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아미타경

극락정토 권(權) 실(實)의 변(辯)

敎當 2013. 11. 20. 20:20

중국 당나라 때의 조백(棗栢) 이통형장자(李通玄長者)가 화엄합론(華嚴合論)을 짓고,

그 중에 십종정토(十種淨土)의 육권사실(六權四實)

즉 열 가지 정토 중에 여섯은 권(權)이요, 넷은 실(實)이라는 것을 열거 하면서

그 중의 아미타불 정토를 권이라 하고 실이 아니라 하였으나,

이 장자는[사십화엄경(四十華嚴經)]이 당나라에 들어오기 이전이어서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보지 못한 까닭으로

아미타불 정토를 실이 아니고 권이라고 그릇 인정한 것이다.

 

누가 묻기를

[서방 정토는 성인(聖人)이 권방편(權 方便)에 들어가게 되면 무엇 타력(他力)을 빌리리오.] 하였더니

답하기를

[부처님이 계신 때의 문수(文殊) 보현(普賢)보살과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마명(馬鳴) 용수(龍樹)보살과

중국의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와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가 모두 왕생을 발원하였으니,

이네들이 모두 둔근이겠는가.

 

[보적경(寶積경)]에는

석가모니 세존께서 부왕(父王)께 정토왕생을 권하여 육萬 석종족(釋種族)이 모두 왕생하였으니

이네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라 하랴

또 이 성현(聖賢)들이 모두 지금의 소위 재능이 예리하고 뛰어난 이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만일 서방 정토를 권이라 하면 어떠한 것을 실이라 하겠는가.

중국의 손신로학사(孫莘老學士)가 처음에 정토를 의심하다가

양차공(楊次公)과 왕민중시랑(王敏仲恃郞)을 만나서

논(論)하는 도(道)가 꼭 들어맞아 드디어 의심을 풀었다

양차공 왕민중시랑 두 사람은 선(禪)을 배우다가

모두 정토 귀의(歸依)에 쉬지 않고 노력하였으니

정토는 성인(聖人)의 권설(權設)이 아니고 진실로 선려(禪侶)의 서지(棲止)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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