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불교경전 이야기

반야심경11

敎當 2008. 9. 27. 08:21

팔식에 갈무리된 것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현행(現行)이라고 합니다.

어릴때는 팔식에 심어진 종자가 거의 백지에 가깝기 때문에

뭐든지 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잘 안되는 것은

팔식이 가득 찼기 때문 입니다.

마치 글씨가 가득찬 신문지에는 그 위에 무엇을 써 놓아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훈습을 통해서 여러번 반복하다 보면

분명히 심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팔식에 심어진 종자는 기억으로 되살아 나지 않더라도

업이되어 팔식속에 모두 갈무리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짓거나 참선을 하거나

수행을 통해 지혜를 닦아놓으면 언젠가는

마음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심층의식 속에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은 기도나 참선 수행을 통해 개발이 가능 합니다.

보통 사람은 육식의 작용에 그치는 수가 많지만

수행력이 높은 사람은 잠재의식에 내재된 힘을 끌어내어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삼업을 통해서이루어진 모든 것은

전부 팔식에 갈무리 되는 까닭에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엄청난 업장이 되는 까닭입니다.

팔식은 우리가 육신을 버릴 때에도 없어지지 않고

다음 생까지 연결됩니다.

우리가 태어나자 마자 움직일수 있는 것도

전생의 업이 갈무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하는 것도

전생부터 익혀온 것이 팔식에 갈무리 되었다가 현행한 것입니다.

팔식에 갈무리 된 것은 인연을 만나면

언젠가는 움이돋게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순간이 출발점 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십이처와 십팔계를

모두 無라고 하여 부정했습니다.

그것은 공이기 때문에 무이며 현존하는 본질을 

공으로 바로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은 자성이 없어 비어 있다는 의미이지

결코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 한 장의 존재 법칙이 공하기 때문에

종이를 접어서 학도 접을수 있고

종이로 불쏘시개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종이 한 장으로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며

종이 한 장으로 큰 싸움이 일어 날수도 있는 것입니다.

종이가 종이로만 고정되어 있다면

다른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종이 한 장의 가능성이란 무한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가도 있게되며 있다가도 없게되는 이유도

존재의 실상이 공이며 그래서 연기의 법칙이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연기의 측면에서

생성·변화·발전·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존재의 본질은 공입니다.

존재의 양상은 연기의 법칙에 의해 존재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본질이 공이라면 현상은 연기인 것입니다.

모든 현상의 이해는 연기가 그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본질이 공이기 때문 입니다.

연기와 공에대한 이해는 현상과 본질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동시에 이해할 때 비로소 완전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무라는 표현을 잘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슴니다.

공의 이치에서 보면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발전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잘못하면 더욱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본질이 공이라는 사실은 바로 지혜로써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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