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가 도를 통한 까닭이 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별을 보는 놈’ 여기에 있다.
석가모니가 본 것은 별이 아니다.
바로 별을 보는 놈을 봤다.
분명히 이것은 내가 비록 지옥으로 화살같이 가는 구업을 짓는다고 해도
다시 이보다 가깝게 할 말은 없다.
석가여래가 별을 본 것이 아니고, 별 보는 놈을 봤다.
그래서 별로 인해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문득 꿈을 돌이킨 것이다.
꿈이라 하는 그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그게 꿈이라고 하는 거다.
마치 한 장군이 지혜를 발휘해 사막 한 가운데 목마른 백만대병의 갈증을 한번에 해결한 것과 같은 이치다.
매화의 신맛을 상기시켜 병사들의 마음에 갈증을 해갈해줬다.
‘시다’고 하는 것이 그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그럼 불교를 어떻게 믿어야 할까?
바로 ‘내가 불교’다.
불교라는 것은 무엇이 필요해서 믿고 닦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 근본을 찾기 위해서 찾아 들어가는 법이 불교다.
그 이치를 깨달을 것이 바로 성도절이다.
석가여래는 반짝거리며 허공에 있는 별을 본 것이 아니다.
별을 보는 ‘놈’을 봤다.
마치 화두를 들 때, 그 화두를 쫓아가지 말고, 화두 드는 그 놈을 돌이킬 줄 알아야 한다.
참선은 생각으로써 생각을 하는 거다.
생각을 잡고 그것을 연속하는 것이 참선이 아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참선한다는 하는 생각은 생각으로써 생각이 다한 곳을 돌이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