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사투리 설법

敎當 2017. 6. 5. 14:38

도시를 떠나 산에 살게되면서 내심 걱정이 많았었다.

뱀에 물리지 않을까, 큰 짐승이 나타나지 않을까, 옻나무가 많은데 옻물 오르지 않을까등등. 모든 것이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오솔길을 가다가 한눈 파는 사이 기어이 뱀에 물리고 만 것이다.

 

허벅지 위를 허리줄로 묶고 산아래 약국으로 내려 갔다.

약사가 "뱀에 물리는 순간 앞이 캄캄하던가" 라고 묻는다.

 "그렇게 캄캄하고 아득한 느낌은 없었다" 고 하자 "그럼 독사가 아니니 안심하라" 고 한다.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사가 이빨자국 난 곳에 소독약을 발라주더니 가라고 해 백련암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정작 뱀에 물린 나는 괜찮은데 입으로 독을 빨아낸 채공행자의 입주위에 도들 도들 물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독사가 아니라해도 독성분이 있었나보다 싶어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걱정이 많았는데, 물집은 사흘 정도 지나 사라졌다.

 

뱀에 물려서는 아니지만 나는 큰절에 내려가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동자승(15세 미만의 스님) 을 대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어린 동자승이라도 나보다 먼저 절에 들어왔으니 선배 스님이다.

서른이 다 된 행자지만 허리 꺾어지게 동자스님들에게 절을 해야했다.

 

"큰절에 가면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스님들이니 행자는 허리를 90도로 팍 꺾어 절을 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큰절 스님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요.

스님이 보이면 노인이건 어리건 무조건 절부터 하는 것 잊지마시오. "

 

원주스님이 큰절에 내려보내면서 항상 잊지않는 당부겸 공갈겸 다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90도 꺾어 절하는 것이지,

막상 막내동생이나 조카쯤 되는 어린 스님을 보면 도저히 허리가 꺾어지지 않았다  

 

엉거주춤하는 사이 어린 스님들이 지나가며 째려보는 폼이 영 심상치 않았다.

한참을 다짐 다짐하고 진짜 허리를 90도로 꺾어 동자스님에게 겨우 절을 해봤다.

아무래도 어색했다  

그래도 성철스님이 큰절에 내려가 법문(설법) 을 하는 날엔 가능하면 따라 갔다.

큰스님은 높은 법상(法床) 위에 올라 설법을 한다.

 

먼저 스님들이 모두 큰스님께 삼배를 해야한다.

그리고 잠시 입정(入定) 이라 하여 1분 내외 짧은 시간 묵상한다.

유나(사찰의 의례를 진행하는 책임자) 스님이 죽비를 세번 두드리면 입정에 들었다가,

다시 죽비 세번을 치면 법문이 시작된다.

 

높은 상위에 호랑이처럼 앉아 도도히 설법하시는 스님의 모습은 장엄하게 느껴질 정도다.

고향인 서부 경남의 산골,

산청 사투리로 사자후를 토하는데 어찌나 사투리가 심한지

같은 경상도지만 대구 출신인 나도 제대로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말은 또 얼마나 빠른지 앞말보다 뒷말이 먼저 튀어나오려고 다투는 것처럼 들릴 정도다  

그러니 한 마디도 안놓치고 들으려면 귀를 쫑긋이 하고 말을 달리듯 말씀을 따라가야만 했다.

 

스님은 법문을 끝내면 대웅전 옆 방장실로 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냥 쉬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해인총림의 최고 지도자로서 중진 스님들의 문안을 받으며 절살림살이 보고도 듣는 시간이다.

그럴 때면 나는 동자스님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멀리 돌아 방장실쪽으로 올라가곤 했다  

한시간쯤 지나면 큰스님은 어김없이 백련암으로 돌아간다.

1972년이면 이미 환갑의 나이인데도 성큼성큼 앞서가는 큰스님의 발걸음은 가볍다.

 

내가 오히려 숨이 차 헉헉거리기 일쑤였다.

숨가쁜 소리가 앞서가는 큰스님 귀에까지 들릴 무렵이면 어김없이 불호령을 내렸다.

 

"이놈아, 젊은 놈이 빨리 안따라오고 뭐하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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