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이야기/사는이야기

김정희필 세한도(金正喜筆 歲寒圖)

敎當 2015. 12. 1. 14:47

 

19741231일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김정희필 세한도(金正喜筆 歲寒圖)

조선 말기의 사대부 서화가 완당 김정희가 조선 헌종 10(1844)

제주도 유배지에서 수묵으로만 간략하게 그린 사의체의 문인화이다.

 

1840년 윤상도사건에 연루되어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양 온 김정희에게

사제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두 차례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역관인

우선 이상적(1804~1865)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려 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작가의 발문이 화면 끝부분에 붙어 있으며,

이어서 이 그림을 받고 감격한 이상적의 글이 적혀있다.

그리고 1845년 이상적이 북경에 가서 그 곳 명사 장악진·조진조등

16명에게 보이고 받은 찬시와 함께 김석준의 글과 오세창·이시영의 배관기가 붙어 있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추사는 제자처럼 아끼던 역관인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었고,

이상적은 청나라에 이를 가지고 가서 추사의 옛 친구를 비롯한 명사들의 글을

그림에 이어 붙인 저지에 받은 것이다.

그 후 세한도는 이씨 문중에게서 떠난 후 130여 년 동안 유전을 거듭하다가

1930년대 중엽에 일본인 경성제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에게 들어갔다.

세한도는 일제 말에 후지쓰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2~1981)의 노력과 재력에 힘입어 국내에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윤상도(17681840)는 순조30(1830) 호조판서 박종훈과 유수를 지낸 신위,

그리고 어영대장 유상량 등을 탐관오리로 몰아 탄핵을 한다.

그러나 군신 사이를 이간시킨다는 이유로 왕의 미움을 사서 추자도에 유배되고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은 배후조종혐의로 고금도에 유배된다.

그러다가 헌종6(1840) 의금부에 압송되어 국문을 받다가 윤상도는 아들과 함께 능지처참된다.

이 사건을 두고 윤상도 옥사라고 하는데

추사는 윤상도 부자가 올렸던 상소문의 초안을 잡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뒤늦게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되었던 것이다

 

남한산성을 오가는 길목에 서 있는 소나무다.

항상 지나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 했는데 왜 이날 유독 이 소나무를 보면서

김홍도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를 떠 올렸는지 나도 참 궁금한 대목이다.

아마도 휘어진 소나무 위의 새하얀 눈을 보면서 모진 세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소나무가 세한도의 소나무와 대비되면서 클로즈업이 되었나 보다.

 

막상 다시금 김홍도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보니 형태는 많이 달랐지만

그 근본은 추운 한 겨울에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절개(?) 뭐 이런 것으로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고 보면 무리가 있을까?....ㅎㅎㅎ

다르면 어떻고 같으면 어떠리...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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