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도인과 선사

태고사 도천스님

敎當 2015. 5. 12. 15:06

원효스님이 '도인이 날 땅'이라 하며 춤을 추었다던 곳.

충남 금산 대둔산 태고사에서 도천은 50년 세월을 수행했다.

세속과의 접촉을 거부한 채 두문불출,

산자락에 틀어박혀 불사(佛事)에만 전념한 지 반세기.

하여 풍문도 무성했다.

힘이 장사, 축지법을 쓴다, 밤이면 산중에 들어가 도를 닦는다.....

그러나 노승은 말한다 

말은 말일 뿐, 좇지 마시게. 도인이 그렇게 쉬운가.

나는 그저 밤이 오면 밤인가 보다, 또 낮이 되면 낮인가 보다 하고 엎드려 일만 하고 살았네.

때 되면 밥먹고 때 되면 잠자고,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닌가? 

 

"마음 깨닫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하는 스님이 태어난 곳은 평안북도 철산이다.

지중한 전생의 인연으로 열세 살에 집을 나섰다.

백두산을 향해 가다 금강산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수월스님 때문이다.

불가의 존경을 받던 그가 내금강면 마하연사에 내려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일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것은 이때부터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출가 전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는 수월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던 청규에 엄격했고,

그의 상좌이며 도천의 은사가 된 묵언스님 또한 도통 말이라고는 없이 무섭게 일만 했다. 

 

해방 후 북의 종교탄압으로 금강산에서 내려온 도천은 걸망 하나 짊어지고 남한땅을 유랑했다.

떠돌이승려의 발길을 붙잡은 곳이 대둔산이다.

그곳에 태고사가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이 불타 폐사되다시피 한 절집.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고 믿은 도천은 그날로 수행에 들어갔다.

 

수행이란 다름아닌 울력이었다.

쓰러진 절집을 일으켜세우는 일.

가파른 산자락으로 돌을 옮기고 나무를 베어날랐다.

대패질을 하고 망치를 두드려 집을 한칸씩 이어갔다.

절 주위에다는 해마다 잣나무를 심었다.

궁핍한 살림에 부처님께 올릴 양식을 마련해볼 요량으로. 그러나 한번도 수확을 해본 적은 없다.

열매가 익기 전에 산짐승들이 모조리 따먹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열매를 먹고 있는 청솔모를 보고 부아가 나서 냅다 돌을 던졌지.

하필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거야.

죽지나 않을까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르네.

그 후로 잣나무에 대한 미련을 버렸지.

 

세월이 흐르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산사의 턱 밑까지 자동차를 밀고 올라온 사람들은 "호남 제일의 성지가 이곳에 있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제자가 되겠다고 올라온 수행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날마다 이어지는 호된 노동에 두손을 들고 내려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천은 일만 했다.

해뜨기 전 일어나 해질 때까지 삽질을 하고 장작을 패고 철근을 옮겼다.

일을 하고 있으면 속인들과 쓸데없는 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덕에 사람들은 스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절의 머슴인 양 대했다.

큰스님이란 사실을 뒤늦게 안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었다.

"왜 일만 하십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스님이 답했다.

힘이 드니까 수행이 되고, 수행이 되니까 일을 하지.

().().() 삼독을 비롯한 온갖 번뇌를 여의는 길은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야.

후대사람이 편히 공부하고 수행하도록 터를 닦아두는 일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좋은 도량에서 도인이 나오고, 그래야 나라가 잘되고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나!

 

무식해서 나라밖 구경 해본 적 없지만 그처럼 부질없는 일도 없다며 허허로이 웃는 도천.

그는 오늘 우리의 어려움이 '일을 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고 질타했다.

제 뱃속만 채우려는 정치인들로 백성이 괴롭고,

돈에 눈이 멀어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탐욕이 온나라를 휘청거리게 한다고 했다.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히 살면 그게 곧 수행인 것을,

우리는 왜 이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고 사는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노승의 잿빛 옷자락에 꽃잎같은 눈송이들이 춤을 추며 내려앉는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등성이로 하염없이 퍼붓는 눈을 바라보는 스님에게 끝내 사사로운 질문을 던진다.

"살아오시면서 눈물 흘린 적 없습니까"

대답 대신 스님은 돌짝처럼 딱딱하게 굳은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봤다.

큰 바다는 아무리 더러운 구정물이 들어와도 끄떡없지만,

작은 구덩이물은 흙탕물이 조금만 깃들어도 더럽혀지는 법이네.

마음자리가 깊어야 하지.

일하면 겸손해지고 겸허히 살면 고통이 생기지 않아., 자네 서러운가? 

태고사에서 50여년을 한결같이 일만하며 살아오신 도천스님은

1910년출생으로 수월스님의 상좌였던 신묵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신 분입니다.

참 편하고 순수하셨고 그 어떤 폼이나 인위가 느껴지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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