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출가송(出家頌)

敎當 2018. 11. 8. 14:20

"(彌天大業紅爐雪)-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跨海雄基赫日露)-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誰人甘死片時夢)-그 누가 잠깐의 꿈 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超然獨步萬古眞)-만고의 진리를 향해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스님이 출가(出家) 하면서 심경을 노래한 출가시(出家詩) 전문이다.

득도의 길로 나서는 장부의 호연한 기품이 느껴진다.

 

성철스님은 대원사 대처승(帶妻僧) 들의 세속적 삶을 보고 출가를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해인사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363월 출가했다.

큰스님이 들려주던 당시의 정황과 심경.

 

"해인사 선방에 참선 정진한다고 앉아 있으니까 여러 사람 날 찾아오데.

노장(老長.노승의 존칭) 들한테 내 궁금한 거를 막 물어봤제.

그런데 노장들이 뭘 하나도 모른다 아이가.

실망하고 있던 차에 동산(東山) 스님이 찾아온 기라.

지금 생각 해 보면 건방졌제 내가.

맨날 그랬던 것처럼 그 스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제. "

 

동산스님은 한국 불교사에 남을 큰스님으로 일제하에서 의학을 전공한 엘리트.

3.1독립선언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에 포함된 용성(龍城)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출가했다.

1950년대 불교 개혁 과정에서 종정으로 현대불교의 기틀을 잡은 고승인데,

당시엔 백련암에 머물고 있었다.

출가도 않은 청년이 이런 큰스님에게 당돌하게 물었다고 한다.

 

"나는 이리저리 공부했는데, 스님 생각은 어떻소. "

 

동산스님은 초면에 이런 질문을 해대는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처음엔 '이상한 놈' 이란 표정이었는데, 조금 지나서는 빙긋이 웃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회고.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산스님이) 혼자 웃다가 대답은 안해주고

'백련암에 놀러오라' 그러고는 가더만.

그래서 내가 백련암으로 찾아갔지.

어지간히 반가워하데.

그러더만 나보고 '중 되라' 고 그래 쌌는 기라. "

 

마치 성철스님이 나에게 '중 되라' 고 권했듯

동산스님이 청년 시절 성철스님에게 출가를 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절집 살림에 이미 실망해있던 사람이 아닌가.

 

"나는 중 안될라고 원력(願力) 세운 사람이라 캤지.

진짜로 중 될 마음은 통 없었던기라.

그런데 내 이름, 불명을 지었다며 주는데 보니, 성철(性徹) 이더라고.

지금 내 이름 아이가.

나는 아무 말 안했는데, 언제 날 받았다고 계() 를 준다고 오라는 기라. "

 

젊어서부터 고집이 대단했던 성철스님,

더욱이 출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이 그 마음을 굽힌 계기는 영 심심하다.

별 이유나 계기도 없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중은 정말 안될라 캤는데, 그 노장을 가만히 보니까 싫지가 않더란 말이야.

그래 어째 하다보이 영 이상하게 돼버렸어.

강제로 계를 받은 거야.

동산스님의 상좌가 된 거라. "

 

이렇게 성철스님은 출가했다.

동산스님과의 인연, 출가의 인연은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됐다.

성철스님은 원래 동산스님의 둘째 상좌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직후 맏상좌가 환속하는 바람에 성철스님이 맏상좌가 됐다.

 

동산스님을 따라 부산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하안거(夏安居) 한 철을 난 성철스님은

범어사 산내 암자인 내원암으로 가 할아버지 격인 용성스님을 시봉했다.

용성스님이 동산스님의 스승이니까,

용성-동산-성철로 이어지는 선불교의 맥이 완성된 것이다.

 

당시 용성스님은 3.1운동으로 구속됐다 풀려나 범어사 내원암에 머물고 있었다.

용성스님은 다른 스님들을 모두 '선생' 이라고 불렀는데,

손자뻘인 성철스님만은 꼭 "성철수좌" , "성철스님" 이라 불렀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그 까닭을 물었다.

 

"스님이라고 부를 만한 중이 있어야지.

그런데 너를 대하니 스님이라고 부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참선정진 열심히 해라. "

 

용성스님은 성철스님을 그렇게 미더워했다.

그래서 서울 대각사로 옮겨갈 때에도 성철스님에게 "같이 가자" 고 했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 하고 대답만 하고는 부산역에서 도망쳐 버렸다.

노장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가 성철스님답다.

 

"노스님 따라갔다가는 평생 시자노릇만 할 것 같은 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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