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관음[觀音]의 음[音]인가
묘음관세음(妙音觀世音)과 범음해조음(梵音海潮音)이
승피세간음(勝彼世間音)일세
시고(是故) 수상념(須常念)하되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니라
관세음정성(觀世音淨聖)이 어고뇌사액(於故惱死厄)에
능위작의호(能爲作依怙)라
구일체공덕(具一切功德)하사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하며
복취해무량(福聚海無量)일세 시고무정례(是故應頂禮)니라
이시(爾時)에 지지보살(持持菩薩)이
즉종좌기(卽從座起)하야 전백불언(前白佛言)하사되
세존(世尊)하 약유중생(若有衆生)이
문시관세음보문품자재지업(聞是觀世音普門品自在之業)과
보문시현(普門示現)의 신통력자(神通力者)는
당지시인(當知是人)의 공덕 불소(功德 不少)소이다
불설시문보문품시(佛說是普門品時), 중중팔만사천중생(衆中八萬四千衆生),
대발무등등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皆發無等等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묘한 저 음성 세간을 보는 음성 다 범천의 음성, 조수의 음성
세간의 속된 음을 뛰어 났으니 언제나 생각하고 염불하여라.
생각 생각 의심치 말라
관세음 거룩한 성자가 온갖 고뇌와 죽을 액 가운데
의지가 되고 구세주 되리라.
온갖 공덕 모두 갖추어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보며
복덩이 바다처럼 한량없으니 마땅히 예경하고 존중하여라.
그 때에 지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합장하고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나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자재한 업과
여러 방편으로 나투시는 신통력을 듣는다면
이 사람은 그 공덕이 적지 않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이 [보문품]을 말씀하실 때 대중 가운데
8만4천 중생이 [무등등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다.
1)等等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무등등(無等等)이란 참으로 묘한 말입니다.
같은 것(等)이 없다(無)는 뜻에서 무등(無等)이라 하고,
이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무등등(無等等)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는데,
즉 무등(無等)은 비교할 것이 없는 가장 훌륭한 것이지만,
힘써 노력하면 누구든지 될 수 있기 때문에
등(等)을 하나 더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좋은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힘써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기에 무등등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무등등한 것이냐 하면 바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입니다.
이것은 불교가 과연 어떠한 종교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불이라는 불교의 최종적인 목표는 어떠한 것이냐 하면
무등등(無等等)한 것이라는 것이고,
다시 말해서 누구나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이 다른 종교와의 차이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가 될 씨가 이미 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씨를 잘 가꾸고, 키워나가면 꽃을 피울 수가 있습니다.
즉, 노력만 하면 우리 범부들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정말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일은 틀림없이 되기는 하지만,
쉽게는 안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시어, 희망을 주시는 동시에
단단히 경계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중생들이 그러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될 가르침과 공덕을 시설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특별히 무등등(無等等)이 설해져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의 대자비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중생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등등한 무상정등각을 얻어 성불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수행뿐만 아니라, 관세음보살과 같은 불.보살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가져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리어
벗어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