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이야기/사는이야기

이름이 뭐니?

敎當 2010. 7. 12. 14:16

예전에 어머니가 입원하시던 병원에는

여든이 넘은 연세에 비해 곱고 단아하게 생기신 할머니 한분이 입원해 계셨는데

환자 치고는 너무 인상도 좋으시고 아는 것도 많으신 분이였다.

일본어 영어를 곧잘 구사하시던 멋쟁이 할머니의 병명은 치매였다.

이 할머니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형의 이름은 먼저 나왔다고 선(先)남이요

동생의 이름은 뒤에 나왔다고 후(後)남이였다.

이 할머니를 간병하시던 분은 할머니가 알 수 없는 말로 칭얼대시면

항상 큰소리로 “후남이 선보러 갔어요”라고 말하면

얼굴에 미소를 띠시면서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잠잠해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 모양새가 하도 신기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큰아들은 돈도 잘 벌어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는데

동생은 당시 나이가 사십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교통사고가 크게나서 죽지는 않았지만 장애 2급이다 보니

형편도 어렵고 그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서

당신이 치매에 걸렸는데도 항상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주팔자는 태어난 년·월·일·시와

태어난 해의 천간과 지간하고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즉 언제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쌍둥이는 사주가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럼 같은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삶이 이리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했다.

다행히 나이를 알 수 있어서 이름을 풀어보니

그 삶은 현제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쌍둥이가 같은 삶을 사는 경우도 많지만

일부는 이처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경우도 있었는데

쌍둥이의 다른 삶에 대해서 사주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성명학에서는 그 이유를 이름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처음 공부를 할 때 사주도 배우고 싶었는데 스님은 사주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이셨다.

사주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티코로도 태어나고 그랜저로도 태어난다는 것이다.

(차명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는 성명학 설명을 하기위한 것이지

선전이나 비하 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티코로 태어나고 그랜저로 태어난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이야기였다.

태어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어떤 그릇으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티코에 일억을 들여서 튜닝을 해도 티코요

그랜저가 아무리 낡고 망가졌어도 그랜저라는 것이다.

그러니 바꿀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나름대로 인정하고 순응해서 살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티코라도 차 광내면서 세금 잘내고 기름값 걱정 없이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으면 행복하지만

그랜저라도 매번 기름값 걱정하고 세금 걱정하고 비포장이나 달린다면 그랜저라도 불행하다는 논리이다.

즉 그릇이 크던 작던 간에 인생 걱정 없이 순탄하게 살아야 행복한데

그것을 이름이 좌우 한다는 것이다.

헌데 이것이 사주를 못 배워서 그릇의 크기는 정확히는 몰라도

이름을 풀어보면 거의 이름대로 산다는 것이다.

스님은 사주라는 것이 맞을 때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맞는데

그 확률이 바닥(대략 한 20~40%정도로 본다고 한다)을 밑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따라서 통변(누구나 통용될 만한 두루뭉실한 말)으로 넘어가고

통변에 의존하다 보니 보는데 마다 틀리게 말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주로 인생 전반을 거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보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정확할 때는 오늘 언제 어디서 누가 무슨 일로 상담하러 올 것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는 것이 사주라는 것이라면서도

굳이 배우지 말라시는 것을 보면

사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명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사주의 영향을 받다가 차츰 이름의 영향을 받아

40세가 넘으면 거의 이름대로 산다고 한다.

이름은 보통 태어나면서 짓는다.

따라서 사주에 의해서 이름을 그렇게 짓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름이 아닌, 현제의 사주학으로는 설명 할 수는 없지만

사주에 의해 그리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에도

사과는 위에서 땅으로 떨어졌듯이

단지 설명을 못할 뿐이지 그 사주의 기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

 

예전에 내 사주를 보면 좋아서 대기만성형으로

잘 살거라는 말을 물어보는 데마다 듣곤 했다.

그런데 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가 물어 보면은

앞으로 몇 살 되면 좋아진다는 말에

다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 온지가 어느덧 오십이 지났다.

갈수록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고 힘들게 간다.

그때마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큰그릇이기에

이리 길게 시련을 주는지 야속하기도 했다.

인생에 좋지 않은 일들은 다 겪은것 같다.

내 이름은 아버지가 나이 사십에 딸만 위로 셋을 낳고 본 아들이라고

그 당시에 쌀 열가마니 값을 주고 지어온 이름이다.

성명학을 공부해 보니 이 이름에 문제가 있었다.

성명이 문제라면 아직도 고생이 조금(몇년이지만) 남아 있다.

나쁜일은 다겪고 좋은 일이 올 시간은 조금 남았기에

과연 성명대로 나 자신도 사는지 볼려고 개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공부한 도반은 성명을 바꾸고 개운이 되어

원래 하던 사주상담을 접고 한문 선생이 되었다.

이름을 바꾸니 주변 사람도 거의 다 바뀌면서 운도 바뀌더라며......

 

사주는 타고난 기운을 여덟 글자로 풀어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나무의 가지와도 같아서 큰 그림은 있지만

줄기와 잎과 열매같은 세세한 그림은

이름따라 간다는 생각이 이름 상담을 하면 할수록 든다.

경험이 아직 일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름에서 벗어난 삶은 아직까지는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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