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이 불교의 길로 들어서는 인연을 맺은 지리산 대원사를 얘기할 때면
빼놓지 않는 대목이 세가지 있다.
성철스님이 대원사로 들어갈 당시엔 출가한 상태가 아니었다.
성철스님은 혼자 불교 서적을 보면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는 화두를 찾아 들고
집에서 참선 정진에 들어갔다.
정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큰스님은 차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참선 정진하는데, 아무래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출가도 안한 상태에서 그냥 대원사로 살러 들어갔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어갔으니 누가 환대를 해주겠는가.
대원사와 관련해 들은 첫번째 얘기는 당시의 나쁜 기억이다.
"젊었을 때 사상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불경을 보니까 불교가 아주 마음에 들더라 이 말이야.
그래서 참선 좀 하려고 대원사를 찾아갔지.
그때 대원사 탑전(塔殿) 이 참 좋았어.
그래 거기 들어가 봤거든.
참선하기에 좋아 보이기에 안에 들어가 좀 있었지.
그런데 주지가 그걸 보고 펄쩍 뛰어.
본시 탑전이란 게 스님들만 있는 데지, 속인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한판 했지.
너거들은 살림 다 살고, 떡장사도 다하고 그러고도 중이냐?
내가 불교 참선공부 한다는데 웬 말이 많냐.
그래 가지고 된다, 안된다 하는 판인데 얼마 안가 주지가 갈렸어.
젊은 중이 주지대리인가를 맡았는데 그 사람하고는 그래도 말이 통했거든.
그래서 그 탑전에서 한겨울 보냈지!"
당시 대처승(帶妻僧) 의 세속적인 삶,
특히 신도들에게 떡을 만들어 파는 상행위 등은 성철스님을 크게 화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격한 성격의 성철스님이 그렇게 노발대발 '한 판' 해대는데
속인이나 마찬가지였던 대원사 스님들이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후 대원사 탑전에서 용맹전진을 시작했다.
용맹정진이란 하루 24시간 자지 않고 허리를 방바닥에 대지 않은 채
끼니때를 제외하곤 꼿꼿이 좌복에 앉아 참선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사람들이 가고 오는 것도 모른 채,
밤낮으로 열심히 정진만 했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자주 얘기하던 두번째 기억은 정진 당시의 심경이다.
"그 때만 해도 지리산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이 자자했거든.
그래서 나도 호랑이밥이 될까 겁나서 밤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정진했지.
하루는 갑자기 '내가 뭐 땜에 이리 겁을 먹는고' 하는 생각이 들었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호랑이를 겁내 떨고 있는 내 꼴이 우습단 말이야.
호랑이에 잡혀먹힐 때는 먹히더라도 겁내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그 뒤부터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잤지.
그래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었거든.
그 다음부터는 호랑이를 안 무서워하게 된 거라.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마음대로 쏘다녔제. "
성철스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결심하면 번복하거나 도중에 멈추는 일 없이 말 그대로 실행한다.
그런 태산 같은 의지로 용맹정진을 거듭했으니 보통사람보다 먼저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일타스님이 늘상 재미있게 들려주는 성철스님 자랑이 바로 그 깨달음에의 확신이다.
"성철스님은 대원사 탑전 얘기만 나오면 신나 하셨지.
입에 침을 튀기면서 설명하시는데,
얘기를 하다 입에 넣었던 밥숟가락을 확 빼면서 말하는 거야.
'그게 42일 만이었어. 내가 42일 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 가 됐거든.
동정일여가 되니까 정말 참선 부지런히 하면 도인 되겠다 싶데' .
늘상 얘기하면서도 그 대목에선 늘 흐뭇해 했지. "
성철스님이 말하는 동정일여란
'화두라는 의심덩어리가 오나 가나, 앉으나 서나, 말할 때나 묵언(默言) 할 때나,
조용하거나 시끄럽거나 상관없이 머리 속에 가득한 마음의 경지' 를 일컫는 말이다.
참선하는 선승으로서 빠지기 쉬운 여러 단계의 심리적 장애,
즉 앞서 설명했던 산란심.혼침.수마.무기공을 뛰어넘은 경지를 말한다.
마음 속에 화두가 빈틈없이 찬 동정일여의 상태,
이만한 마음 경지를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의 수행으로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성철스님의 남다른 결심과 정진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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