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수행과 외도 수행의 차이가 무엇인지요?
잘은 모르지만, 단전 호흡을 위주로 하는 단학, 국선도 등등
소위 ‘제3 수련’이라 하는 것은 수행법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간화선은 진리를 깨달아 생사를 해탈하는 순수한 수행법입니다.
건강을 위해 수련하는 것하고 생사를 해탈하는 수행은 차원이 다르지요.
간화선을 참으로 제대로 해서 동정(動靜)에 일여한 상태가 되면 마음이 그렇게 고요하고, 고요하면 편안해져요.
편안하면 맑아져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경지에 이르게 되지요.
그러면 법열(法悅)을 느낍니다.
오묘하고도 미묘하여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런 법열을 느끼는 정도가 되면 웬만한 병은 저절로 나아요.
수행만 잘 하면 건강은 저절로 좋아지니까 건강에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지요.
그렇지만 간화선 수행은 발심이 되지 않으면 바로 공부의 효과를 체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보자가 간화선을 하려면 공부가 좀 필요하지요.
그런데 단전호흡 같은 소위 제3수련은 초기에 바로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하지만, 간화선을 공부해서 화두 공부의 재미를 직접 느껴보세요.
건강은 저절로 좋아지고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며 매사에 주체적이고 당당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건강만을 위주로 하는 수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 요즘 일반대중들도 출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서른 명 가까운 상좌를 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출가하러 오는 분을 어떻게 지도하시는지요?
절에 와서 출가하겠다고 하면 한 사흘 정도는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하죠.
참으로 출가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출가란 도피가 아니에요.
바로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되는 길입니다.
대단한 결심이 없으면 안돼요.
그래서 거듭거듭 심사숙고해서 뜻이 확고하면, 출가하라고 합니다.
그 후엔 사람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지요.
출가할 사람이 불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발심이 되었는지, 수행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특별한 것이 뭔지, 성격이나 개인적인 흠이 있는지,
그런 것을 잘 점검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 사람에 맞는 지도, 적절하고도 특별한 지도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수행하는데 방해되는 점은 고쳐 훗날 공부 잘하는 바탕을 만들도록 지도하는 것이지요.
불교는 최상의 길이고 무상심심미묘법(無上深甚微妙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내가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빛이 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불교의 원론적인 이해와 이에 상응하는 발심과 신심이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축서사는 아직 불사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만, 선원(禪院)은 언제 개원할 예정인가요?
또 축서사에 선원을 여시는 특별한 뜻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해주시죠.
흔히 선원의 문화가 지대방의 역사라고 합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대화와 경책, 상호 가르침이 오고가는 동안에 배우는 것이 많아요.
신심, 발심, 분심이 그 과정에서 탁마됩니다.
그런데 참 아쉬워요.
요즘 들어서는 전통적인 지대방 문화가 사라지는 감이 있거든요.
대중방에서 정진하더라도 방은 각자 따로 쓰는 곳이 늘어나기 때문인 듯해요.
선원의 독특한 지대방 문화가 강화되고 활성화되어야 해요.
물론 개인 위주의 선방이 장점은 있지요.
그렇지만 오히려 단점이 되어 공부 분위기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지대방 문화가 위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대중처소는 어디까지나 대중의 힘으로 생활하는 곳입니다.
대중이 운력할 때는 안 따를 수 없지요.
그렇게 대중을 따르면서 대중과 함께 공부하도록 서로서로 탁마해 가는 겁니다. 그게 좋아요.
대중처소라도 독방이 필요는 하지요.
그러나 독방은 어른이나 나이 많은 스님들에게는 드려야죠.
그 외 보통 스님들은 큰 방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렵고 괴롭더라도 대중방 생활을 해야 돼요.
그 자체가 수행이 되는 겁니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사실 요즘은 수행자들이 너무 잘 먹어요. 그리고 너무 편하지요.
수행자가 잘 먹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옛 어른 말씀에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했습니다.
춥고 배고파야 도를 닦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수행자는 적당하게 춥고 배고프게 공부하는 게 좋아요.
요즘 다들 그런 것을 싫어하고 풍족한 것만 좋아하는데,
사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공부에는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먹는 것은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 됩니다.
공양도 하루에 두 끼만 하는 게 좋아요.
차담은 낮에 간단히 한 번만 하고 일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일은 수도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해야지요.
도량 청소니, 풀뽑기니, 채전 가꾸기니 절집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은 알아서 하는 분위기가 돼야 해요.
그래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그런 선방이 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산중에서 공부하면 쌓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번뇌망상도 생겨나지요.
세속에 얼른 나가고 싶기도 하고, 해제나 방선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활동하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더 쌓이기 쉽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나 몇 시간 정도 일하고 샤워하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번뇌망상이 저절로 없어지고 건강도 좋아집니다.
일하면서 수행하는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참선이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요?
요즘 세상이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지요?
다들 괴롭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옛날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나는 매스컴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경제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제가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에요.
필요 이상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요.
물질을 과도하게 지향하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빈약하다는 얘기예요.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밖으로 추구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되지요.
그러면 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거예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데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수행은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 헐떡거리는 마음을 고요하고 안정되게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이것이 꼭 필요하지요.
수행하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번뇌 망상을 없애어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게 수행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행복해집니다.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바른 방법은 수행뿐이에요.
고요하고 맑은 기분을 느끼면 오묘하고,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권세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지요?
그러나 그건 무상(無常)합니다. 그런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지요.
그러나 수행은 다르거든요. 수행에서 느끼는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두고두고 잊지 않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수행에서만 느낄 수 있어요. 진정한 수행이 행복의 길입니다.
화두를 들어 진의가 나고 행복을 느끼면 웬만한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화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병이 저절로 치유되고 그러면 건강 장수하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제일로 칩니까? ‘건강ㆍ장수’를 제일로 여기지요?
그런데 수행을 하면 건강과 장수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요.
그러니 수행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화두 공부, 즉 간화선 수행이라는 거예요.
몇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일수록 남보다 앞서고 잘 살기를 바라고 성공을 바라지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은 근본 지혜를 개발해 주거든요.
법열(法悅)을 느낄 정도의 수행을 한번 해보세요.
자기도 모르게 근본 지혜가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화두 공부가 된다는 것은 화두에 집중력이 생겨났다는 얘기인데, 집중력이 생겨나면 일을 잘 하겠지요?
그러면 생산력이 월등히 높아지는 효과가 따라 오는 거예요.
수행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며, 건강해져서 무병장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혜로워지고 집중력이 생겨나는 등 많은 좋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해서 남보다 앞서 가게 되고, 잘 살게 되며, 아주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간화선에서 깨달음, 견성, 구경각을 너무나 강조해온 나머지
간화선 수행 과정에서의 좋은 점은 이야기를 안 했어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깨달음, 견성은 너무 거창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화두 공부를 하면 어떤 이익이나 효과가 있느냐?”를 따지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위해 방편을 시설해야겠어요.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했어요. 마땅히 병에 따라 알맞은 약을 주어야지요.
이제는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수행 과정에서 얻는 좋은 점도 많다는 것을 이야기해 줄 때가 되었습니다.
과거 스님들께서 견성, 깨달음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해주셨으니
이제는 화두 수행을 초보 단계, 낮은 경지부터 자상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선을 하겠다는 마음을 낼 수 해 주어야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간화선 수행 지침서 같은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옛날 어른 스님들의 말씀 위주로 되어 있어요. 좀 아쉽습니다.
참선 수행 과정의 효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참선을 하면 얼마나 좋은 효과를 느낄 수 있는지 하는 것도 알게 해주면 다들 참선하고 싶어 할 거 아녜요?
- 재가불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화두를 잘 들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면 좀 가르쳐 주십시오.
화두 참구의 요체는 간절하게 성심성의껏 간단(間斷)없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심, 대분심, 대의정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일반 재가자들이 화두를 드는 것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재가 공부인이 스님들처럼 선방에서 정진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할 수 있을 때 화끈하게, 열심히, 바짝 하도록 밀어붙이면 의외로 잘 될 수가 있어요.
일을 하든지, 시장을 보든지, 오고가는 데 꾸준히 지속적으로 화두를 드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해야 하는 재가인들은 스님들처럼 전적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잖아요.
그래도 토ㆍ일요일, 공휴일 쉬는 날에 집이나 절에서 화두를
하루나 이틀 집중적으로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의외로 좋습니다.
- 흔히 재가 생활인은 참선을 스님들이나 하는 공부로 치부하고 해보면 좋다고 권유해도
어려워하여 “나는 근기가 낮아 …”하면서 마음 내기를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게 한 말씀해주십시오.
화두 공부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의외로 쉽게 할 수도 있어요.
육조 혜능 대사가 “법에는 남북이 따로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선은 남녀, 노소, 출재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요는 해보겠다는 첫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또 화두를 들기 전에 마음을 쉬어 고요하고 아늑하게 해야 돼요.
그렇게 하고 “이뭣꼬”화두만 분명하게 들면 의외로 화두가 진하게 다가올 수 있어요.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좋습니다. 규칙적으로 화두에만 집중해 보세요.
그러면 화두 공부의 재미를 알 수 있어요.
화두 공부에 재미가 붙으면 몇 십 분, 한 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불교를 이론적으로 배운 이들은 참선을 해야 합니다.
선을 몰라서는 불교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지요.
화두 공부에 대한 성격과 이론을 좀 공부한 다음 직접 체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은 마음을 고요하게 밝게 하는 것인데, 화두 이상의 방법이 없습니다.
- 선에서 돈점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 정리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간화선 수행이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십니다.
선 수행을 전문적으로 실참실구(實參實究)하시는 분들은 돈오돈수로 주장하시고,
선학을 하시는 분들은 돈오점수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깨달아 보지 않으면 확실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거든요.
돈오돈수냐, 점수냐를 이론적인 생각으로 따지지 말고, 깨쳐 보고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론적인 생각으로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깨달음입니다.
- 요사이 이 봉화 지역에 조용히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 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여기 봉화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왼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소백산맥과 오른 쪽 우백호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있어요.
아주 청정한 천혜의 자연 지리를 갖추고 있지요. 그래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느 골짜기에는 스님들이 30여 명이나 여기저기 토굴을 지어 공부하고 있을 정도예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스님들 토굴이 많기로는 지리산 다음으로 많을 것입니다.
- 스님께서는 1994년 개혁회의 기간에 입법화되고
1997년에 개원한 종립 동화사 기본선원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으시어
기본선원의 개원과 정착에 노력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기본선원을 설립하게 된 인연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1990년대 초반일 거예요.
그 무렵에 ‘수좌계가 이래서는 안된다’하고
휴암 스님, 인각 스님, 혜국 스님 등 구참 스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수좌들의 정진 분위기와 신심, 발심 정도가 좀 이완되어 있었지요.
‘뭔가 분위기를 쇄신할 수는 없겠는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수좌 사관학교’ 같은 교육과정을 개설해서
신심, 발심을 철저히 다진 인재를 키워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종단개혁 사태를 맞았지요.
마침 개혁 종단에서도 승가교육체계를 세우면서 강원, 동국대, 중앙승가대를 기본교육기관으로 지정하여
승려가 되려면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고 제도화 논의를 시작했어요.
이때에 수좌계에서 이론(異論)이 제기됐어요.
선을 하려고 발심 출가한 이들을 강원이나 불교대학으로 4년간 묶어 놓으면 안 된다는 거였지요.
그래서 길을 터주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 기본교육기관으로서 기초선원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름이 기본선원으로 바뀌었고,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97년 개원 당시에는 어려운 여건에서 출발했습니다.
교과목이나 교재도 수좌들이 모여 의논해서 선정했어요.
작년부터는 수계 기마다 한 도량에 상주하면서 결사하듯이 공부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평가가 좋고 정착되었다고들 긍정적으로 평합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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