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諸師)가 칭명염불법(稱名念佛法)에 대하여
불법을 설(說)한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선도대사(善導大師)의 말
선도대사는 염불수행에 대하여 전수(專修) 무간수(無間修)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수(專修)]
중생이 업장(業障)이 두텁고 경(境)은 가늘며 마음은 미하여
관법(觀法)을 성취하기가 어려우므로 대성(大聖)이 이를 불쌍히 여기사
명호(名號)만 오로지 생각함을 권하셨다.
이것은 이름은 부르기 쉽고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함이 잘 되어서 곧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능히 염념(念念)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여
명(命)이 마칠 때가지 반드시 됨을 기약하면
열이면 열이 왕생하고 백이면 백이 왕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깥의 잡연(雜緣)이 없어서 정념(正念)을 얻게 되고
부처님의 본원(本願)에 서로 맞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順從)하는 까닭이니
이것을 전수(專修)라 한다.
그러나 만약 전수(專修)를 버리고 여러 가지 업(業)을 닦아서 왕생을 구하는 이는
백(百)에 하나나 둘이고 千에 三, 四인 밖에 왕생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잡연(雜緣)이 어지럽게 일어나서 정념(正念)을 잃고
부처님의 본원(本願)과 서로 맞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부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계념(繫念)이 계속하지 못하고 염불을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여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마음이 없고
비록 업행(業行)은 있으나 항상 명리(名利)와 서로 맞고
잡연(雜緣)에 접근하기를 좋아하여
정토에 왕생함을 스스로 장애(障碍)하는 까닭이다.
[무간수(無間修)]
몸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께만 예배하고 다른 예배는 섞지 아니하며
입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르고 다른 명호(名號)는 부르지 아니하고
다른 경은 읽지 아니하며
뜻으로는 오로지 아미타불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섞지 아니하며
만일 탐(貪) 진(瞋) 치(癡)를 범하였거든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곧 참회하여 항상 청정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무간수(無間修)니라.
(2). 영명대사(永明大師)의 말
행자(行者)가 일심(一心)으로 삼보(三寶)에 귀명(歸命)하고
보(報)가 끝나도록 정진(精進)하여 닦되,
앉고 누울 때에 얼굴을 항상 서쪽으로 향하고
행도(行道)예배할 때나 염불 발원할 때에 지성으로 간절하게 하고,
다른 생각은 없는 것이 마치 형장(刑場)에 나갈 때와 같이
옥중에 갇혔을 때와 원수에게 쫒길 때와 수화(水火)의 재난을 만났을 때와 같이,
일심(一心)으로 구원을 구하되
빨리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 무생(無生)을 증(證)하기를 원하며
함령(含靈)을 널리 제도하고 삼보(三寶)를 융숭(隆崇)하며 사은(四恩)갚기를 서원(誓願)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성을 다하면 허사가 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말과 행이 일치하지 아니하며 신(信)과 원(願)이 가볍고 적어서
염념(念念)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는 마음이 없고 자주 자주 끊어지면서
임종시에 극락에 왕생하기를 바라면
업장(業障)이 가려져서 선우(善友)를 만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괴롭게 굴어 정념(正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이 인(因)이요 임종이 과(果)가 되는 것이니
인이 실하면 과가 허하지 않는 것이
마치 소리가 화(和)하면 울리는 소리가 순하고
형상(形狀)이 곧으면 그림자가 단정한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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