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새로운 장애물 수마(睡魔)

敎當 2018. 9. 10. 15:13

참선이라는 수행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고비를 넘어야 한다.

내가 걸린 상기병(上氣病) 은 그야말로 초기 단계다.

넘어야 할 고비가 한둘이 아닌데 상기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참선의 첫 단계에서

지난 시절의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 집중이 되지 않을 때만 해도

'영화 필름만 돌아가지 않으면 살 것 같다' 며 답답해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선가(禪家.선불교의 세계) 에선 이 단계의 병명을 '산란심(散亂心) ' 이라고 한다.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부서지고 흩어진다는 의미다.

 

겨우 산란심을 잡았나 했더니 상기병에 걸린 것이다.

그냥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불안정을 떠나

보다 직접적이고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지경이 된 셈이다.

화두 들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성철스님은 내가 "조금씩 나아졌다" 고 대답은 하면서도

계속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 반() , 답답한 마음 반() 에서 자주 성화를 냈다.

 

"내가 가르쳐준 대로 하면 다른 중들은 다 낳았는데 니는 우째 그리 더디노"

 

좋든 싫든 이미 얻은 병이니 우선 병을 치료하는데 더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좌복 위에 앉기보다는 마당을 거닐거나 뒷산을 오르며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일년이 더 지났다.

완쾌는 아니지만 조금씩 머리 아픈 것이 사그라져 갔다.

 

상기병도 어느 정도 잡았던 무렵

다음 단계로 나타난 장애물은 혼침(昏沈.몽롱한 상태) 과 수마(睡魔.잠든 상태) .

 

마음도 잡고, 두통도 가라앉았으면

당연히 "부처님을 물었는데 어째서 삼서근이라 했는가" 라는 화두가 잘 잡혀야 한다.

그런데 화두는 어디 가버리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좌복 위에 앉아 화두를 생각하려고 마음을 모으고 있는데,

정신이 몽롱하다가 언제 졸았는지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져드는 증상이다.

참선하는 스님이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적어도 한번쯤은 빠지는 증상이다.

성철스님은 늘 '혼침과 수마' 를 경계하라고 했다.

 

"참선 정진 잘못하면 수마에 빠져. 평생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망치고 마는 수좌(首座.수도승) 들도 많아. "

 

큰스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혼침과 수마는 소리없이 찾아왔다.

참선한다고 좌복 위에만 앉으면 무조건 조는 것이다.

점심먹고 나서만 조는 것이 아니라 새벽.아침.오후.저녁 구별없이 좌복 위에 앉으면 자동으로 졸기만 한다. 언젠가 성철스님이 수수께끼를 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저마다 대답이 각각이라.

누구는 쇳덩이다, 누구는 바윗덩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의 정이다 하는 거라.

니는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겁다고 생각하노"

 

그렇게 아리송한 질문에 대답을 알수도 없거니와 대답해봤자 맞을 리가 없다.

늘상 해오던 대로 "모르겠심더" 하고 일찌감치 항복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윗눈꺼풀이다.

잠이 올 때는 천하장사도 그 윗눈꺼풀 하나 들 수가 없는기라. 알겠제!"

 

수마에 시달려본 승려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냥 졸음이 오는 정도가 아니라,

좌복에만 앉으면 졸음에 빠지는 경험을 몇달간 계속하다 보면 정말 마() 가 끼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죽했으면 '' () 에다 '() ' 자까지 붙여가며 경계하고자 했겠는가.

 

수마를 이겨내고 나면 어지간한 장애의 단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앉기만 하면 화두가 뚜렷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정진의 기본이 갖춰졌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일단 수마의 경계를 지나고 나면 만사가 편안해진다.

화두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화두를 들지 않고

그냥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편안히 앉아 있기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선 이런 마음 상태를 '무기(無記) ' 또는 '무기공(無記空) ' 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마치 깨달음의 경지인 양 잘못 알기 쉽다.

깨달았다며 큰스님을 찾아오는 스님 중에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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