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 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을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할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할 것인게 잘 들어 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혔으면 누가 와서 화두 참선법(話頭參禪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가르쳐 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쳐 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 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 하고 바로 찾아 주시거든.
그러니 이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하고 배길수가 있남.
요즘은 다 글렀어. 또 말세고 말이야!
모두가 이름과 위치에 얽매이다 보니, 누가 와서 화두를 물을 짝이면 아무렇게나 일러 주고 만단 말이지.
안 일러 주면 자신의 이름과 자리 값이 떨어지니께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아홉번 받았느니, 여덟번 받았느니 하는디,
이래 가지고서야 워찌게 도통을 한다고 할것인겨!
지가 꼭 공부하던 화두를 일러 주니께 틀림없이 공부를 이루고 바로 도를 통하는겨.
자신 만만하니께 도통하는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는 한생각으로 마음을 몰아 붙여
오로지 한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쓰잘데기 없는 몸과 마음에 끄달려, 조금 하다가 안 되면 그만 팽개치고 "소용 없다"고 하거든.
이게 다 아상(我相)이 많아서 그런겨.
무엇이든지 한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한가지여.
똑같은 밥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 되는겨.
중이 되려면 처자권속을 죄다 버려야 혀. 모두 다 버리고 뛰쳐나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열심으로 닦아야 혀.
아버질 생각한다든지 어머닐 생각한다든지 가족을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거든.
무슨 공부든지 일념으로 해야 혀! 위찌케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이 일념이 안 되면 이것 저것 다 쓸데없는겨.
그래서 옛날 도통한 도인네들은 부모 형제 모두 내버리고 중이 되어 홀로 공부했던 거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겨
집에 있으면서 부모님을 열심히 위하면 효도라도 되는데,
이런 효도도 못하고 집을 나와서는 도도 깨치지 못하니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거 아녀.
두 집안에 죄짓지 말고 "워쩌튼 죽어라 혀 보자" 해서 부모 형제 모다 버리고 이렇게 산단 말이지
"한 집안에 천자가 네 명 나는 것보다도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게 낫다." 이런 말을 옛날부터 많이 들었지.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이 공덕으로 조상의 모든 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離苦得樂) 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살람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 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워디 있을겨.
사람 몸 받고도 성불 못하면 이보다 더 큰 한이 워디 있을겨.
부처님께서도 "나는 너를 못 건져 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다 쓸데 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수월스님은 일생동안 한번도 법상에 오른 일이 없는 것 같다.
여기 실은 수월스님 말씀은 중국 북간도에 있던 화엄사에서 몸을 다쳐
며칠 머물게 된 어느 독립군 연설 단원에게 들려 준 법문이다.
수월스님에게서 큰 감화를 받은 이 독립군 연설단원은 그 뒤 몽고에서 스님이 되었다.
수월하면 또 만주 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수월이 그 사납기로 소문난 만주 개 무리를 만난 곳은 회막동에서 수분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왕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잠이 없던 수월은 밤낮없이 길을 걸었다.
그 때 만주 땅에는 마적이며 비적 떼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적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수백명 씩 떼지어 다니면서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여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곤 했다.
일제는 무장독립군을 없애려고 일본군을 간도로 투입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런 마적단에게 엄청난 돈을 주어 소위 '훈춘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비적은 마적에 비해 무리도 훨씬 적고 무기도 구식 칼 따위가 고작이었으나, 악랄하기는 마적들보다 더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불침을 놓기가 일쑤였고 이불이든 살림도구든 보이는 대로 빼앗아갔다.
심지어는 입고 있는 옷까지 벗겨갔다고 한다.
이 같은 마적이나 비적들의 세력은 흉년이 들면 더욱 성행했는데,
그것은 먹고 살길이 없는 농민들이 그들의 집단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무리들로부터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밤이 되면 몸집이 크고 용맹스러운 만주 개를 마당과 거리 곳곳에 풀어놓았다고 한다.
이 개는 만주에만 있는 별난 개였는데 지금은 종자가 끊어졌는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개들은 마을사람들은 절대로 물지 않지만 밤에 마을로 숨어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떼로 덤벼들어 여지없이 물어 죽이곤 했다고 한다.
어찌나 날쌔고 용맹스러운지 한번 물으면 결코 놓아주지를 않아서
이들을 물리치려면 총으로 쏘아 죽이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야밤에 떼로 몰려드는 개들을 정확하게 맞추어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총을 가진 마적떼도 더러 만주개의 표적이 되어 물려 죽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때 왕청 일대는 마적떼와 비적떼들이 자주 나타나던 곳이엇다.
그런데다가 호랑이가 나타나 가끔 사람을 해치는 경우까지 있어서
사람들은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니면 밤길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다.
그래서 밤에 어느 마을을 들러 지나가는 나그네는 미리 그 마을 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집집마다 개들을 풀어놓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특별히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이런 부탁을 거절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런 풍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월은 밤낮없이 길을 걸을 뿐이었다.
낮에는 무리를 이룬 조선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밤에는 조선 사람들이 말려도 한사코 홀로 걸었다.
삶과 죽음을 던져 버린지 오래인 수월에게는 두려움 같은 것은 아예 그림자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좁은 방을 빌려서 밤을 지새야 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편한 잠자리를 갖게 해 주려는 마음에서였을까.
개척 당시, 간도 땅에 자리잡고 있던 마을들은 대개 수십리씩 떨어져 있었다.
마적, 호랑이, 비적, 만주개, 질병의 위험에 대한 대비는
그 무렵 간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여행 상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간도에서 몇 해를 지낸 수월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으리라.
때는 가을, 차고 맑은 간도의 달빛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수월의 발 뿌리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기러기 떼는 북극성을 지나 조선 땅을 향해 날개짓해 가건만,
수월은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북녘의 겨울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이런 수월의 발걸음이 왕청의 어느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거리에 나와 마을을 지키고 있던 만주 개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길게 울부짖자
집집마다 묶여있던 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마을은 금새 피비린내 나는 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긴장에 휩싸인 마을 사람들은 개의 목을 동여 맨 쇠사슬을 풀었고
거품을 가득 문 개들은 같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마적들이 마을을 습격한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속에서 숨을 죽인 채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낯선 침입자가 들어선 곳은 동구 입구 밖에서 멀지 않은 곳인지, 개들의 울음소리는 동구 밖에서 멈추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적과 개들이 대치 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동구밖은 조용하기만 했다. 총 소리도, 비명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말 울음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손에 칼이나 몽둥이 따위를 거머쥐고 조심스럽게 한 사람씩 문 밖으로 나갔다.
마을은 서리를 안고 내리는 달빛만 교교할뿐 어떤 이상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금새 무리를 이루어 개들이 뛰어나간 동구 밖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은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고 넋을 잃고 말았다.
동구 밖 수수밭이 있는 큰 길 가에 흰 바지 저고리를 입은 한 조선 노인네가 가느다란 지팡이에 작은 몸을 기대고 서 있고,
그 앞에는 미친 듯 달려간 수십마리의 개들이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네는 별다른 표정 없이 가만히 개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날 밤 뒤에도 만주 개들은 수월을 만나면 한결같이 이런 태도로 수월을 반겼다고 한다.
하기는 수월이 마지막 삶을 살다 간 화엄사에서 어린 시절에 수월을 눈으로 본 노인들의 말을 빌리면
수월을 반기고 따르던 짐승은 비단 만주 개들뿐만 아니었다고 한다.
수월이 손을 내밀면 날아가던 까치도 앞을 다투어 내려앉았고 ,
수월이 산에 들어가면, 꿩, 노루, 토끼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맹수 가운데서도 가장 사나운 호랑이까지도 자주 스님 곁에 찾아와 마음껏 머물다 갔다고 한다.
왜 , 그러한 짐승들까지 수월을 반기고 좋아했던 것일까?
뒷날 (북한산 도선사) 청담스님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주 개는 세퍼드보다 더 무섭습니다.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고, 키도 세퍼드보다 더 큰데, 그 개한테 내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수백 리 먼길을 가게 되어서 길을 묻고 싶어도 개가 나올까봐 일부러 다른 곳으로 피해서 산을 넘어서 다니고 그랬습니다.
수월스님께서 계시던 절 아랫마을에는 조선 사람들이 한 칠백 호쯤 , 중국사람들이 한 삼백 호쯤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 말이 수월 노장님 모습이 참 기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옷도 다 떨어져서 빨간 것, 푸른 것, 흰 것들을 아무렇게나 모아 누덕누덕 기워입고,
짚신도 상주들 신 모양으로 볼록하고 머리에 쓴 것도 이상스럽게 걸레인지 모자인지 모를 정도인 걸 보면
그야말로 죽은 개도 기겁을 해 짖게 생겼는데, 그렇게 사나운 개들이 그 노장님 보고는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월스님 보고는 무서운 개들도 짖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 있다는 겁니다.
탐진치의 삼독이 뿌리째 딱 떨어지면 그와 같이 호랑이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토끼나 노루가 그 사람 앉아 있는 곳에 뛰어들어오고 그러는데, 삼독이 그렇게까지 없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 때 나는 나를 보고 자꾸 짖어대는 개를 보고 속으로 참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장삼입고 수도하는 중이라면서 개가 짖도록 되어 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다 그 해물지심(害物之心)이 남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해물지심'이란 생명을 해치는 마음, 곧 살생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든 살생하는 마음이 깨끗이 떨어져 버리면 목숨 있는 것들이 모두 품안으로 들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어찌 짐승뿐이겠는가?...
근세의 고승중 수월(水月, 1855~1928)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근대 경허대선사(鏡虛大禪師)의 가장 큰 법제자인 수월스님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나이 서른에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출가하여 성원(性圓) 스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배우지 못한데다 머리까지 둔하여 불경을 배워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은사 성원스님은 글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땔나무를 해오는 부목(負木), 밥을 짓는 공양주(供養主)등의 소임을 3년동안 맡겼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월스님이 불공할 때 올릴 마지를 지어 법당으로 갔을 때,
마침 부전스님(기도승)이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를 송(頌)하고 있었습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스님은 이를 한번 듣고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머리가 좋지 않다고 구박을 받았는데, 총 442글자의 천수대비주가 저절로 외워진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나무를 하러 가거나 밥을 짓거나 마냥 천수대비주를 흥얼거리며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은사 성원스님이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다가 마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땅히 제시간에 와야 할 마지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밥 타는 냄새만 절 안에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부엌으로 찾아간 성원스님은 전혀 예상 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수월스님이 대비주를 외우면서 계속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밥이 까맣게 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솥이 벌겋게 달아 곧 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대비주를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본 성원스님은 수월스님에게 방을 하나 내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너에게 이 방을 줄 터이니, 마음껏 대비주를 외워보아라,
배가 고프면 나와서 밥을 먹고 잠이 오면 마음대로 자거라. 나무하고 밥 짓는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수월스님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가마니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짝에 달았습니다.
빛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수대비주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방 밖으로는 밤낮없이 대비주를 외우는 소리가 울려 나오고.....마침내 7일째 되는 날,
수월스님은 문을 박차고 나오며 소리쳤습니다.
"스님, 잠을 쫓았습니다.! 잠을!'"
이때 수월스님은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중득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을 뿐 아니라,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중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글을 몰라서 경전을 읽지도 못하고 신도들의 축원도 쓰지 못하였지만,
불망념지를 이룬 후부터는 어떤 경전을 놓고 뜻을 물어도 막힘이 없게 되었으며,
수백 명의 축원자 이름도 귀로 한번 들으면 불공을 드릴 때 하나도 빠짐없이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수삼매를 얻은 뒤에도 정진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잠을 쫓았다'는 그 말대로 일평생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백두산 간도지방 등에서 오고 가는 길손들에게 짚신과 음식을 제공하며 보살행을 실천했던 수월스님!
오늘날까지 자비보살이요 숨은 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수월스님의 도력은 천수대비주 기도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경허의 세 달 , 수월, 혜월, 만공 중의 온달이라고 불리는 수월스님은
대다라니주로 달통을 하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달통을 한 후, 특이한 능력이 생겼는데,
일단 들으면 내용이 아무리 많아도 그대로 기억을 하고, 밤에 잠이 없어졌으며, 아픈 이들을 낫게 만드는 능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비주 삼매에 들곤 하셨는데,
몸에서 방광이 뻗쳐 여러 차례 옮기는 곳곳 이웃동리사람들이 산불이 난 줄로 알고 소동을 일으키곤 하였다고 합니다.
'경전 > 도인과 선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우 경허(惺牛 鏡虛) 선사 (0) | 2016.07.11 |
---|---|
혜월(慧月)스님 (0) | 2016.06.22 |
만공 스님 (0) | 2016.06.17 |
송나라 법원선사의 구도 이야기 (0) | 2016.06.14 |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 1055∼1101) (0) | 2016.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