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부엌 살림은 대개 공양주(밥하는 직책) 와 채공(반찬 만드는 직책) 이 맡아 꾸려간다.
밥은 한가지나 반찬은 여러가지인지라 채공이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신도들 대부분은 공양주에게 인사를 차린다.
법당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밥)를 공양주가 불기(佛器)에 소담스럽게 담아 건네주기 때문이다.
공양주였던 나는 신도들로부터 "감사합니다" 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채공행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며 민망스러워 했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여자 신도가 내 손을 끌어당겨 돈을 쥐어 주었다.
"공양주 행자님 수고 많으십니다. 이거 얼마 안되는데, 연필이라도 사 쓰십시오. "
난생 처음 돈을 받았다.
얼떨결에 받았지만 곧 "저는 돈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며 되돌려주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여신도가 부뚜막에 5백원을 놓고는 달려 나가버렸다.
당시 대학생 하숙비가 2~3천원 했으니, 5백원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5만원쯤은 될 듯하다.
부뚜막에 놓인 5백원을 바라보는 심정이 참 묘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내가 팁을줬는데, 이제는 내가 팁을 받는 신세라니…. "
돈을 보고 고맙다는 생각보다 왜 '팁' 이라며 자조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당시 심정은 정말 서글펐다.
절에서 실제로 돈을 쓸 일도 없고,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몰라 원주스님을 찾아가 돈을 내밀었다.
"어떤 보살이 팁 5백원 놓고 갔심더. "
원주스님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며 험상궂어졌다.
뭐라고 야단치려는 모습을 하다가 말았다.
나는 속으로 "절에 들어와 하도 실수를 많이 해 아닌 말로 '절집 고문관' 으로 낙인찍혀 있나보군" 하며 섭섭한 마음을 달랬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뒤 성철스님이 호출한다는 전갈이 왔다.
"또 야단이 났나보다" 며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었다. 마음 굳게 먹고 방문을 열고 큰스님 앞에 꿇어 앉았다.
"이놈아, 팁이란 말이 뭐꼬?"
"세속에서 음식점 같은 데서 음식을 먹고 나면 감사하다는 뜻으로 주는 잔돈을 팁이라고 합니다. "
'술집' 이란 단어는 빼고 말그대로 낱말풀이만 했다.
"임마, 그런 게 팁이라는 거 몰라서 묻는 줄 아나. 이 쌍놈아!"
큰스님의 등등한 노기에 아무 말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팁 받는 주제에 꼴 좋다. 이놈아,
그 돈은 팁이 아니라 시줏돈이다 시줏돈.
신도가 니한테 수고했다고 팁 준 것이 아이라, 스님이 도 닦는데 쓰라고 시주한 돈이라 말이다.
그걸 팁이라고 똑똑한 체 하니 저거 언제 속물이 빠질란고…, 허어…참. "
큰스님이 어이가 없다는듯 혀를 끌끌 찼다.
"절에 있으면 더러 신도들이 시주랍시고 너거들한테 돈을 주고 가는 모양인데,
그건 너거 개인 돈이 아니라 사중(寺中) 시주물이데이.
그러니 원주에게 줘 공동으로 써야 하는 것이라.
그리고 시주물 받기를 독화살 피하듯 하라는 옛 스님의 간곡한 말씀이 있으니 앞으로 명심하고 살아야 한데이.
이놈, 오늘 팁 받아서 니 주머니에 넣었다면 당장 내쫓았을 건데…. "
큰스님의 긴 꾸중.
그 마지막 대목을 들으면서 "오늘은 진짜로 운 좋은 날" 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팁이라 생각하고 서러운 마음에 돈을 원주스님에게 갖다주었기 망정이지,
무심코 호주머니에 넣고 내 돈이라 생각했다간 큰일 날 뻔했다.
내가 받은 첫 시줏돈은 그렇게 큰스님의 가르침과 함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큰스님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며 썼던 발원문에서도 시주물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했다.
"시주물은 화살인 듯 피하고, 부귀와 영화는 원수 보듯 하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