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이야기/사는이야기

넥타이

敎當 2015. 2. 13. 10:36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생활했던 슈바이처 박사는

단 한 개의 넥타이밖에 없었지만 장례식 등 예식이 있을 때마다

넥타이를 착용할 만큼 넥타이를 예의의 상징물로 여겼다.

500여개의 넥타이를 가지고 있었던 미국의 가수 겸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는

공연중에 환호하는 팬들에게 넥타이를 풀어 주곤 했다.

 

(neck, )과 타이(tie, 매다)의 복합어인 넥타이는 고

대 로마 병정이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스카프를 찬물에 적셔 목에 감던 것에서 유래한다.

본격적인 넥타이의 등장은 17세기 프랑스 군대의 용병인 크로아티아 병사들에서 시작된다.

터키 전투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목에 붉은 천을 두르고

시가행진을 벌이는 것을 본 루이 14세가 이를 따라하기 시작하자 뒤이어 파리에서 유행했다.

 

목에 붉은 천을 두른 것은 생명을 해치는 마귀가 몸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뜻에서였다.

훗날 이들의 이름을 따 '크라바트(cravat)'라고 불렀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넥타이의 점잖은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나비 넥타이는 17세기 중반이후,

그리고 포인핸드(four-in-hand, 매었을 때 길이가 주먹의 4)와 같은 현대적 넥타이는 19세기말부터 등장했다.

넥타이는 당당한 성인임을 나타내는데 반해 카톨릭 신부의 칼라는

넥타이 자리를 없애 속세에서 벗어나 있음을 상징한다.

넥타이의 가장 큰 미덕은 일률적이고 단순한 남성정장을 돋보이게 하고 개성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로맨틱한 남성들은 시인 바이런처럼 길게 나부끼는 넥타이를,

점잖은 사람들은 목에 꼭 조이게 맸다.

 

부인용 넥타이는 드레스에 만들어 붙이거나 넥타이 형태로 가다듬어 고리로 고정시켰다.

이 방법은 여학생 교복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1954년경부터는 넥타이가 여성용 악세사리로도 각광받게 되었다.

한편 넥타이는 끝이 벨트 버클을 살짝 덮을 정도로 매는 것이 적당하며,

겹쳐지는 뒷부분은 앞부분보다 약간 짧게 매 앞에서 볼 때 드러나지 않아야 보기 좋다.

적당한 타이의 넓이는 약 8cm 정도지만

일반적으로 유행에 따라 그 폭이 7~9cm 사이에서 조정된다.

 

또 넥타이는 반드시 풀어서 보관해야 한다.

맬 때와는 정반대 방법으로 풀어주어야 천과 안감이 꼬이지 않고 구김을 방지할 수 있다.

구김이 심하면 타이 양 끝을 잡고 벨트를 말 듯 둥글게 말아 하룻밤 놓아두고,

실크타이라면 옷장 안에 걸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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