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책 읽지마라"

敎當 2018. 8. 27. 11:39

평생 참선에 전념해온 성철스님이 참선수행과 관련해 강조하는 확고한 원칙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글을 읽지 말라" 는 것이다.

지금도 귓속에 쟁쟁한 큰스님의 가르침.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육조 혜능대사는 본래 무식꾼이었지만 자성을 깨쳐서 부처를 이룬 뒤에는

무진법문을 자유자재로 하게 됐다는 거라.

 

니는 대학도 졸업했다 하니 누가 니 보고 무식하다 하겠노?

그러니 앞으로 절대로 책보지 말고 내가 준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열심히 하거래이.

참선 잘 해서 마음 깨치는 것이 근본이지

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대이. "

 

큰스님이 늘 인용했던 혜능(慧能.638~713) 대사는 중국의 선() 불교를 크게 일으킨 당나라 스님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도

참선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불교 사상의 정수를 이해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큰스님이 주장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 를 이룬 역사적 모범인 셈이다.

 

책을 보는 것이 오히려 참선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처음에는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큰스님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불교서적이 무려 6천권이나 장경각(藏經閣) 에 소장돼 있는데,

그 책을 "다 읽어라" 고 할까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보지 말라" 는 말을 들으니 장경각에서 해방된듯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픈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닌가.

어느 날 마당을 지나는데 헌 신문지 조각이 이리 저리 펄럭이며 나뒹굴고 있었다.

무심코 주워들었다.

 

"이 것이 글자인가. "

 

오랫만에 보는 활자는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마당가에 서 신문을 읽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큰스님이 다가왔다.

 

"이놈아 

내가 책 보지 말라고 했으면 안 봐야지,

그 새 그걸 못참아 신문 쪼가리 들고 눈 빠지게 보고 있어.

이 나쁜 놈아!"

 

큰스님이 고래고래 호통을 쳤다.

아무 변명도 할 것이 없다.

그저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필이면 그 짧은 순간에 나타나서 현장을 들켰으니 어떻게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이제 다시는 글을 보지 않겠습니다. "

 

백배 사죄하고 다짐, 다짐했다.

그러니 얼마간은 멀리 있는 책만 봐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데 그렇게 책을 멀리한다고 해 참선 공부가 잘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부처님을 물었는데, 어째서 삼서근이라 했는고?"

 

삼서근이란 화두를 붙잡고 아무리 집중을 하려고 해도 헛생각만 들었다.

지난 세월의 내 행적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가 사라지곤 했다.

오로지 화두의 의심만 떠올라야 하는데,

머리 속에 화두는 없고 망상만 가득하니 정말 말 그대로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밥을 짓는 공양주나 큰스님 반찬을 차리는 시찬 노릇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화두에 전념하려 해도 안됐다.

잡념을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바쁘기만 하면 일에 빠져 잡념은 없었는데

그래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했는데.

 

그렇게 화두를 들기만 하면 황토길 내달리는 망아지처럼

헛된 생각이 뿌옇게 일어나니 도저히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는 성철스님을 찾아뵙고 마음 속 갈등을 털어놓았다.

큰스님이 한참 동안 빤히 내 얼굴만 쳐다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 자슥, 헛생각하고 앉았으면서 지는 디기 공부하는 줄 아는가배.

그게 다 일념(一念) 이 안된다는 말이니, 더욱 열심히 해야제!"

 

큰스님 방에서 물러나오면서도 잡념은 떠나지 않았다.

당시로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업장(業障) 이 두터운가 보다' 는 것이었다.

그래도 답답해 가까운 한 스님에게도 물어보았다.

 

"나는 참선하려고 앉았다 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헛생각들이 죽 끓듯이 일어나는데, 스님은 어떻습니까?"

 

나보다 두 해 먼저 출가했지만

나이로는 여섯 살이나 아래인 스님이다.

대답에 망설임이 없다.

 

"나는 앉아있으면 편안하고 떠오르는 망상이 없는데, 스님은 어째서 그렇게 헛생각이 많다고 하는 거요?

 

잘 이해가 안 되네. "

 

속으로 중얼거렸다.

 

"6년을 더 산 세상살이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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