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이야기/사는이야기

미신이냐 과학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敎當 2010. 9. 14. 10:12

예전에 불교카페인 <나무아미타불>에 회원가입을 한 인연으로

불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교 공부를 할 요량으로 요즈음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자주 들어가다 보니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주제넘게 남들의 생각에 이런저런 내 생각으로 토를 달게 되었고

어느덧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짓게 합니다.

진짜 구경만 하다 나올려고 했는데..........

어느덧 댓글을 달고 있는 모습에 근묵자흑(近墨者黑 :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게 묻는다)이라더니

아상에 사로잡혀 있는 글을 읽으면서

또 다른 내 아상을 심어주는 글 을 달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조심스러워지게 됩니다.

내 생각이지만 불교를 믿는 분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아상이 강하다는 생각을 떨 칠 수 없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내 자신도 아상의 결정체였다고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교회에 1년 이상 한주도 빼지 않고 다녀봤지만

결론은 의혹만 눈덩이처럼 키우고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에 다니셨던 분들은 다 아는 얘기이지만

성경에 쓰여있는 내용을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종교라는 것을 상식으로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 생각으로는 너무 허황된 내용에 질문을 하면

처음에는 열심히 설명해 주시다가 종내는

신앙심으로 극복해야지 그렇게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핀잔섞인 설교에 울컥했던 지난날.

그길로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그만 두었습니다.

포유류에 동정생식이 가당키나 한 말이냐면서........

 

이 철옹성처럼 강했던 아상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

분별심을 없애라는 말이었습니다.

불교를 접하면서 마음이 바뀌어 갔다면

성명학을 배우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기 시작 했습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니

저절로 상대방을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힘들고 괴로울 때 자꾸 예전으로 회귀하려는 마음을 다잡아주어

수행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명상입니다.

 

어떤 분이 작명과 택일에 관한 문의를 글로 올렸기에

성명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작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체유심조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무시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형편에 따라서 잘 아는 분에게 작명을 하던가 신중하게 본인이 지으라고요.

어떤 분이 작명과 택일에 관해서 장문의 글을 다시 올렸더군요.

주요 내용은 작명·사주·손금·관상·풍수등은 미신이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말이다.

이런 종류의 공부하는 사람치고 자신의 앞길도 모르고 잘 사는 사람 보지 못했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기도 열심히 해라.

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을까 말까 고민하다

(예전에는 직설법이 아니면 내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해서 직격탄을 날려야 속이 후련하였기에)

결국은 내 블러그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 하기로 하였다.

 

우선 작명·사주·관상·손금 등은 미신이 아니라 통계학입니다.

통계라는 것은 많이 맞기는 하지만 100% 맞는 것은 아닙니다.

최첨단 현대 사회에서도 예측이 빗나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사주보는 집인 줄 알고 손님으로 오셨는데

사주는 못 본다고 하자 일어나시려고 하였다.

사주는 볼 줄 몰라도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을텐데

그 답을 주면 될 것이 아니냐고 묻자 사업관계로 문의하러 왔다는 것이다.

1957년 ○○○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었는데

이름으로 풀어 답을 주니 이사람 저사람 물어보는 것이 무려 6명이나 되었다.

맞지 않는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인데........

 

관상은 볼 줄 몰라도 얼굴을 보면 무슨 병이 있는 줄은 안다.

이것이 찰색을 살핀다는 것인데 예전 한의사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얼굴의 색깔을 보고 병을 알아 맞췄다.

이게 미신이 아니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통계학이다.

또 부처님의 모습을 설명할 때

육체적으로도 남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니 32상 80종호가 그것이다.

32상은 남과 다른 모습을 80종호는 이러한 상을 더욱 세부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현제로 보면 체형 관상학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상이 미신이고 혹세무민하는 학문이라면

부처님의 모습을 이리 설명하는 것도 미신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분은 이런 종류의 학문을 하는 사람치고

잘사는 사람 보지 못했다는데 이건 참 무식한 소리다.

이런 종류의 공부를 한 사람이 못사는 것이 아니라

못사는 사람,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이런 공부를 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행복해서 그 행복을 누리는 시간도 아까운데

무엇하러 이런 공부를 하는가!

왜 잘못되는지 왜 인생이 꼬이는지 물어 보아도 속 시원하게 대답을 못해주니

답답해서 내가 차라리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 공부가 제대로 된 사람은 심성이 바뀌어 잘 살수가 있는데

이 학문도 어렵다보니 도중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데 투자한 시간은 아깝고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배운 것은 그래도 이것뿐이 없으니

우선 간판 걸고.....그러다 보니 얼치기가 된다.

그 공부하는 시간동안 돈 버는 연구를 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지도 모르는데..........

 

불교는 아상을 깨는 공부를 해야 한다.

자기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깨치는 것은 이미 요원한 얘기다.

더구나 해보지도 않은 것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폄하하는

이런 마음자세는 아상만 키울 분이다.

아상이 강하면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성명학이, 관상학이, 명리학이, 미신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

불교도 불법을 빙자해서 사리사욕을 챙기는 스님도 많이 있다.

불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듯

이런 학문이 문제가 아니고 결국은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부처님께 매달려 일심으로 기도하라는 말.

이것도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어떤 이는 기도마저 할 여유도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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