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법명 번복 소동

敎當 2017. 8. 10. 13:55

나보다 4-5개월 먼저 들어온 행자가 있었다.

마흔을 넘겨 늦어도 한참 늦게 출가한 분이다.

성철스님의 시찬(侍饌.큰스님 식사당번) 을 맡고 있던 그 스님이 법명(法名) 을 받던 날이었다.

 

"뭐라꼬?"

 

갑자기 큰스님 방에서 고함 소리가 낭자하고 여러 스님들이 들락날락 불려다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채 밖에서 마음만 졸이고 있었다 

불려간 스님들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나오곤 했다.

시찬을 담당했던 행자는 여러번 큰스님 방에 불려 들어갔다. '

저 시찬 행자한테 문제가 생겼나 보다' 는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동이 가라앉고 얼마 지나자 큰스님이 나를 찾았다.

잘못한 것도 없고, 무슨 일인지도 몰랐지만 낮에 들었던 큰스님의 높은 목소리에 걱정이 앞섰다.

 

"이번에는 무슨 야단을 맞을런가. "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큰스님의 음성이 여전히 격앙돼 있었다.

 

", 거 앉아 봐라. "

 

고개도 바로 못들고 조용히 꿇어 앉았다.

큰스님의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꼭 중 돼야 도() 닦는 거 아니데이. 니는 고마 중 되지 말고, 행자 그대로 있어라. 알겠제. "

 

전혀 영문을 모르는 나는 ", 큰스님 가르치시는 대로 따를 뿐이지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고 대답했다.

 

"그래 그래, 니는 됐다. 그렇게 중 될 생각하지 말고 행자생활이나 열심히 해라. 인제 나가봐라. "

 

어리둥절한 채 물러나왔다.

'오늘 무슨 있이 있었기에 갑자기 저런 말씀을 하실까' 하는 궁금증이 더했다.

마침 친구스님이 나를 부르더니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소동의 발단은 시찬 행자에게 내린 법명이었다.

스님이 되는 것을 흔히 '() 를 받는다' 고 한다.

'' 에는 두가지가 있다.

행자신분을 벗어나는 단계에서 먼저 받는 것을 '사미계(沙彌戒) ' 라고 하며,

이후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정식 승려가 되면서 받는 것은 '비구계(比丘戒) ' 라 한다.

 

보통 사미계를 받기 전에 스승으로부터 법명을 받는데,

성철스님이 시찬 행자에게 '원조(圓照) ' 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일부 스님들이 여기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수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서너명이 출가해 큰스님께 법명을 받았는데,

그 때 제일 나이도 많고 또 맏형 노릇하던 행자에게 '원조' 란 법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원조스님은 몇년간 백련암에서 살다가 공부를 더하겠다며 환속했는데,

그가 바로 국제적인 불교학자로 유명한 뉴욕주립대학의 박성배 교수다.

 

어쨋든 박성배 교수와 함께 계를 받았던 동년배 스님들이

한참 후배뻘 되는 행자에게 같은 법명을 주니

마음이 적잖이 상해 큰스님께 간청을 한 것이다 

큰스님이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하다.

법명을 내리는 것은 은사로서의 고유권한인데 상좌들이 비토를 하니 여간 기분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얘기인지라 큰스님이 마음을 바꿔

시찬 행자에게 '원조' 대신 '삼밀(三密) ' 이란 법명을 주었다.

삼밀스님은 1년 후 백련암을 떠나서 강화 전등사에 머물다가

정릉에 삼정사(三精寺) 를 창건, 수행하다가 몇 년 전 입적했다.

 

어쨌든 큰스님은 법명을 바꿔 주고서도 성이 풀리지 않자 아직 행자인 나를 불러

"니는 법명을 주지 않을 테니 행자로 살아라. 아예 중 될 생각하지 말거래이" 라고 다짐을 놓은 것이다.

 

친구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갑자기 억울해졌다.

나도 몇달 지나면 큰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고, 사미계도 받아 행자딱지를 떼리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큰스님 앞에서 감히 내색할 수 없었다 

이렇게 '행자로 들어와서 법명을 받아 스님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가 보구나' 하며 체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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