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해인사의 초대

敎當 2018. 10. 25. 14:02

 

성철스님은 42일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 의 경지에 올랐다지만,

막상 대원사는 '고집 센 속인' 이 골치꺼리가 아닐 수 없다.

속인이 혼자서 탑전 선방에 버티고 앉아 있으니 여러가지로 불편했던 것이다.

 

고민하던 대원사 스님들이 큰절인 해인사로 공문을 보냈다.

 "이상한 청년 한 명이 수행한다며 탑전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 는 문의였다.

 

그러자 해인사에서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 스님이 대원사로 찾아 왔다.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찾아온 스님이 출가 이전 속인 신분인 성철스님을 보고는 해인사행을 권했다.

 

"해인사가 절도 크고 좋은 곳이니 같이 갑시다.

지금 해인사에는 용성(龍城.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 스님과

만공(滿空.근대 선불교의 대가) 스님 같은 훌륭한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꼭 청년을 데려오라고 했소. "

 

성철스님은 처음에 이 제안을 거부했다.

 

"여기 대원사도 조용하고 참선하기 좋은데, 뭐하러 일부러 해인사로 찾아가겠습니까. "

 

범술스님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잘 생각해보고 꼭 한 번 해인사로 와보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얼마뒤 성철스님은 마음을 바꿨다.

성철스님이 해인사로 찾아간 경위에 대해 직접 들려준 말.

 

"얼마 있다가 해인사 같은 큰절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이 들더란 말이야.

그래서 대원사를 떠나 해인사로 갔지.

 

그런데 나보고 오라캤던 최범술스님이 없어.

이고경(李古鏡) 스님이 주지를 하고 있더군.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

 

'최범술스님이 찾아오라고 해서 왔는데 없어서 당신을 찾아왔다' ,

'나는 중은 싫어하는데 부처님을 좋아해 참선공부 좀 하려고 그런다' 고 말했어.

별로 듣기 좋은 얘기를 한 거는 아닌데,

어째 이리저리 말을 해보니까 통하는 거라.

그 스님이 좋아하더라. "

 

이고경 스님도 당대의 유명한 스님.

비록 속인이지만 성철스님의 그릇을 알아본 듯하다.

이어지는 성철스님의 회고.

 

"고경스님이 생면부지 초면인데,

일단 자기 방에서 같이 자고 다시 얘기하자는 거야.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주지 방에서 하룻밤을 잤지.

 

다음날 내가 다시

'나는 공부하러 온 것이니 공부할 방을 달라' 고 했더니

고경스님이 원주(院主.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소임) 스님을 불러 '선방(禪房) 에 머물게하라' 고 했지.

그런데 원주가 안된다는 거야.

속인을 선방에서 받은 일이 없다는 거야. "

 

속인은 선방을 드나들 수 없다.

하물며 선승(禪僧) 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참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지 고경스님은

"이 청년은 다른 사람과 틀리니까 시키는대로 선방에 들게해라" 며 원주를 야단쳤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출가얘기를 들려줄 때 은근히 힘을 주어 말하는 대목이다.

 

"고암스님이 '주지가 받으라면 받지, 무슨 말이 많으냐' 며 꾸짖으니 원주가 뭐라고 하겠어.

원주스님이 '에이, 모르겠다' 며 나를 선방으로 데려가더군.

 

가보니까 퇴설당(堆雪堂.해인사의 옛 선방. 지금은 방장실) 이더구만.

속인으로 선방에 들어가 참선한 거는 그래 내가 처음이고 마지막일 거야. "

 

당시 참선수행을 함께 한 사람으로 성철스님이 자주 언급한 인물은 김법린(金法麟) 씨다.

동국대 총장과 문교부장관까지 역임했던 김씨가 당시 해인사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책을 좋아하던 성철스님에게 불교 서적을 많이 꾸어주었다.

 

"김법린이란 사람이 나를 불 때마다 책을 내놔.

다 봤다면 자꾸 책을 바꿔주더군.

그러면서 '우리 둘이 같이 교(.불교학) 를 했으면 좋겠다' 고 구슬리는 거야.

 

참선하지 말고 불교학을 공부하자는 거지.

그래서 내가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지만 책 살 돈은 있네' 하며 거절하고는 책을 빌려보지 않았지. "

 

성철스님은 참선수행이 득도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속인이면서도 상당한 불교적 지식과 확신을 지닌 성철스님에게 많은 흥미를 느꼈던 듯하다.

성철스님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성철스님에게 많은 것을 묻곤 했다고 한다.

 

"김법린이 그 사람 나한데 뭐 대개 많이 물어보데.

한번은 '해인사에 오기 전에 불교를 어디서 배웠느냐' 고 하길래 '배우기는 누구한테 배워 

내 혼자 터득했지' 라고 했지.

그캤디만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는 지금 얼마나 교학을 공부했는데,

당신은 교학을 배운 바가 없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 아느냐' 고 말하더군.

뭐가 대개 이상했던갑제. "

 

성철스님은 그렇게 출가 이전에 이미 상당한 불교 공부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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