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도인과 선사

암두,설봉,덕산스님과 노파

敎當 2016. 1. 18. 14:24

 

어떤 스님이 화엄성중 신장님이 정말 있는가 없는가를 실험해 본다면서

바늘로 신중탱화에 화엄성중님의 눈을 찔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눈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정진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움직이지 않고 정진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버릇을 고친다고 간첩으로 신고해서

경찰이 왔도 움직이지 않고 참선하는 자세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경찰이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나이 오십이 못 되어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참선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그렇습니다.

부처님법은 치우치면 안됩니다.

 

옛날 덕산스님께서는 누군가 '어떤 것이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부처님 정법을 가지고 오신 뜻입니까'하고 물으면

방망이를 내렸습니다. 

옛날 중국에는 공양시간이 되면 종을 먼저 치고

다음에 북을 울리면 스님들이 군대식으로 바릿대를 들고 일렬로 줄을 서서 식당으로 가서 공양을 했습니다. 

하루는 덕산스님이 종도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바릿대를 가지고 식당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덕산스님을 모시던 시봉스님이 이 사실을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에게 고자질 하였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 덕산스님께

'종도 울리지 북도 치지 않았는데 아직 공양할 시간도 아닌데 바릿대를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자

덕산스님이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당시 덕산스님이 조실스님으로 계시던 사찰에서는

누군가 질문을 해오면 밥값을 내놓지 않는 밥도둑놈이라 하였습니다. 

덕산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도를 깨달으신 암두스님은 당시에 부엌에서 공양주로서 계시면서

스님들이 공양하러 오면 밥값을 내놓고 밥을 먹으라고 하였고 여기서 말하는 밥값이란 깨달은 것을 말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설봉스님은 원주를 보셨는데 스님들이 여비를 타기 위해서 오면 밥값을 내놓고 가라고 하고

그래서 깨달은 것을 말하지 못하면 밥도둑놈이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니 당시 스님들은 공부가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덕산스님은 설봉스님과 암두스님과 의논하기를

공부하는 후배스님들을 콩을 볶되 콩을 태우지 않고 콩을 맛있게 볶는 것을 교육하는 것으로 비유해서

조실스님 방에 가면 덕산스님이 방장으로 계시니까 콩 볶듯이 볶고

공양간에 가면 암두스님이 공양주로 계시면서 깨달은 것을 밥값으로 내놓으라고 들들 볶고

원주실에 가면 설봉스님이 여비를 타가려면 어서 깨달음을 얘기하라고 콩 볶듯이 들들 볶았습니다.

 

중국에는 천 칠백가지의 화두공안이 있는데

하루는 덕산스님이 후배들에게 한 가지의 화두공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종도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바릿대를 들고 공양간으로 가는 연극을 함으로써 또 하나의 화두공안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에 동참하신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 다 아시면서 후배들을 위한 덕산스님의 연극에 보조역할을 하기 위해

'덕산스님이 말후구를 모르니 조실스님의 자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말후구는 차별지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후세 사람들을 눈을 뜨게 하기 위한 연극입니다. 

 

이것이 도의 대담을 나누는 법입니다. 

이것을 덕산스님이

설봉스님과 암두스님에게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나누자

설봉스님과 암두스님이 크게 웃으면서 덕산스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답은 간단하게 한 가지입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이 도를 깨닫는 것이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였습니다. 

 

코 만지는 것 보다 쉬운 것이지만 깨닫기 위해서는

번뇌망상을 버리기 위해서 화두를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등염송에는 답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차별지입니다. 

차별지는 평등지와 다릅니다.

 

평등지를 얘기하자면

노파가 20년 동안 토굴의 스님을 시봉하다가 자기 딸을 예쁘게 단장시켜서

스님에게 보내서 스님을 끌어안고 볼에다가 입을 맞춘 다음

"지금의 경계가 어떠합니까" 물으니

추운 겨울날 차가운 바위 위에 고목이 피어서 경계에 조금도 동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노파가 화가 나서 토굴에다 불을 질렀습니다. 

이 대답이 평등지 입니다.

 

전등염송에는 여기까지 적혀 있지만

스님이 엄청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서 열심히 공부해서 며칠 만에 깨달았을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덕산스님의 바릿대 이야기와 노파의 스님에 관한 이야기에 답을 하기를

어떻게 답을 해야 바르게 대답하는 것인지 그 문제는 열심히 정진해서 스스로 답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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