀 올 것이다.

가서 술 한잔 기울이며 과거의 그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이제는 내 마음이 아닌 하늘에 새겨두고 싶다.

글 말미에 갑자기 눈물이 난다...아직 사무실인데.....

친구야 극락왕생하거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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