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寺中)에 보태 쓰시오
스님께서는 좀처럼 택시를 타는 법이 없으셨다.
가은에서 봉암사까지의 30리길을 항상 걸어다니시곤 했다.
그날도 걸어가시는 스님의 모습에 가은에 있는 신도분이 극구 봉투를 주머니에 넣어드리며 택시를 타고 가시라고 했다.
그러나 스님은 고집스럽게 계속 걸어가셨다.
도중에 지나가는 차들이 멈춰서 스님을 태워 모시고 가려 하면,
“산책 삼아 이렇게 가는 겁니다. 신경쓰지 마시고 가던 길이나 가시오.“ 하시고는 유유자적 걸어가시는 것이었다.
봉암사에 도착하셔서 원주스님을 찾아 주머니에서 신도가 건네준 봉투를 내미셨다.
“사중(寺中)에 보태 쓰시오."
그리고는 조실채로 걸음을 돌리셨다.
♣상한 닭 창자냐?
어느 새댁이 봉암사를 찾아왔다.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 절로 도망쳐 왔던 것이다.
법당에서 엉엉 울다가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스님방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스님. 못 살겠어요.”하며 계속 엉엉 울었다.
스님은 등을 툭툭 치며 말씀하셨다.
“더 세게 울어라. 그렇게 사는 게 힘이 드느냐? 가난해서 양식이 없으면 쑥 뿌리가 보약이지. 그런데 업에 따르는 인과(因果)를 아느냐?“
“......”
“그래. 엉엉 울어라. 그런데 뭐가 그리 속이 상하느냐? 상해빠진 닭 창자냐? 썩어빠진 고등어 창자냐?
내가 해결해 줄 테니 한 번 내놔봐라. 그 속상한 마음이 실체가 있다면 내놔봐라.“
“......”
새댁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마음 속 응어리가 녹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생남(生男)기도
6.25전쟁 도중 속리산 복천암에서의 일이다.
하루는 신도가 와서 생남(生男)기도를 올리고 싶다고 하였다.
참선 정진하시던 스님이었지만 사정을 듣고서는 자비심을 내시어 정성껏 며칠간의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거룩하시기에 신도가 신심이 나서 기도가 끝나면
스님과 대중들에게 큰 공양을 올리려고 마음먹었다.
어느 덧 기도 회향하는 날이 다 되자 시장에 가서 온갖 진귀한 공양물을 갖추어 회향기도가 마치기를 기다렸다.
기도가 끝나고 스님은 잠시 법당을 나가셨다.
그러나 스님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스님은 아무도 모르게 복천암을 떠나신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신도는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 했지만 스님의 무착행(無着行)에
마음 가득 그 신심을 온전히 할 수 있었음을 두고두고 감사히 여겼다.
♣세상이 고해(苦海)인데
평소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엄격함으로써 지도를 하시지만,
세상사에 지친 일반인들에게는 특유의 유머로써 진리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남기셨다.
어느 날 젊은 신도 두 명이 찾아왔다.
근심 걱정이 없는 얼굴들이었다.
뭔가 재미있는 말씀을 기대하고 말을 꺼냈다.
“스님! 재미있는 말씀 좀 해 주세요.”
스님께선 갑자기 온갖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세상이 고통바다(苦海)인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겠는가?”
그러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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