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내 이빨 물어줄래?

敎當 2017. 7. 18. 09:59

어느 날 중년의 스님 한 분이 백련암을 찾아왔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먼 길 오느라 끼니를 걸른 스님께 밥상을 차려드려라는 원주스님의 명에 따라 내가 상을 봐드렸다.

10여분이나 지났을 시간,

그 중년 스님이 마루로 뛰어나와선 고함을 질렀다.

 

"이 절 공양주가 누구야? 어서 이리 와!"

 

나는 영문도 모르고 쫓아가 "제가 공양줍니다" 라며 공손히 반절을 했다.

스님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내 발쪽으로 내동댕이 치면서 노발대발이다.

 

"내 이빨 물어내, 이놈아!"

 

종이뭉치에 싸인 밥알이 마당에 흩어졌다.

밥에 든 돌을 씹은 것이다.

서러움이 뱃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지며 솟아 올랐다.

행자시절 고달팠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도시 놈이 절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무척이나 참고 애써 왔는데. "

 

굵은 눈물을 떨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스님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저 스님 성질이 워낙 급한 분이라 그렇다. 이해하라" 며 위로해 주었다  

복받치는 감정인지라 위로의 말에 설움이 더했다.

나를 성철스님과 처음 만나게 해주었던 친구스님이 보다 못해 내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뭐 참을 만큼 참고 살아왔으면서 무슨 그런 추태를 보이느냐. "

 

위로겸 질책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내가 뭐 잘 났다고, 행자로서 자존심 같은 거 버린지 오래지 않았는가.

그렇게 마음을 삭이고 있는데, 아까 그 스님이 다시 찾았다.

 

설움을 많이 삭인 터라 먼저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그 스님이 오히려 "급한 성격에 야단을 쳐서 내가 미안하다" 며 사과를 했다.

 

스님은 이어 "니가 참선한다고 하니, 내가 상기병(上氣病.기가 머리로 쏠려 생기는 두통) 을 막는 체조를 가르쳐 주마" 하며

() 체조를 가르쳐 주셨다.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가르치는데, 나는 속마음이 안정되질 않았으니 그저 스님 따라 시늉만 지을 뿐이었다.

 

당시 그 선체조를 배워 익히지 못함을 나중에 크게 후회해야 했다.

그때는 상기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냈지만

나중에 참선하던 중 바로 그 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날 해질 무렵 큰스님이 찾았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묵묵히 있으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억울하면 산천이 떠나가게 실컷 한번 울어보지 그랬나! 한번 말해봐라. "

 

불같은 재촉에 낮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 이빨 물어줬나?"

 

큰스님의 엉뚱한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 이빨 물어줬냐고 묻는다 아이가. 와 대답을 안하노?"

 

무슨 대답을 이끌어 내려고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뭔가 위로의 말을 들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빨은 못 물어줬습니다.

그렇지만 백련암 와서 반년 넘게 행자생활한 중에서 오늘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절 생활을 익히지 못해 주변 스님들 불편하게 하고......

여기서 절 생활 접고 하산해야 되지 않겠나, 오후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큰스님이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면, 내 이빨은 어떻게 물어줄래?

이놈아, 나도 니 밥 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나?

니가 내 이빨 물어줄려면, 도망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백련암에 살면서 내한테 그 빚을 갚아야제. 안그러나!

니 생각은 우짠데......... "

 

나는 그 때에 비로소 알았다.

그동안 큰스님도 돌을 많이 씹었다는 것을.

 

"공양주 열심히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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