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이야기/사는이야기

몸을 다스리냐? 마음을 다스리냐?

敎當 2014. 12. 17. 12:10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만약 가지 않는다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比牛駕車 車若不行 打牛卽是 打車卽是

(비우가거 거약불행 타우즉시 타거즉시)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를 때려야 한다고 대답 할 것이다.

수레를 끄는 본질이 수레가 아닌 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려면 마음을 닦아야 하는지 몸을 닦아야 하는지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처럼 자명한 이치를 묻는데 일상에서는 전도망상이 되어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개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쫒아가지만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쫒아간다고 한다.

어떤 일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나타난 현상만 쫒는다면

그 사람은 원인도 모른 채 평생을 돌을 맞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환자에게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아픈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 주어도 원인으로 인해 생긴 결과에만 집착 해

그 결과만 치료하다 보면 다시 재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윗물이 흙탕물이 되어 아래로 내려오면 아랫물 근처에 사는 사람은

흙탕물이 되는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정화 하는 데만 치중하는 꼴이다.

또 어떤 이는 흙탕물이 내려오는 것만 보고 살다보니

물은 원래 흐린가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흙탕물이 당연하다고 생각 해

그냥 그렇게 한 세상 살다가지 이런 식의 삶도 있다.

똑같이 한 인생 살면서도 각자의 업식(業識)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현명한 삶이란 자신의 업을 깨는데 있지 않을까?

 

남악 선사의 제자 마조(馬祖)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좌선만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남악회양 선사는 마조가 좌선하고 있는 암자 앞에서

기왓장을 갈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마조가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남악 선사는 태연히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고 대답합니다.  

마조가 기왓장을 간들 어찌 거울이 되겠냐고 되묻자

남악 선사는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조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처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소가 끄는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하느냐

아니면 수레를 때려야 하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조스님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남악 선사가 다시 말을 이어 갑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가? 앉아 있는 부처를 배우는가?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좌선은 앉는데 있지 않다.

앉아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일정한 형상이 아니다.

머무를 곳이 없는 법에 대하여 취하고 버리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대가 만일 앉아있는 부처가 된다면 그는 부처를 죽이는 일이다.

앉는 일에 집착한다면 참다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마조스님이 가르침을 받고 기뻐했다는 전등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은 좌선을 통해서 좌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 것이고

앉아있는 부처를 통해서 앉아있는 부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좌선을 한다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최고로 치고

부처처럼 앉아서 얼마나 오래 있느냐에 치중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저 목불이 그토록 오래 앉아 있었는데

왜 깨달음을 얻지 못 하는 가로 교훈을 주기도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찾는다.

 

마조스님은 사람이 부처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전하신 스님이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평상시 갖는 마음이 도이고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이 바로 부처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무런 마음에 걸림이 없는 편안한 마음

이것이 바로 도를 이루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여기에 보고 듣고 기억되어진 생각이 가미되면

마음은 바로 복잡한 상호작용을 일으켜 경계에 끄달리기 시작을 한다.

그래서 중도처럼 이런 경계 저런 경계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저런 경계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경지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항상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부동산을 하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해 보고 나중에

투자할 대상물건지 설명을 들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한다.

일단 부동산 투자를 통해 제테크를 하겠다고 결심이 섰으면

그 다음은 여기를 갈까 저기를 갈까 고민을 할 것이 아니라

일단은 많은 곳을 다니면서 듣고 보고 느끼고 경험을 해서

살아있는 현장지식을 습득하고 거기에 내 자금력이나 여건 등을 고려

대상 물건을 해야 할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하는데

전혀 투자대상 물건지에 관해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투자를 하기위해 가서 들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전도망상에 불과한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다.

보고 듣고 느껴도 잘 못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은행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돈을 세고 있지만 구경만 한다면

그 돈은 결코 내 돈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가서 빌려달라고 하던지 그냥 달라고 하던지 행동을 해야 된다.

돈을 버는 이치도 이와 같아서 생각만으로 아무리 좋은 곳을 투자를 해도

그것은 상상 속에서나 투자의 성공을 맛 볼 뿐이다.

 

오늘도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좌선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처만 흉내 내며 앉아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부처가 되던지 부자가 되던지 생각에 갇혀 살지 말고 깨고 나오는 지혜로운 삶

살아가시길 발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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