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도인과 선사

무여(無如) 스님의 정진기(記)

敎當 2015. 1. 26. 11:57

입산한지 한 5년 정도가 되니 공부가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대중 선원에서는 별이익이 없는 것 같아서

잘 사는 노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강릉 대관령 부근 토굴로 찾아 갔습니다 

그 노장님은 60대 중반으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한글로 겨우 이름 석자나 쓸 정도였고, 경전이나 어록을 볼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어쩌다 한 마디 던지는 말씀은 정곡을 찔렀습니다.

하루 종일 하시는 일이라고는 밭에 나가 농사짓고, 나무하셨어요.

나는 공양짓고 빨래하고 청소하였고, 저녁에 앉아서 정진을 같이 했습니다.

잠은 3~4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는 저녁에 정진하시다가 무릎을 탁 치시며,

 “아이쿠 큰일났네, 다 타내 다 타!”그러시면서 혀를 차셔요.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40리 아래 마을에 노스님을 잘 모시는 40대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 집에 불이나 타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어요.

가니까 1시간 전에 불이 나서 거의 다 탔어요. 그때가 12시쯤 되었어요.

돌아오니 노장님이 어서 오게어디 어디에 불이 났지, 하시며 현장을 중계라도 하듯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요.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어요 

다음 날 노장님을 모시고 가서 불난 집을 둘러 봤어요.

그 노장님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군요.

 

얼마 뒤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손님이 좀 많이 올 걸세. 한 열다섯 명분 밥을 하게하셔요.

그 전날 밥을 좀 많이 해놓았어요.

그래도 몰라 새로 여유있게 해놓았더니 열 세 분이 와서 열 다섯 명이 딱 맞게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일 이후로는 노장님이 대단한 분으로 보이데요. 신심이 더 났어요 

그 후 6개월 정도 더 살다가 충청도에 볼 일 보러 가신다고 나가시더니 오시지 않았어요.

2개월 정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마침 오대산 북대가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대산으로 갔습니다

 

오대산 북대로 가서 16개월 정도 혼자서 정진을 했습니다.

그때 혼자지만, 좀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노장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런 광경을 보고 신심도 났고요.

북대에는 나무로 지은 집이었는데 방에 부엌이 달린 집이었어요.

그래서 가능하면 토굴을 나가지 말자.

세수나 삭발, 옷갈아 입는 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해보자 해서 앉아서 하다가

졸음이 오면 방 안에 나무 의자 하나 두고, 천장에 로프를 만들어 졸음이 오면 의자에 앉아서 정진하다가

다시 또 졸음이 오면 일어서서 로프를 목에 걸고 정진했습니다.

 

나중에 힘이 들면 다시 앉아서 로프를 목에 걸고 하고,

밥은 매일하는 게 아니라 겨울 같은 때는 10일에서 15일치를 한꺼번에 해서 뒷방에 놓아두면 얼어요.

그것을 추운 곳이라 하루에도 몇 번 불을 지피니 데워서 김치하고 해서 먹었어요.

나중에 쌀과 보리쌀이 떨어져서 강냉이만 먹었고,

김치가 떨어져서 된장, 간장만 먹고 그것도 떨어져 소금에 찍어 먹었습니다.

세수는 물론이고 삭발, 방 청소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식기도 한 번도 안 씻었어요.

북대에서 내려 올 때는 거지 중에 상거지였어요.

북대에 거지중이 산다고 했답니다 

강릉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주인이

 나는 스님처럼 때가 많은 사람은 못보았다고 할 정도였어요.

일체의 가식, 형식을 따지지 말고 정진만 하자. 그렇게 해서 혼자이지만,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출가하시어 일념으로 화두 참구를 하셨는데 화두는 누구에게 무엇을 받으셨는지요?

화두는 수계 전에 노장님께 받은 자네가 무엇인가?”가 자연스럽게 이뭣꼬?” 화두가 되어 그걸 계속 참구했어요.

 

- 젊은 시절에 공부하신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십시오 

저는 한동안은 보행정진을 많이 했어요.

보행도 일정한 곳을 다니기도 하고, 먼 곳까지 다니면서 하기도 했어요 

언젠가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오르내리면서 정진한 적도 있었지요.

상원사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서 간단한 소지품과 함께 조그마한 걸망에 넣고 월정사까지 내려갑니다.

그렇게 가다가 화두가 되면 몇 시간씩 서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개울가 바위 위에서 공부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시장하면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고, 목이 마르면 그 옆에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로 갈증을 식혔습니다.

 

여름에 더우면 옷을 훌훌 벗어 제치고는 천진한 아이처럼 맑은 개울물에 첨벙 들어가기도 했어요.

옷이 더러울 때면 빨아서 바위 위에 널어두었는데, 한 두 시간만 지나면 햇볕에 바짝 말라서 기분 좋게 입을 정도가 되었지요.

그렇게 공부를 할 때, 망상은 별로 없었고, 세상에 갖고 싶은 것, 부러운 것도 없었어요 

이윽고 월정사에 도착하면 후원에 가서 저녁공양을 얻어먹고 상원사로 밤이슬을 맞아가며 올라가는 거예요.

가다가도 졸리면 아무 곳에나 앉아서 잠시 졸다가 올라가곤 했지요.

 

어느 날엔가는 밤에 그렇게 밖에서 정진하다가 깜빡 졸았던 가봐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옆에서 툭 치는 거예요.

캄캄한 밤이었는데,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무엇인가 시커먼 물체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개의치 않고 그냥 앉아 정진을 계속했지요.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툭 치는 거예요.

그러고는 어슬렁어슬렁 그냥 사라져 갑디다. 짐승이었는데, 상당히 컸어요 

순간 왠지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이 퍼뜩 들었어요.

그래서 걸망을 챙겨 서둘러 상원사로 올라갔지요.

 

상원사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거예요.

그 다음날까지 종일 쏟아지는 억수로 큰비가 왔는데, 오대산 주변에서 곳곳마다 물난리가 났다고 해요 

젊었을 때 정진하면서 생겨난 일화이지요.

그것이 무슨 짐승이었는지 지금도 궁금해요.

정진을 잘 하면 선신이 옹호한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올바른 수행자는 보호받아요.

그래서 어려운 위기도 비교적 쉽사리 넘기거나 재난도 미리 피할 수 있게 되지요.

 

- 선원에 정진하실 때 도반 중에 귀감이 될만한 분이 계셨으면 소개를 좀 해주시죠 

도반 중에는 훌륭한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 두 분만 거론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저는 누구를 보더라도 가급적 장점만 보는 편이에요.

사람의 단점에 대해서는 덮어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생각입니다.

그래서 도반들을 생각해도 그분들이 가진 장점이 먼저, 더 많이 떠올라요 

돌아가신 분으로는 휴암 스님 같은 분 참 잘 사셨지요.

공부도 참 열심히 하셨고, 명석하여 이론도 아주 밝으셨지요.

살아계셨으면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 젊은 수좌 시절 공부 도중에 회의나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하여 포기하는 분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스님께서는 그런 회의는 없었는지요 

공부 도중에 그런 회의나 좌절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하근기라 공부 과정에서 남보다 어려움이나 괴로움은 더 많았을 것입니다 

회의를 느끼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공부가 무엇인지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고 시작했지만, 비교적 초기에 공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이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명확하게 느꼈는데,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이 되어 주었지요 

하지만 언제나 스스로가 부족한 점이 많고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늘상 공부를 보다 지혜롭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지혜, 지혜 이렇게 속으로 무척 강조했습니다.

 

손자병법에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처럼 우선 나를 알고 화두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화두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이기려면 자기를 알아야 해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매일 스스로 반성하고 점검했어요.

화두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형성시켜 나갔다고 할 수 있어요 

매일 밤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들려 있으면 화두를 밀어붙였지만,

화두가 조금만 만족스럽지 못해도 잠들기 직전에 반드시 점검하고 반성했어요.

어떤 날은 몇 번씩이나 그렇게 했어요.

 

하루를 살고나면 과연 내가 잘 했는지 못했는지를 점검하고,

잘 했으면 무엇을 잘했는지 살펴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지요.

반대로 못한 점이 드러나면 왜 그랬는지, 과연 내 단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세밀히 따지고 점검했어요.

그래서 고칠 수 있는 것은 즉각 고치고, 바로 고칠 수 없는 것은 메모라도 해서 잊지 않도록 하며 차근차근 고쳐나갔어요 

그렇게 하니까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루하루 피부로 느껴졌어요.

지혜로운 수행자라면 자기가 그렇게 자라나는 모습을 느끼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훤히 보면서 시골의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듯이 조심하며 살피면서 자기를 운전해 가야 해요.

그렇게 해서 멋지고 탄탄한 대로(大路)를 닦아가는 것이지요.

 

, 자기를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자기도 알아야 하지만 화두의 성격과 참구 정도도 알아야 잘 들 수가 있어요.

그래서 화두를 지혜롭게 들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붓듯이 화두를 들 때마다 매번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했어요 

이렇게 나를 알고 화두를 알아 참구를 해가되, 가급적 실수가 없어야 해요.

즉 시행착오가 적어야 해요.

그래서 일취월장(日就月將)이 되고 승승장구(乘勝長驅)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참으로 간절하게 애쓰고 애써야 해요.

 

- 암자나 토굴 수행에 도움이 될 말씀을 해주십시오 

수행은 가급적이면 대중처소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중이 때로는 공부에 장애가 되기도 하고 지장을 주기도 하지만,

대중처소에서 수행하면 직, 간접적으로 대중의 경책과 도움을 많이 받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에 진의(眞疑)가 나서 동중(動中)에 공부를 익힐 필요가 있을 때는

토굴이나 큰절의 뒷방을 얻어 마음껏 공부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토굴이나 독방은 오직 공부를 위해서 가야지, 공부 이외의 목적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또 토굴이나 독방을 쓰더라도 반드시 가까운 곳에 선지식이 있는 곳을 택해

지도를 받아가면서 수행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순수한 공부 이외의 이유로 대중을 떠나는 수좌가 있는데,

수좌는 오직 공부를 위해서 토굴을 가고 옮기는 것도 공부를 위해서 옮겨야 합니다.

 

- 요즘 선원이 늘고 선승들의 숫자도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한편으로는 수행 풍토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보살행을 하지 않고 산중에서만 있다던가, 백장청규나 선농일치의 선종 가풍이 사라지고

   좌선과 시주에만 의존하여 수행하는 풍토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보시는지요 

수행자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또 무슨 경책을 하든지 받아들여서

조도(助道)가 되게 하고 수행에 이익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장청규와 같은 농경시대의 선농일치 가풍을 시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수행 환경과 수행자들의 근기가 옛날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행 환경과 근기에 맞는 수행 문화를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도량 청소, 채전 가꾸기 등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운력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1980년대 초에 봉암사에서 여름 안거를 났는데 오후 마지막 시간은 꼭 운력을 했습니다.

도량 청소, 풀베기, 채전 김매기 등등 한 철 동안 하루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대중 운력으로 일을 했지요.

일이 끝나면 시원한 계곡에서 간단히 목욕을 하고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조금 있는 불평불만도 해소 되고 운동도 되고, 저녁 밥맛도 아주 좋아요.

그때 , 운력이 참 좋은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나더군요 

운력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동중(動中)공부를 익힐 수 있습니다.

해제철에는 만행을 다니며 분수나 인연에 따라 보살행을 하거나 선행을 하면 발심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저는 젊은 스님들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공부가 웬만큼 되었거든, 즉 동정(動靜)에 일여한 상태가 되었다면 주지나 원주나 무슨 소임이든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라고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어려움도 있지만,

신심이나 발심의 계기가 되어서 오히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스님들은 너무 편해요. 편하면 감복(減福)하기 쉽습니다.

수행자일수록 적당히 노동도 해가면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최근 간화선에 대한 토론에서 어떤 선학을 하시는 분께서

  자 화두만 진짜 화두이고 이뭣꼬?’등 다른 것은 화두가 아니다라든가,

  '화두는 사유하여 깨닫는 것이다' 등등의 주장을 하시어 대중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그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자 화두만 진짜 화두이고, 다른 일천칠백 공안은 공안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이 과연 말이 됩니까?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 중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분은 없습니다.

체험도 없이 오로지 생각으로만 그럴 것이다하고 억지논리를 펴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요즘 화두선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비판적인 이야기가 많다고 하는데,

()은 체험이 없으면 결코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체험도 몽중일여(夢中一如) 정도는 되어야 화두가 뭐다, 선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어른들은 몽중일여도 안 되는 사악한 지혜로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화두를 사유(思惟)하여 깨닫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화두 참구는 사유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의정(疑情)을 일으켜서 타파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타파하려면 반드시 삼매경지에 들어야 합니다.

삼매도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깊은 경지가 되어서 은산철벽이 되어야 드디어 깨치게 됩니다 

화두를 사유하여 깨닫는다는 것은 전혀 체험이 없이 생각으로 하는 말인데,

화두는 체험 없이는 일언반구도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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